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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리양 Jul 15. 2021

[책] 노멀 피플

#4

노멀 피플


 YES24북클럽을 이용하던 와중에 '노멀 피플'이라는 이름의 책이 자꾸 눈에 띄었다. 찾아보니까 영상화되어 영국에서 bbc 드라마로 방영되기도 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웨이브같은 스트리밍 사이트를 이용해서 볼 수 있는 모양이다. 


 (내용)

 부유한 집안에서 자랐지만 알게 모르게 오빠의 폭력과 엄마의 방관 속에 노출되어 자란 메리앤과 부유하지 않지만 학교에서 평판도 좋고 성적도 좋은 코넬이 이 책의 주인공들이다. 메리앤은 학교에서 겉도는 학생이며 친구도 하나 없다. 반면, 코넬은 친구 무리가 있고 학교에서도 꽤 인기가 좋다. 학교에서는 서로 알은 채도 하지 않는 두 사람이지만 그들은 사실 서로를 알고 있다. 코넬의 엄마가 메리앤의 집에서 가정부로 일을 하기 때문에 코넬이 종종 일이 끝난 엄마를 데리러 메리앤의 집으로 오곤 했기 때문이었다. 메리앤의 집에서 두 사람은 더 자유롭고 친밀하다. 학교에서와 달리 진실된 서로의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코넬과 메리앤은 서로에게 끌려 자연스레 같이 자지만 사귀는 사이로 발전하지는 않는다. 보통 청소년들이 그러하듯 코넬 역시 학교에서 친구들의 평판을 중요하게 여겼고, 인기 없는 메리앤과 사귄다고 학교에 소문나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어느 날, 코넬은 메리앤을 놔두고 좋아하지도 않는 다른 여자애도 졸업 파티를 가게 되고 메리앤은 학교를 자퇴하게 된다. 

 몇 년 뒤, 대학생이 되어 다시 만난 코넬과 메리앤은 과거의 감정으로 인해 다시 얽히게 되고, 또 육체적으로도 접촉하게 된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달라져있다. 메리앤은 훨씬 예뻐진데다 친구들도 많은 인기인이 되었지만 코넬은 대학에 와서 친구들과 잘 융화되지도 못했다. 정반대의 상황에서 둘은 또 다시 서로에 대한 미묘한 감정 혹은 자격지심 같은 것(코넬이 특히)을 느끼고 고등학생 때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감정을 완전히 드러내지 못한다. 그리고 결국 또 짧은 헤어짐이 있게 된다. 

 그리고 또 다시 만났을 때, 메리앤에게는 남자친구가 생겼다. 코넬은 그 상황에 상처를 받고 또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다. 메리앤이 지금 남자친구와 섹스할때, 목을 졸리거나 맞는다고 이야기를 한 것이다. 그들은 또 멀어졌고, 그 와중에 코넬에게도 여자친구가 생긴다. 그러다 고등학교 동창이 자살로 죽게 되어 열린 장례식에서 다시 또 재회를 하게 된다. 이번에 메리앤은 남자친구와 헤어진 상태였고, 코넬은 여전히 여자친구와 함께였다. 하지만 메리앤을 바라보는 코넬의 표정에서 심상치 않음을 직감한 여자친구는 코넬과 헤어진다. 코넬은 우울증에 걸려 병원에 상담을 받으러 다니게 되고 소설도 틈틈히 쓰기 시작한다. 어쩌다 마침내 메리앤과 재회하게 되고 과거에 존재했던 서로의 진심을 확인하지만 코넬은 뉴욕으로 떠나게 되고 그들은 항상 그랬듯이 또 다시 친구로 남게 된다.

 (끝)


 읽으면서 묘사가 섬세하고 감정선이 세밀하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재밌거나 흥미진진하다는 느낌은 못받았다. '맨부커상' 후보작에 오를 정도로 훌륭한 소설인지도 잘 모르겠다. 지나친 극찬은 오히려 반감을 가지게 한다는데 내가 그랬다. 


 우유부단하며 자신의 초라한 모습이 들킬까봐 항상 진심을 드러내지 못하는 코넬. 

 가족들의 폭력에서 벗어나지 못해 어른이 되어서도 남자친구와 정상적인 관계를 맺지 못하는 메리앤. 


 처음에 작가가 '노멀 피플(normal people)'이라는 제목을 쓴 이유는 말 그대로 '보통의 사람들'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읽어보면 느껴지다시피 두 사람은 모종의 결핍으로 '보통의 사람들' 사이에 잘 스며들지 못한다. 메리앤은 고등학교 시절 내내 겉돌았고, 코넬은 대학 시절에 사람들과 융화되지 못한다. 주인공 두 사람은 스스로를 '보통의 사람들'과는 조금 다른 구석이 있다고 여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제목 '노멀 피플'은 오히려 역설적이라고 볼 수 있다.

 

 "너는 나를 사랑해주었지. 그리고 마침내 평범하게 만들어주었어." 


 이 대사는 책을 관통하는 주제로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이다. '노멀 피플'에 속하지 못하던 두 사람이 서로를 통해 '노멀 피플'이 되었다. 

