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당연하지 않다.
내가 만일 단 사흘만이라도 앞을 볼 수 있다면 무엇을 가장 보고 싶은가 상상해봅니다. 내가 이런저런 상상을 하는 동안 당신도 앞으로 단 사흘만 볼 수 있는 상황이라고 생각하면서 함께 고민해볼 수 있을 겁니다. 셋째 날 어둠이 내릴 때, 이제 다시는 빛이 비치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다면 이 소중한 사흘을 어떻게 살아가시겠습니까? 당신이 가장 보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헬렌 켈러- 사흘만 볼 수 있다면
오늘 소개하고 싶은 글귀는 제가 삶을 대하는 태도에 큰 영향을 끼친 헬렌 켈러의 자서전에 나오는 한 단락입니다. 헬렌 켈러는 어린 시절 뇌척수막염을 앓아 시각과 청각을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장애라는 난관에 굴복하지 않고 오감이 멀쩡한 사람보다 더 풍부하게 세상을 느끼고 소외된 이들을 위해 분투하며 살았습니다.
사실 이 단락이 오래도록 마음에 머물렀던 이유는 청각장애인인 어머니를 옆에서 오랫동안 지켜봐 오며 제가 당연하게 여긴 것이 누군가는 평생을 간절히 원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이르게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익숙함에 속아 당연하게 여기지 말자는 말 아시죠? 사람은 익숙해진 상태를 당연하다고 여기기 쉽습니다. 하루는 샤워를 하다가 귀에 물이 들어가서 한동안 귀가 먹먹한 상태로 이물감을 느꼈어요. 삼분 정도의 시간이었는데도 잘 들리지 않아 너무 불편했죠. 그때 이런 불편을 평생을 겪으며 살아온 어머니는 그동안 얼마나 삶이 고단하셨을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가진 것의 소중함은 비로소 잃어보았을 때 더욱 크게 다가옵니다. 어머니의 결핍을 이해해보려 하루 동안 노이즈를 틀어놓고 이어폰을 껴서 바깥의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채로 생활해봤습니다. 정말 답답했어요. 상대방의 말이 들리지 않아 입술 모양을 읽으려 노력해야 했고 주변의 소리도 잘 들리지 않아서 항상 주변을 살펴야 했죠. 또 전화를 하고 싶은데 전화 소리를 들을 수 없으니 반드시 문자로만 업무를 처리해야 했는데 문자로 처리할 수 없무들이 너무 많더라고요.
특히 밤거리를 걸을 때엔 주변의 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공포스러웠습니다. 단 하루도 이렇게 힘든데 매일을 이런 절망과 싸우면서도 꿋꿋이 행복하게 살고자 분투한 헬렌 켈러와 어머니의 노력이 위대하게 느껴졌어요.
어머니에게 장애 같은 자신이 책임이 아닌 불행을 어떻게 이겨내며 살아왔는지 물어보았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말해주시더군요.
'준아, 살다 보면 자신의 책임이 아닌데도 불쑥 찾아오는 불행들이 많아. 그때마다 엄마도 왜 하필 나한테만 이런 일이 일어날까, 귀만 잘 들렸으면 좋았을 텐데. 이런 말을 습관적으로 하곤 했어. 우울에 빠져서 삶을 포기할까도 생각한 적이 있어. 귀울림과 난청으로 나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데 너희들까지 챙기는 게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거든. 매일매일이 도전과 같은 삶이었단다.
그런데 불평하다 보니 점점 내가 나의 삶을 갉아먹기만 하더라. 어느 순간부터 생각을 고쳐먹었어. 장애가 내 인생을 뒤흔들고 집어삼키게 두지 않기로 결심했단다. 장애가 있더라도 자신의 삶을 소중히 여기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어.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보단 지금 가진 것들에 감사하면 마음이 편해지고 나를 갉아먹는 우울로부터 벗어날 수 있어. 준아, 너도 살다 보면 힘든 일도 많고 너의 탓이 아닌 불행이 덮치기도 할 거야. 그때마다 엄마를 떠올려 보렴. 지금 네가 가지고 있는 것들은 하나도 당연한 게 없단다.'
저는 그동안 저보다 처지가 딱한 이들을 함부로 동정하곤 했습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과 외적인 기준을 놓고 비교하고 '내가 쟤보단 낫다'는 식의 공허한 자기 위안을 하며 스스로를 좀먹기도 했죠. 헬렌 켈러와 저의 어머니처럼 매일매일이 도전과 같은 삶 속에서도 자신이 가진 것들에 감사하고 스스로를 존중하며 절망과 싸워 이겨낼 수 있는 용감하고 희망적인 삶의 태도를 가진 분들과는 상반되는 삶을 살았던 거죠. 어머니와의 대화 후로 저는 타인과 비교하기를 멈추고 타인을 함부로 동정하지도 않게 되었습니다. 제가 가진 것들에만 집중하게 되었어요.
저는 이제 힘들고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이 단락과 어머니를 생각합니다. 그리고 내가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딱 사흘만 남았다고 생각해보기도 하고요.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이 유한하고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인지하는 순간 비로소 지금 가진 것들의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으니까요.
우리는 모두 불완전한 인간이라 굴곡진 인생을 달려가다 보면 누구나 지치고 넘어지고 생채기가 나면서 더 달려가기를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오기 마련입니다. 자신을 타인과 비교하며 작아지기도 하고요. 그럴 때마다 잠시 멈추어 쉬어가며 자신이 가진 것들에 대해 감사를 표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을 권유드립니다. 그럴 때 비로소 스스로를 존중하며 조금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첫걸음을 내딛을 수 있지 않을까요?
'지금 우리가 가진 모든 것들은 당연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