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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개 Jun 27. 2022

봄날엔

축제가 끝나고 난 뒤

* 지난 5월 개인 블로그에 적은 걸 옮긴 글입니다. 여기 쓰여진 모든 말은 저 개인(=개좃밥)의 의견에 불과합니다. 이런 걸 서두에 적는 걸 보니 조만간 이 글은 삭제되겠군요. 



1.세상 모든 분야엔 프로가 존재하고 그 영역들이 겹쳐져야 비로소 뭔가가 완성되는 게 아닐까. 그러니 저 혼자 잘났다고 다 해내는 경우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무엇이든 혼자할 수 있는 일은 없다.


2.팔토시로 가리지 못한 손등에 열화상을 입었다. 선크림을 발라야했나 후회가 든다. 탔다기보단 구워졌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손등이 미디엄 웰던으로 구워져서 밖으로 젖힐 때마다 찌뿌둥하다. 손등을 본 모든 사람들이 집에 알로에 없냐고 물었는데 그것이 정답이었나 하고 오늘에서야 올리부영에서 알로에젤을 사왔다. 소잃고 외양간 고친다더니 딱 그 꼴인데. 검붉어진 손등을 내려다보니 꽤 웃기다. 보기좋게 태닝을 했다기보단 무슨 일이 나도 단단히 났구나 짐작하게 하는 꼴이다. 빨개지면 그냥 빨갈 것이지 서서히 검어지는 건 뭐람? 아무래도 그 두 색은 무슨 연관이 있는 것 같다. 둘 다 내가 좋아하는 색은 아니며 조금 안쓰럽고도 혀를 끌끌 차게하는 그런 모양새… 좋지 않다.


빡치게 하지 마.

3.엄빠가 공연 현장에 놀러왔다. 입사한지 천일이 지났는데 엄빠가 페스티벌 현장에 온 건 처음이다. 엄마아빠는 늙었지만 젊은이들만 갈 것 같은 이런 곳에 초대해도 절대 마다하지 않는다. 나는 우리 엄마아빠의 그런 점이 참 마음에 든다. 그리고 한시간 쯤 앉아있다가 서둘러 떠나지도 않고, 볼 거 다보고 즐길 거 다 즐기고 가는 것도 참 좋다. 나의 미디엄 웰던 손등을 보고선 엄마가 핸드크림을 바리바리 싸줬는데 그게 스폰서 부스에서 받은 사은품이었단걸 철수할 때나 알았다.


암튼 엄마는 폴kim과 주닐정을 헷갈리다 결국 둘 다에게 입덕했고 아빠를 버린 채 주닐정 무대를 감상하러 떠났다. 나는 아빠의 팔짱을 끼고 플리마켓으로 가서 기어이 슬로건을 뜯어냈다. 그렇게 얻은 슬로건은 다음날 내 뒷목을 가려줬고 손등 대신 뒷목만큼은 미디움레어 정도에서 끝날 수 있었다.


4.말같지도 않은 것들을 많이도 기획했는데 끝까지 잡고가면 결국 실현된다는 걸 알았다. 역시 모든 건 지속에 달려있는.



5.생중계는 정말 빡세지만 솔직히 재밌다. 무전기는 간지만큼이나 활용성이 너무 좋다. 잠깐 썼지만 그 유용함을 알아버렸다. 이제 그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6.관객들 뒤통수를 실컷 봤다. 각자 자유의지가 있는 인간들이 신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동시에 같은 소리를 내고 같은 동작을 한다는 것이 신기하다. 즐겁고 신난다는 건 참 귀하구나. 그런 모습을 끌어내는 판을 만드는게 좋다. 굳이 페스티벌이 아니더라도. 음악이 아니더라도 그 골자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7.근데 진짜 3일 내내 비가 안왔네? 이럴수가 있나…?


8.프로그램북은 생각보다 훨씬 잘 나왔다. 두껍지 않은데 무의미한 페이지는 없어서 좋음. 읽을 거리를 만들어내는 일은 즐겁다. 사실 다른 어떤 것보다 개인적인 만족에 가까운 업무였던 것 같다. 큭큭… 인터뷰를 향한 나의 어두운 욕망이 조용히 반영… 그런데 약 2만부가 인쇄된.



9.홍보기획이라 쓰고 텍스트 셔틀이라 읽는다… SNS, 홈페이지, 현장콘텐츠 등 다양한 텍스트를 만들고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배우고 깨달은 것들이 많다. 좋은 경험.



10.팀원들에게 고맙다. 이전 글에도 썼지만 그들은 정말 짱이다. 그들은 자신의 할 일을 절대 미루지 않는다. 어떻게든 해내고야 만다. 어쩜 그러지? 나는 그들에게 성실함과 책임감을 배웠다. 배운 만큼 알려주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쌍방으로 배우는 관계란 정말 멋지다. 알려주는 게 많으려면 끊임없이 쌓아가야겠지.


11.팀원들 뿐 아니라 현장에서 처음 만난 몇몇 분들께도 정말 감탄했다. 그러니까 이런 책임감과 센스는 연차나 자릿값에서 오는게 아닌 거다. 나는 현장에서 100명 정도의 새로운 사람을 만났는데 그들 모두에게 엄청나게 많은 것들을 배웠다. 어쩜.. 저러지? 대한민국의 미래는 밝다.


12.하지만 평균 조도를 낮춰주는 존재도 있다.


13.이게 되네? 의 연속


14.하지만 이게 되네? 는 만반의 준비를 갖춘 후에 기대해야하는 것이고, 쥐뿔도 없으면서 이게 되네?를 바라는 건 도둑심보...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고 지금껏 그렇게 살아왔다면 당신의 인복이 좋았던 것 뿐이니 주변에 밥이라도 한번씩 사길…


15.나를 괴롭혔던 것들은 사라졌지만 잊혀지진 않을 것이다. 말과 생각을 삼켜내고 느끼는 뒷맛이 쓰다.


16.그럼에도 나는 어찌되었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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