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서히 May 26. 2024

[서평] 유혹하는 글쓰기

스티븐 킹/김영사

<샤이닝>, <돌로레스 클레이본>, <그린마일> 등 미국 대중소설 작가로 유명한 스티븐 킹의 창작론을 읽었습니다. 출판되는 소설들은 대부분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또 영화로도 제작되어 우리에게는 영화로 더 익숙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대중 소설 작가의 창작론이라니 참 귀한 책을 발굴한 것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그리고 그의 창작론은 '실질적'이었기에 여기저기 밑줄 치면서 읽을 곳이 참 많았습니다. 창작론 관련 책들이 관념적이고 개념적으로 설명된 것들이 많은데 이 책은 현실에서 바로 적용해 볼 수 있음직한 노하우들을 방출하고 있습니다. 워낙 오래전에 출판(@2000년)된 책이라 왜 이제서야 발견했는지 안타까울 정도였으니까요. 소설 쓰기 입문자분들은 꼭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래는 이 책을 읽고 난 후, 좋은 소설 쓰기를 하기 위한 조건들을 제가 느낀대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어쩌면 누구나 예측 가능한 뻔한 이야기일 수 있으나 소설을 쓰다가 벽에 부딪혀 더이상 진전이 없는 것처럼 느끼는 분들이나 소설쓰기를 사랑하던 초심을 잃고 의무로 버티고 있는, 그래서 더이상 즐겁지 않은 분들이 한번쯤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저는 꽤 자주 아래 내용들을 되새기러 올 것 같습니다. 


1. 소설쓰기에 대한 애정 그리고 조언자 확보

스티븐 킹은 어린 시절부터 독서와 글쓰기를 좋아했는데 첫 독자는 어머니였습니다. 그는 즐겨보던 만화책의 내용을 글로 옮겨 쓰기 시작하다 어느날 어머니로부터 "너의 이야기를 써 보라"는 조언을 듣고 창작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결혼한 이후엔 아내가 그의 첫 독자가 됩니다. 아내는 그의 글을 꼼꼼하게 읽고 날카롭게 비판합니다. 사랑하는 남편이라고 해서 조금도 너그럽게 넘어가는 법이 없습니다. 혹독하리만큼 그의 소설 전개나 캐릭터의 일관성에 대해 비판하고 장면의 어색함을 지적합니다. 스티븐 킹은 아내의 그런 지적이 너무 과한 것 아닌가 싶다가도 결국 시간이 지난 후 돌이켜 보면 그녀의 지적은 언제나 옳았다고 인정합니다. 

재작년이었던가요. 서울 국제 도서전에서 만난 김영하 작가님도 비슷한 이야기를 해 주신 적이 있습니다. 자신의 글을 읽어 줄 주변인이 필요하다고 말이죠. 그들은 불특정 다수의 독자를 대신합니다. 내 글을 읽어줄 수 있는 주변인의 존재를 통해 독자의 반응을 미리 확인해 보고 내 글의 오류도 바로잡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얻는 셈이죠. 스티븐 킹 역시 말합니다. 초안을 완성한 후, 책상 서랍 속에 일정 시간 그 글을 고이 보관한 뒤 다시 한 번 찬찬히 잃어보라고요. 그 때 읽어 보는 글을 초안을 완성했을 때 보았던 글과는 많이 다를 것이라고 말합니다.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일 것이라고요. 그리고 또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자체 점검을 거친 내 글을 주변인에게 보여주라고 말합니다. 그 때가 독자에게 선보이기 전 마지막 점검 단계입니다. 두 명에게 보여준다면 두 명의 시선으로, 세 명에게 보여준다면 세 명의 시선으로, 내 글에 대한 조언을 얻을 수 있게 됩니다. 그렇다고 너무 많은 사람에게 내 글을 읽힐 필요는 없습니다. 단지 얼마나 다양한 시선으로 내 글이 읽혀지는지 놀라운 경험을 해 보라는 것입니다.


