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정한 무관심 Jan 28. 2024

<당신들의 천국> 서평

자유와 사랑에 대한 이청준의 물음

안토니오 폴리토 : 인류의 낙원을 만들려고 했던 공산주의가 실패한 이유를 무엇이라 보십니까?

에릭 홉스봄 : 대의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희생뿐만 아니라 타인의 희생까지도 당연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 에릭 홉스봄, 『새로운 세기와의 대화』


 나태와 무위, 술과 게임에 빠져 사는 20대의 남자들에게 세상은 말한다. 남자는 역시 군대를 갔다 와야 인간이 된다고. 새벽 여섯 시에 잠에서 깨고 밤 열 시가 되면 어김없이 잠이 드는, 매트리스에서 시작되고 매트리스에서 끝나는 매트릭스의 생활 속에서 남자들은 ‘건강한’ 인간으로 진화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모든 군인들은 하루라도 빨리 군대를 벗어나고 싶어 한다. 자신의 복무기간 중에 혹 윤년이라도 끼었다면 그보다 더한 재앙은 없다. 규칙적인 삶의 방식을 익힌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자유다. 무한한 자유가 스스로를 행복하게 하리라. 하지만 그들은 결코 알지 못한다. 자유가 없었기에 자신들이 건강할 수 있었음을. 그들은 자유를 찾은 예비역들이 폐인으로 영원회귀 하는 현상을 남의 일로만 생각할 따름이다.


 자유와 천국의 교착은 정치학의 영원한 숙제다. 각 개인이 자신의 인성을 스스로 함양하고 역량을 발휘한다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좀처럼 스스로 발전하는 일이 없다. 강제와 타율적인 각성만이 그를 움직이게 한다. 그러니까 엉덩이를 걷어 차야지만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이는 소록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패배감과 무력감에 찌들고, 천대와 모멸을 받으며 유령처럼 살고 있었던 문둥이들을 바꾸어 놓은 것은 자생적 의지가 아니라, 주정수라는 한 인물의 카리스마였다. 


 - 나는 여러분에게 약속하겠습니다... 그는 무엇보다 이 섬을 원생들의 낙원으로 꾸며놓겠다고 약속했다. 시책의 제일 목표를 새로운 병원 시설과 환자촌의 수용 시설 확충 및 용양 환경 개선 사업에 두겠다고 선언했다. 그리하여 이 섬을 동양 제일, 아니 세계 제일의 나환자 요양소로 꾸며 버림받고 쫓겨 온 사람들의 새로운 고향, 자랑스런 낙토로 만들어놓고 말겠다고 장담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이웃으로부터 끝없는 멸시와 박해를 당해왔습니다. 그 서러운 멸시와 박해의 기억을 안고 여러분은 그 절망적인 유랑의 길을 몇천 리 몇만 리나 걸어 헤매야 했습니까.(104)


 하지만 소록도의 천국은 그리 길지 못했다. 그 천국의 주인은 문둥이들이 아니라 바로 주정수 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주정수가 그의 천국을 향유할수록, 문둥이들은 점점 지옥의 나락을 경험했다. 그의 권력은 견제받지 않았고, 문둥이들에게는 자유가 없었다. 『자유론』을 통해 존 스튜어트 밀이 말하고자 했던 것은 소록도에 똑같이 적용된다. 


 물론 다른 사람의 충고나 경고를 듣지 않음으로써 이런저런 실수를 저지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실수라는 것도, 타인이 보기에 그에게 이익이 되는 듯해서 당사자의 뜻을 무시한 채 어떤 일을 강제할 때 발생하는 손실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다(자유론, 144)


 조백헌 원장이 만들려고 했던 천국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을 품고, 견제했던 이상욱 과장의 주장도 밀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는 자유가 부재한 천국이 어떻게 지옥으로 변하는지를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도대체 어떤 절대 상황 안에 격리된 인간 집단 안에서는 그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의 협의 관계에 의한 지배 질서란 궁극적으로 그 상황의 벽을 무너뜨리는 순교자적 용기와 희생 없이는 가능할 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다스리는 자의 선의나 정의와는 상관없이 그리고 그의 지배권이 어디에서 연유했든 그것만은 끝끝내 절대 전제가 되어 있는 한, 다스림을 받는 쪽은 항상 감당해 낼 수 없는 상황 자체의 압력 때문에 스스로가 무기력해져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불행한 사회의 질서란 우리가 흔히 믿고 있듯이 다중의 희망이나 기도 같은 것과는 일단 상관이 없이, 우선은 그 지배자 한 사람의 책임과 각성에 의해 좌우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저의 슬픈 결론입니다.(397)


