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로 가는 길(1)
5살 때였다. 유치원에서 세계 여러 나라의 문화에 대해 알아보고, 집에서 추가 조사하는 숙제가 있었다. 내가 맡은 나라는 브라질이었고, 리우 카니발에 대해 조사했었다.
일정한 시간마다 가로선이 내려가는 인터넷 창에서, 젊은 여성이 브라질 국기 색인 노랑과 초록으로 비키니를 입고 흥겹게 춤추는 모습을 보았다. 부모님께 부탁드려 인쇄한 다음 사진의 테두리를 가위로 오린 후 숙제에 붙였다. 삐뚤빼뚤하고 종이가 파일 것 같이 힘을 준 큰 글씨로, '브라질-리우 카니발'이라고 제목을 붙인 기억이 난다. 그게 내 남미에 대한 첫 기억이다.
그 이후로는 남미를 접할 기회가 많이 없었다. 우리나라와 시간과 계절이 정반대일만큼 너무나 멀기 때문일까. 정규 교육과정에서 남미에 대한 설명은 거의 전무했다. 오히려 남미에 대한 이야기는 교과서 밖에서 종종 들을 수 있었다.
'엄마네 학교 선생님이 멕시코에 갔는데 게릴라 습격을 받아서 버스에 감금되었대. 비스킷 한 통으로 일주일을 버텼다지 뭐니. 나중에 넌 남미는 절대 가지 마'
'아빠가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탔는데 내리고 보니 카라카스(베네수엘라의 수도)인 거 있지. 미국을 들러 베네수엘라로 가는 환승 편 비행기였는데 깜빡 잠들었거든. 근데 아무도 안 깨웠더라고.'
무용담을 들으며 내가 멕시코에 갔을 때 카르텔한테 잡히면 무릎 꿇고 뭐라고 말할지 생각하고, 카라카스에 도착하면 어디를 가장 먼저 가볼지 찾아보기도 했었다.
중학교 2학년 때 사회시간에 대항해시대를 배웠다. 유럽 대륙의 끝에 몰려, 절박한 마음으로 대서양을 건너 새로운 땅을 발견한 포르투갈과 에스파냐. 희망을 찾아 떠난 이들이 만든 억압의 식민지와 사람들의 삶.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광활한 대륙. 그 대륙에 교황이 선을 긋고 조약을 만들어 지금까지도 단 두 언어만 사용하고 있다.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
남미 대륙의 역사는 배울수록 정말 흥미로웠다. 몇천 년 동안 산골짜기에 감춰져 있다가 발견된 마추픽추와 같은 고대의 도시들. 흑요석을 이용해 사람의 심장을 꺼내 제단의 제물로 바쳤다는 마야인들. 온몸에 황금칠을 한 왕이 나타나서 자신들을 구원해줄 거라 믿었지만, 몇백 명의 군인들에게 죽임을 당한 수만 명의 원주민들. 이런 얘기를 듣고 나면 남미에는 식민지 특유의 애환과, 아직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가 존재할 것 같았다. 그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순수하고도 응집된 폭발적인 에너지가 느껴졌다. 그리고 남미를 생각할 때마다 그 에너지가 전율처럼 내게 전해지는 것이 너무나 설렜다.
고등학생이 되어 지리 시간에 대척점을 배웠을 때부터는 남미를 동경하기 시작했다. 하나의 지구에서. 같은 시간에 전혀 다른 계절과 정반대의 시간을 공유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내 반대편에 있다니. 그 사실은 너무나 아득하면서도,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갈수록 커졌다.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 고등학교의 세계지리는 거기서 끝이었다. 내가 다닌 학교에서는 세계지리 교과목을 말로만 교육과정에 올려놓고, 수능을 잘 보기 위한 한국지리나 사회문화를 수업했다.
대신 내 나름의 남미에 대한 갈증을 풀기 위해 다큐멘터리를 보고 게임을 했다. 주로 세계 테마 기행 - 포르투갈, 남미 편을 보거나 대항해시대라는 게임을 했다.(중세 유럽을 배경으로 배를 타고 유럽에서 남미까지 교역을 하거나, 모험, 전투를 하는 게임이었다.)
장래희망으로 별달리 하고 싶은 게 없던 나는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교수를 보며 '중남미 문화학자' 혹은 '외교관'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정말 소수이지. 누구나 그렇게 운이 좋지는 않아. 어문계열을 나와서 문화학자가 안되면 정말 힘들어져. 또 설령 네가 외교관이 된다 해도, 좋은 집안이 뒷받침해주지 않는다면 힘든 공직생활이 될 거야"
고2 담임선생님의 말씀이었다. 나의 학창 시절 중 가장 기억에 남고 어떤 선생님보다 나를 위해주고 생각해주셨던 분이었다. 그래서 선생님의 말씀은 내게 더 크게 와닿았다. 나를 걱정해서 하신 말씀인 것을 알기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과의 면담 이후 남미에 대한 꿈을 키워나가는 대신 수능에 열중했고, 결국 남미와는 전혀 관련 없는 전공 공부를 하게 되었다. 그렇게 남미를 잊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