2. 서술, 묘사 그리고 대화의 적절한 활용

스티븐 킹은 소설쓰기에 필요한 요소로서 서술(Narration), 묘사(Description) 및 대화(Dialogue)를 언급합니다. 서술은 A에서 B지점을 거쳐 Z까지 이야기를 이어가기 위해, 묘사는 독자에게 생생한 현실감을 주기 위해, 대화는 등장인물들에게 생명을 불어넣기 위해 각각 적절히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죠. 서술, 묘사, 대화 각각의 도구들을 잘 활용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한 소설 속에서 이 세 가지를 어떠한 비율로 배합할 것인지도 소설의 성공 여부를 가르는 중요한 부분입니다. 

저는 특히 묘사를 설명하는 부분에서 많은 부분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저에게 가장 부족한 부분이라서 더욱 와닿았던 같습니다.

탁월한 묘사력은 후천적인 능력이므로, 많이 읽고 많이 쓰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 묘사의 '방법'을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묘사의 '분량'도 그만큼 중요하다.
많이 읽으면 적절한 분량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고,
많이 써보면 묘사하는 요령을 알 수 있다.
묘사력은 직접 해보면서 습득해야 한다.

스티븐 킹은 탁월한 묘사란 모든 것을 한꺼번에 말해주는 몇 개의 엄선된 사실들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런 것들은 대개 머리에 처음 떠오르는 사실들이라고 팁을 주기도 합니다. 또한 묘사를 잘하는 비결은 명료한 관찰력과 명료한 글쓰기에서 나온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명료한 글쓰기란 신선한 이미지와 쉬운 말을 사용하는 것이라고 덧붙이죠. 

묘사 외, 서술과 대화에 대해서도 스티븐 킹은 자신의 노하우를 아낌없이 전해 주고 있으니 관심있는 분들은 책을 읽어보실 것을 추천합니다.


3. 진실성은 필수, 상징성은 옵션

스티븐 킹은 소설쓰기에 있어서 먼저 상황을 놓고 시작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어떤 상황을 설정한 후 인물들을 하나, 둘 등장시키면서 그 인물들의 캐릭터를 점차 구체화하여 구축해 나갑니다. 그리고 그러한 작업은 스티븐 킹도 예측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등장인물들이 어떤 식으로 발전해 나갈지는 본인도 미리 계획을 짜 놓는 것이 아니라 소설의 상황이 진행되면서, 즉 이야기가 흘러가면서 그에 따라 등장 인물들 스스로 캐릭터화 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소설 자체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므로 인물은 매우 중요하다고 언급합니다. 

스티븐 킹은 등장 인물에 대해 단지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눈여겨 보고 본 것에 대해 진실을 말하라고 합니다. 즉, 등장 인물 묘사는 결국 주변 사람들을 잘 관찰함으로써 그들을 소스로 하여 쓰는 경우가 쉽고 일반적인데 그들이 했음직한 행동, 말할법한 말을 그대로 진실되게 소설에 옮겨 써야 그 인물이 생명감을 갖고 살아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물 묘사는 주변 인물 관찰을 통해 차용해 왔으나 그들이 할 법한 행동이나 말을 외면하고 즉, 진실성이 결여된 채 내가 넣고 싶은대로(예를 들어, 독자가 열광할 것 같은 방향으로) 글을 써 버린다면 그 소설은 결국 실패하게 된 것이라는 거죠.  

