나의 할아버지는 어느 무더운 여름 날 돌아가셨다. 나는 할아버지와 친하진 않았지만, 그분을 꽤나 좋아했다. 나는 한번도 할아버지께 혼나본 적이 없었다. 요즘 ‘꼰대’라고 일컫는, 기분 나쁜 말을 들어본 적도 없었다. 나만 그렇게 생각한 것이 아니었다. 다른 가족들도 할아버지께 안 좋은 소리 한 번을 들어본 적 없다고 하니 예사 분이 아니신 것은 분명했다.
할아버지를 진심으로 존경하게 된 것은 그분이 돌아가시고 난 뒤였다. 왜 사람은 죽고 나서 더 많이 회상하는 걸까. 그분이 돌아가신 뒤, 우리는 그분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하고 추억하게 되었다. 그중 재미난 이야기가 있어 그걸 나누어 볼까 한다.
우리 아빠는 매우 가난한 집안에 태어났다. 산 바로 아래에 위치한 마을이었는데, 버스가 하루에 한 번 오는 곳이었다. 대기오염이 심각하다지만 그곳에서는 어림도 없는 말이었다. 밤 하늘을 내다보면 별이 쏟아질 듯이 많았다. 내가 가본 어느 천문대보다도 별이 많이 보였다. 그때 나는 ‘별이 쏟아질 듯이 많다’는 말이 비유적인 표현이 아님을 알았다. 물론 마냥 좋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까지만 해도 집 안에서 전화가 안 터졌다. 통화를 하려면 핸드폰을 들고 마당으로 나가야 했으니, 얼마나 깡촌이었는지 짐작이나 될까. 그런 산골마을에서 할아버지 할머니는 8남매를 키우셨다.
아빠가 어렸을 때는 지금보다도 더 가난했다. 그 시절에는 학교에 육성회비를 내야 했는데 돈이 없어 내지 못하는 일이 있었다. ‘검정고무신’이나 ‘짱뚱이’에서나 볼 법한 일을 우리 아빠가 직접 겪었다는 게 믿기지 않는데, 아무튼 그 정도로 가난했다. 학생 인권이라곤 쥐뿔도 없을 시절이니, 당연히 형제들은 늘 선생님께 혼이 나야 했다. 막내 고모도 마찬가지였다. 매번 선생님께 불려가기 일쑤였다고 한다.
그날도 육성회비를 못 내 혼이 났다. 막내 고모는 집에 가 아버지께 육성회비를 내야 하니 돈을 달라고 말했다. 할아버지께선 15일까지 주마, 약속했다고 한다.
다음 날 막내 고모는 학교에 가, 25일 날 무조건 내겠다고 말했다. 15일까지 돈을 마련하지 못할 것을 계산해 꾀를 낸 것이다. 그리고 15일이 되자 할아버지는 막내 고모에게 약속한 돈을 주었다. 막내 고모는 그 돈을 내지 않았다. 그리고 꽁꽁 숨겨두었다가 25일에 선생님께 드렸다.
그렇게 두어 번을 더 내고 난 뒤, 선생님은 더 이상 막내 고모를 혼내지 않았다. 조금 늦게 낼 뿐, 제 스스로 약속한 날짜는 꼭 지키는 아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건 할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며칠에 돈을 주마, 약속을 하면 한 번도 그걸 어기신 적이 없었다고 한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약속한 날짜에 돈을 마련해오셨다고 한다. 가난한 형편에 그 돈을 마련하기 어렵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었다. 조금 늦게 줘도 다들 이해했을 텐데. 막내 딸과 한 약속을 단 한번도 어기지 않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