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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무관심 Feb 02. 2024

주짓수 일기 - 넌 이미 죽어있다

<퀴즈탐험 신비의 세계>나 사바나를 다룬 다큐멘터리에선, 가젤 같은 초식 동물들이 사자에게 잡아 먹히는 모습이 종종 나온다. 이때 가젤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는데, 나는 그 장면이 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죽기 직전인 상황인데 뭐라도 해야 하지 않나, 왜 발버둥조차 치지 않는 거지? 물에 빠진 사람은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는데, 쟤들은 왜 저렇게 죽음에 순응하는 것일까.     


 퍼플벨트 분들과 스파링을 할 때마다 나는 사자에게 목덜미가 잡힌 한 마리의 가젤이 된다. 뭘 해도 안되는구나. 해봤자 안되는구나. 이곳엔 지푸라기가 없구나. 그래. 그냥 나를 잡아 잡숴라. 인간이 죽기 전에 주마등을 떠올리는 이유는 찰나의 순간에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살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서라고 한다. 아. 이곳에서 살아나갈 수 있는 기억이 내 삶에 존재하지 않는구나. <북두의 권>의 명대사는 진리를 관통한다. 니 이징 쓰러. 넌 이미 죽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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