 어쨌거나 그 섬과 원장님 사이의 화해가 불가능했던 것은 처음부터 양쪽 다 각자의 운명을 따로따로 살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380)


 개선의 여지가 없는 문둥이들의 삶. 하지만 이를 바꾸려는 외부인의 노력은 결국 그들을 더욱 타율적으로 만들 뿐이었다. 이상욱은 무엇이 해답인지는 알지 못했지만, 무엇이 오답인지에 대한 확신만은 가지고 있었다. 외생적 권력의 등장과 자유의 부재, 그것이 그가 분별할 수 있는 유일한 오답이었다. 


 그렇다면 과연 문둥이들과는 태생적으로 운명을 함께 할 수 없었던 조원장은 무엇을 해야 했을까. 환자 치료에는 열성적이었지만, 말썽이라면 도대체 견디지를 못했던 김정일 의료부장처럼 그저 방관하고 있어야만 했을까. 이에 이청준은 황장로의 입을 통해서 이상욱의 비관적 허무주의를 비판한다. 


 이상욱 과장이란 사람 모든 일을 그 자유로만 행하고 싶어 했고, 또 오로지 자유로만 행할 줄은 알았어도 거기서 익혀진 몹쓸 버릇들, 일테면 덮어놓고 남을 의심하고 원망하고 미워하는 따위의 심성에 대해서 까지는 미처 눈을 뜨지 못했던 게야. 남을 용서할 줄을 몰랐지. 모든 것을 그저 그 자유 한 가지로만 행하려 한 허물이지.(336)


 이어지는 이청준의 정치학은 다분히 문학적이다. 권력과 견제, 자유와 진보가 교착상태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정치학에서 그는 문학적인 방법을 통해 돌파구를 찾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너무나도 문학적인 이름인, 바로 사랑이었다.  


 그야 물론 사랑이어야겠지. 이제 이 섬은 자유로는 안 된다는 걸 알았으니 다시 또 그런 자유로만 행해나갈 수는 없을 게야. 자유라는 건 싸워 빼앗는 길이 되어 이긴 자와 진 자가 생기게 마련이지만, 사랑은 빼앗음이 아니라 베푸는 길이라서 이긴 자와 진 자가 없이 모두 함께 이기는 길이거든. (…) 자유가 사랑으로 행해지고 사랑이 자유로 행해져서, 서로가 서로 속으로 깃들면서 행해질 수만 있다면야 사랑이고 자유고 굳이 나눠 따질 일이 없겠지만, 이 섬에서 일어날 일들로 해서는 자유라는 것 속에 사랑이 깃들기는 어려워도, 사랑으로 행하는 길에 자유가 함께 행해질 수도 있다는 조짐은 보였거든.(337)


 하지만 작가는 자유와 사랑으로 가득 찬 천국의 완성을 유보한다. 그것은 말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그것을 끊임없이 행함으로써, 다시 말해 살아 보임으로써만 증명 가능한 것이다. 그 삶의 이야기는 완성형이 아니라 언제나 진행형이 될 수밖에 없다. 


 조백헌 원장은 결국 섬을 떠나게 되었고, 그가 계획했던 오마도 개척사업도 7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지지 부지한 상태로 남아있다. 어떻게 보면 그는 실패했던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만약 그의 성공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섬사람들에겐 여전히 당신일 수밖에 없는 당신들의 천국은 아니었을까. 많은 것이 변하지는 않았지만 조금씩 소록도는 변하고 있다. 그것은 견제되지 않는 권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조백헌 원장이 지금도 뿌려놓고 있는 사랑의 씨앗 때문이었고 그 씨앗을 받고 스스로의 삶을 경작하는 소록도의 ‘사람들’ 때문이었다. 그렇게 그들은 우리들의 천국을 만든다. 그리고 지금, 그들은 자유와 사랑으로 빚어진 새로운 생명의 잉태를 기다리고 있다.(2009)

작가의 이전글 아빠의 육아일기 -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