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혈압으로 당겨진 출산
갑작스레 출산예정일에서 3주나 출산이 당겨졌다. 정확히 37주 0일에 뱃속 아기를 만나기 위해 수술대에 올랐다.
우리의 만남이 당겨진 이유는 임신 기간 내내 나를 괴롭히던 고혈압 때문이었다. 임신 전에는 혈압이 평균보다 살짝 높다는 것을 알며 살았다. 고혈압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한 수치라 애매모호하게 혈압 관리는 신경 쓰지 않으며 살았다. 나의 지속된 무심함이 문제였던가. 임신 초기부터 혈압이 급상승하며 고혈압 진단을 받았고 산부인과에서는 혈압 관리의 중요성을 매번 강조했다. 그 이후로 매일 가정 혈압을 재야 했고 아침과 저녁마다 혈압을 측정하고 기록하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주수가 늘어나면서 임신중독증의 위험을 예방하고자 아스피린을 19주부터 36주까지 복용하였다. 그렇지만 최고 150/ 최저 100 혈압이 나오면서 대학병원으로 전원 되는 일도 생겼다. 대학병원에서 진료를 받으며 혈압약을 복용하기 시작했다. 혈압약만은 피하고 싶었으나 더 나쁜 상황을 막기 위함이라는 담당의사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떨어지지 않는 혈압으로 인해 혈압약 2알이 3알로 4알로 늘어났다. 뱃속에 아이를 품으면서 약을 복용하니 괜스레 아기에게 미안하고 잘못되진 않을지 걱정이 되어 점점 신경이 예민해졌다.
병원에서는 37주까지 아이를 품는 것을 목표로 하자고 했고 나는 매일매일 뱃속 아기가 무탈하기만을 바랐다. 잔뜩 부풀어진 배 위를 가만히 쓰담쓰담 쓸어내며 아이에게 속삭였다. 아가야, 우리 무사히 만나자. 엄마는 네 얼굴이 꼭 보고 싶어. 그러니 우리 무사히 만나자. 아무런 이벤트가 없이 뱃속 아이를 건강하게 만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자 기적인지 나는 그때 실감을 했다.
막달 태동검사를 했던 36주에 결국 출산을 당겨야 하는 일이 생겼다. 조금씩 소량으로 보이던 단백뇨의 수치가 올랐던 것이다. 그리고 태동검사를 할 때도 평소에도 태동이 점점 느껴지지 않아서 나의 불안감은 극에 달했다. 특히나 25년 1월 마지막주에는 기나긴 설날 연휴가 있었고, 나는 그 연휴를 편히 보내기가 어려울 것 같았다. 3일에 한 번씩 병원 진료를 보며 상태를 살피던 때라 오랜 시간 동안 병원을 가지 않는다는 것에도 불안함을 느꼈다. 나의 불안과 걱정이 닿았는지 담당의사 선생님은 그러면 출산을 당기자고 권하셨다.
그렇게 37주가 되던 날에 뱃속에 품고 있던 아이가 세상 밖으로 나왔다. 우렁차게 우는 아기의 울음소리를 듣고 깊은 안도감을 느꼈다. 아, 무사하구나. 우리 아기가 잘 태어났구나. 정말, 정말 다행이다. 하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갓 태어난 아기의 쭈굴쭈굴하고 희게 얼룩진 얼굴을 보며 첫인사를 건넸다. 토리야,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