 메리앤과 코넬은 결핍이 있지만 서로를 사랑한다. 비록 그 형태가 연인은 아니더라도 그들은 서로를 특별하게 여긴다. 그리고 두 사람에게 서로는 '보통의 사람들'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존재이다. 소설 내내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던 두 사람은 결말 즈음에 가서야 서로가 각자의 삶에서 얼마나 큰 의미를 지녔는지 소리내어 고백한다. 한마디로 서로를 구원해내는 것이다. 


 그러나 작가가 말하고 싶은게 무엇이든 간에 나는 이 책이 만족스럽지 않았다. 내가 이들처럼 사랑을 제대로 못해봤기 때문일 수도 있고, 또는 영국인이 아니라서 소설 속에 드러나는 계급에 대해 크게 와닿지 않은 탓일수도 있다. 하지만 요지는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메세지에 공감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소설에서 코넬과 메리앤은 서로가 함께 있을 때에야 비로소 진짜 자신을 내보일 수 있으며 진실한 자신이 된다. 그러나 메리앤과 코넬은 타인이기 때문에 서로를 완전히 알지 못하고, 상대에 대한 무지는 상처로 이어진다. 또한, 그들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진정으로 모르기도 한다. 스스로에 대한 무지, 그리고 타인에 대한 무지는 결국 무심한 행동으로 이어지고, 이는 시간이 지나서도 잊히지 않는 작은 생채기가 된다. 

 고등학생 시절, 메리앤을 놔두고 다른 여자애에게 졸업 파티를 신청한 코넬, 코넬에게 아무말도 없이 자퇴한 메리앤.

 어른이 된 후, 방세를 못내서 그러는데 같이 살면 안되겠냐고 묻지 못하는 코넬, 코넬이 정신적으로 망가진 자신을 더 이상 좋아하지 않을까봐 두려워하는 메리앤.

 이들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 정당성을 부여하지만 사실은 타인 이해의 부재의 결과이다.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이해의 부족의 결과이기도 하다. 

 

 이 이외에도 메리앤과 코넬의 갈등이 깊어지는 또 다른 원인도 존재한다. 바로 계급 문제다. 메리앤과 코넬은 완전히 다른 계급 출신들이다. 메리앤은 부유한 변호사 집안 출신이고 코넬은 노동자 집안 출신이다. 코넬의 어머니는 메리앤네 집에서 고용되어 일하는 가정부였고, 대학에서도 장학금을 반드시 받아야 하는 코넬과 달리 메리앤에게 장학금은 단지 자신이 얼마나 똑똑한지 증명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이런 차이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서서히 시작해 어른이 되어서는 아주 커다란 격차를 만들어낸다. 코넬은 자신이 메리앤보다 못한 노동자 계급 출신이라는 것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고, 때로는 그 사실이 코넬을 씁쓸하게 만든다. 이런 모든 상황이 어우러져 코넬은 더욱 더 우유부단해진다. 그리고 그런 믿음직스럽지 못한 코넬에게 메리앤은 자신을 완전히 믿고 내보일 수 없게 된다. 

 

 원래 두 사람은 함께해서 결코 해피엔딩을 맞을 수 없는 상황이다. 어릴 때부터 오빠한테 학대를 당하고, 이를 방관하는 엄마 밑에서 자란 메리앤과 우유부단할 뿐 아니라 자격지심과 스스로에 대한 확신도 없는 코넬이 어떻게 서로의 결핍을 보듬고 치유하며 함께 행복해질 수 있겠는가? 불행한 개인은 타인의 불행을 감싸안을만큼 심적으로 여유롭지 못할 뿐더러 자신의 문제에도 허덕인다. 그런데 어떻게 각 개인의 '불안정한' 사랑이 '치유'로 이어질 수 있단 말인가? 

 많은 매체에서 '구원 서사'는 하나의 판타지로 작용한다. 불행한 두 사람이 서로를 이해하고 구원하는 그런 스토리, 많이 나타나는 양상 아니던가? 그러나 사실 '구원'은 현실에서 존재할 수 없다. 진정한 '구원'은 스스로의 자각과 성찰이 동반되어야 가능하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구할 때, 또는 적어도 그렇게 마음을 먹을 때에야 서서히 구원이 이루어진다. 불안정한 사람들끼리의 만남은 짧은 위안을 선사하지만 진실된 치유는 가져오지 못한다. 타인을 통해 완전한 인생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코넬과 메리앤은 자신들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끊임없이 상대에게 무언가를 갈구하고 있는 듯 보이며(설사 직접적이고 물리적인 도움 요청이 아니더라도) 그로써 자신이 되기를 희망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 소설에서 결핍된 각 인물이 서로를 만나 '보통의 사람들'이 되었다(구원)고 느끼게 된 결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심지어 그들은 완전히 서로를 구원한 것도 아니다. 코넬은 뉴욕으로 떠날 것이고, 메리앤은 다시 혼자가 될 것이다. 그러니 이들은 서로를 구원한 것도 아닌데 구원당한 척하고 있는 것이다. 차라리 메리앤과 코넬이 자신의 결핍과 상처를 들여다보고 스스로를 이해하면서 각각의 삶을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 나갔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혹은 아예 '로맨스' 부분에 집중해서 기-승-전-결을 만들었다면 이야기는 더 깔끔했을 것이다. 


 그냥 저냥 잘 읽었지만 찬사에 비해서는 실망이 컸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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