또한, 많은 소설가들은 내가 쓴 소설이 어떤 상징성을 담고 있기를 바랍니다. 상징성을 내포하고 있으면 소설이 보다 심오해 보이니까요. 하지만 스티븐 킹은 소설이 성공하는데 상징성이 반드시 필요한 요소는 아니라고 말합니다. 오히려 상징성이 지나치게 녹아 들어가 있다면 소설을 해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일단 이야기에 집중해서 소설을 A에서 B로, 그리고 C지점으로 서술하여 초안을 완성한 후, 서랍 속에 6주 정도 묵힌 후 다시 꺼내어 읽어볼 때 상징성이 발견된다면, 그리고 상징성을 추가할 여지가 보인다면 그 때 보완을 통해 상징성을 추가하는 방법을 제시합니다. 상징성이 필수 조건은 아니지만, 만약 추가할 여지가 있다면 작품을 장식하고 더 풍요롭게 만드는 요소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4. 수정본 = 초고 - 10%

스티븐 킹은 잡지사(90년대 미국에서는 잡지사에 단편소설을 실었다고 합니다)로 자신의 작품을 보내어 원고료를 받던 시절 일화를 소개합니다. 한 잡지사 편집장이 거절 의사와 더불어 고맙게도 "수정본=초고-10%"라는 코멘트를 남겨주었다고 하는데요. 스티븐 킹은 이 코멘트가 너무도 감사하고 유용했던 나머지, 포스티잇에 이 글을 옮겨 적고 벽에 붙여 두었다고 합니다. 그만큼 주변 조언자의 유무는 작가로서의 발전 가능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주 짧고 단호한 한 줄이었지만 스티븐 킹이 현재의 성공한 대중 작가가 되는데 강력한 역할을 한 마디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5. 안물안궁 배경 스토리는 핵심만

장편 소설을 쓰다 보면, 인물이나 상황에 대한 배경 스토리가 필요합니다. 스티븐 킹 역시 소설을 쓸 때 배경 스토리가 너무 과하진 않은지 신경을 쓴다고 하는데요. 독자들 역시 중심이 되는 스토리가 궁금해서 지금까지 쫓아왔는데, 갑자기 배경 이야기가 장황하게 오랫동안 펼쳐지면 흐름이 깨지는 느낌을 받으며 지겨워지는 것이죠. 즉, '난 이 인물의 배경이 이렇게까지 길게 설명되는 이유를 모르겠어.' 하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중심 스토리에 필요한 수준으로 적정한 배경 스토리만 제공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스티븐 킹이 유머러스하게 설명하는 배경 스토리의 활용법을 옮겨 봅니다.

배경 스토리에 관하여 명심해야 할 가장 중요한 점은
(a) 과거는 누구에게나 있다는 것, (b) 대개는 별로 흥미롭지 않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내용은 넣어야겠지만
자기 도취에 빠져 따분한 내용까지 마구 포함시키는 것은 곤란하다.
남들이 기나긴 인생 이야기를 가장 잘 들어주는 곳은 술집이다.
그러나 그것도 술집이 문을 닫기 한 시간쯤 전에만 해당되고,
그나마 여러분이 술값을 내겠다고 말한 경우에만 성립되는 일이다.


6. 다양한 경험의 축적

이미 대중작가로서 성공한 스티븐 킹은 초보 작가들을 위한 세심한 가이드를 주기 위해 자신과 교류하고 있는 초보 작가의 케이스를 이 책에서 제공해 주기도 합니다. 프랭크라는 이름의 이 청년은 초보 작가로서 자신의 장편 소설 초안을 이곳저곳 보내다가 결국 출판에 성공했다고 합니다. 그가 스스로 밝힌 성공 비결을 참고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프랭크는 이렇게 좋은 성과를 거둔 이유를 몇 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첫째, 그가 보낸 편지의 문장이 좋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편안한 어조를 만드느라고 네 번이나 고쳐 쓰고
두 번이나 아내와 토론을 벌였지요.')
둘째, 실제로 출판된 단편 소설의 목록을 제시할 수 있었고
구체적인 내용도 제법 실속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셋째, 문학상 수상작이 끼여 있었기 때문이다.
프랭크는 바로 그 점이 열쇠라고 생각한다.

 


작가의 이전글 [에세이] 독서를 권하는 사회에 대하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