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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개 Apr 04. 2023

의자는 왜 스스로 걸어다니지 못할까

스탠딩이 사라졌던 그 시절


의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코로나가 망할 놈 소리를 들은 덴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 중 하나는 스탠딩 공연을 멸종시킨 죄도 있겠지. 관객들에게도 그렇고 스태프에게도 그렇고 대관처에게도 그렇다. 이유는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스탠딩이 익숙했던 공연장은 맨 처음엔 아예 문을 닫았다. 사람들이 빽빽하게 서서 함성과 박수와 떼창과 타액을 흩뿌려맞는 상황을 만들 수 없으니. 공연규제가 조금 풀린 후에는 의자를 들여놓고 좌석으로 진행했다. 비트코인보다 조금 덜 자주 바뀌는 공연장 규칙에 따라 퐁당(한 칸씩)이든 퐁퐁당(일행 간)이든 거리를 둘 수도 있고 말이지. 


뭔가를 앉아서 본다 하면 가장 이상적인 공간으로 영화관을 떠올리게 된다. 단차가 환상적이니까. 관객으로 공연장을 찾은지 어언 150년 정도 되었지만, 혹시 가게되는 때가 있더라도 단차가 없는 공연장은 나의 깊은 고민을 거쳐야 한다. 이유는 이렇다. 나는 앉은 키가 유별나게 작다. 다리가 유별나게 길지도 않으면서 말이지. 그러니까 전체적으로 땅딸막하다는 뜻이다.


단차가 없는 공연장은 시야 확보가 보장되지 않는다. 이십대 초반에 생방으로 진행하는 스탠딩 공연을 보러 간 적 있는데 세시간 정도 되는 시간 동안 나는 앞 사람 날개죽지만 보고 서 있어야 했다. 지금이라면 그냥 다 팽개치고 나왔을텐데, 당시엔 뜨거운 마음(=덕질)과 연관되어 있었기 때문에 도중 퇴장은 옵션에 있지도 않았다. 곱씹을수록 왜 그랬는지 모르겠네. 당시엔 멀쩡하게 견뎠다고 생각했는데, 그 후론 말이지... 


가끔은 그냥 잊어버리는 것이 좋다. 굳이굳이 안 좋은 기억을 되살렸다간 이렇게 된다고. 


사실 나는 사람 많은 곳이 싫다무리에 속해있는 것보단 그 무리가 들썩이는 모습을 음침하게 바라보는게 좋다. 아주 어릴 때부터 그랬기 때문에 그걸 내 성격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인지 오래다. 이 말도 꽤나 다양하게 여기저기 적었다. 암튼 그래서 공연기획사에서 일한 건지도 모른다. 노는 것보다 노는 걸 보는 걸 좋아해서.



*2022.07 개인 블로그 포스팅에서 다시 씀.


이번 공연의 무리(!)는 모두 앉아서 행복해할 예정이었고 그래서 하루 전 셋업을 갈때도 우리가 의자를 깔아야 함을 알고는 있었다. 알고'는' 있었다. 그 외엔 그저 간이의자 배치를 빨리 끝내고 직퇴를 하자, 생각 뿐이었지.


로비에 부착될 좌석배치도를 프린트해서 현장용 가방에 쏙 넣었다. 사실 핸드폰에 저장한 이미지가 있어 굳이 챙길까 망설였지만 왜인지 여러 장 있어야 할 거 같아서 챙겼다. (나중에 대참사가 안 일어남)


어, 근데 현장에서 마주한 것은.. 


일단은 좀 더 논리적으로 접근해보려 한다. 이것은 이미 나에게 과거의 일 아닌가. 블로그에 썼을 땐 몇 주 전이었지만 브런치에 옮겨적고 있는 지금은 벌써 작년의 일이다. 모든 경험은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미화되기 때문에, 명확하게 떠올리려면 어느 정도 거리감이 필요하다. 마치 남 얘기하듯 말이지.


좌석공연인가요? YES. 

의자가 설치되어 있나요? NO.

그럼 당연히 누군가 의자를 배치해야 한다. OK.


그 의자는 어디있나요? 으ㅖ?

그럼 그걸 가져와야겠군요? OH...

직접 배치해야 겠고요.

그쵸...


이렇게...

[사진자료] 저것은 의자를 실은 카트이다.


그 날 팀원들은 약 50만개의 의자를 깔었다. 살짝 과장이 들어있는데 실제로 몇 개였는지 확인하기 너무 귀찮다.

(방금 굳이굳이 확인해보니 1000개였다. ㅋㅋ죄송합니다)


비록 50만개는 아니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 날은 정말 너무, 너무 힘들었다. 정신이 아니라 육체적으로. 정말 리터럴리 힘(him)이 들었다(놨다)는 말. 진빠진 육체로 너덜너덜 돌아다니다보니 나중엔 정신도 이상해지는 것 같았다.


나는 나의 힘을 원망했다 나의 근육의 한계와 분유 먹던 힘의 소진을 실감했고 내 키가 좀 더 컸다면? 어릴 때 정구 레슨을 빼먹지 않고 성실하게 참여해서 기초 근육을 만들었다면? 찰흙인형 대신 이두박근을 만들며 놀았다면? 그랬다면 이 망할 카트가 좀더 수월하게 밀리지 않았을까? ?? ??? ... ?? 그런 생각을 하며 [사진자료]속 저것을 밀고.. 건네고.. 밀고.. 건네고... 반복했다. 


하지만 어쨌든 모든 일은 끝나기 마련이고 의자셋팅도 마무리되었다.


공연 첫째날.

(공연 중...)

(마무리 중...)

(관객 퇴장...)

(주차장 샷따내림...)

(....)


마지막 날. 철수작업은 플로어석의 의자들에 붙인 좌석 스티커를 떼내고, 모든 의자를 챡챡 접어서, 다시 카트에 실어서. 낑낑 밀어서, 원래 있던 창고로 돌려놓는 걸로 끝을 맺었다. 


(드르륵 탁...)

(드르륵 탁...)

(드르륵 탁...)




자유로운 스티커를 봐, 자유로워


있었는데 없던 의자


지난한 사흘이었다.


*2022.07 개인 블로그 포스팅에서 다시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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