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디스 워튼 / 젤리클
우선, 취미로 단편 소설을 끄적이던 내게 딱 와닿는 책 제목이었습니다. 소설 쓰는 기술이라니.
사실 소설을 쓰면서도 늘 의문이었어요. 스토리를 전개하면서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를 이끌어 내야 하는 것은 알겠는데 그러한 스킬이라고 해야 하나, 방법론에 대한 고민이 많았거든요.
헤르만 헤세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풍경 묘사에 몇 페이지 분량의 공을 들이는가 하면, 톨스토이는 상황 속
분위기를 마치 실제처럼 느껴지도록 하는 정물 묘사와 인물의 심리 묘사에 많은 페이지를 할애했습니다.
그들은 무엇을 위해 스토리 전개와 무관해 보이는 배경 묘사에 그토록 신경을 썼던 것일까요.
여름날 푸른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린 잎사귀가 산들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왜 중요한지, 남녀 등장인물의 대립 구도로 긴장감 있는 방 안에 테이블과 의자의 배치, 그 테이블 위에 올려진 티포트와 찻잔이 담고 있는 차 종류 따위가 대체 왜 구질구질하다 싶을 정도로 설명되어야 하는지 전 늘 궁금했습니다.
그러다 19세기 여류 작가인 이디스 워튼이 쓴 이 책을 우연히 만난 것이죠. 이디스 워튼은 우리에게
<순수의 시대>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순수의 시대>를 통해 여성 최초 퓰리처 상을 수상하기까지 한 그녀는 <이선 프롬>, <여름>과 같은 소설을 통해 그녀 특유의 세밀한 필체로 당시에는 보편적이지 않던 여성의 욕망이라는 주제를 잘 그려내었습니다. 그런 그녀가 <소설 쓰는 기술>이라는 산문집을 출간했고 그걸 우연히
도서관에서 발견하게 되어 내심 너무 기뻤죠. 퓰리처 상 수상 작가가 직접 소설 쓰는 기술을 전수해 준다고
하니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일이겠어요!
이 책은 꽤 치밀하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소설쓰기의 일반론부터 시작해서, 단편/장편 소설 구성, 소설 속
인물과 상황 구성 그리고 마지막으로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대한 그녀의
생각이 순서대로 정리되어 있어요.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1913년부터 1927년에 걸쳐 총 7권으로 나누어 출간되었는데, 이디스 워튼이 이 책을 출판한 시기가 1925년임을 감안하면 그녀는 아마 7권을 모두 읽지 못하고 작성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 책에도 5권까지는 언급되어 있으나 이후 6, 7권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을 보면 말이죠. 마르셀 프루스트 외에도 그녀는 이 책에서 많은 당대의 소설가들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나 톨스토이처럼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작가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우리에게 낯선, 하지만 당대에는 센세이셔널했을 법한 작가들이 더 많습니다. 지금의 우리 역시 고전문학
작가들은 어릴 때부터 교과서에서 봐 왔기 때문에 익숙하지만, 그에 비해 현대 문학 작가들은 일부 관심있는 사람들에 한해서만 인지되고 있는 상황과 유사한 거겠죠.
이디스 워튼은 이 책에서 소설 쓰기에 대한 많은 실질적 조언을 따뜻하게 전해 줍니다.
상황을 큰 덩어리로 바라보는 성향을 타고난 반면 그 일들을 각각 작은 규모로
세밀하게 쪼개 묘사하는 방법밖에 모르는 기술적 무능력이 결합된 작가들이
흔합니다. 어쩌면 우리가 아는 정도보다 훨씬 많은 실패들이 바로 이런 시야와
표현력 사이의 특정한 불균형 때문에 생길 거예요. … 유일한 해법은 더 큰 영역은 단호히 버려 더 작은 영역을 얻고, 시야는 연필 끝으로 좁히고, 큰일을 대충
피상적으로 하기보다는 작은 일을 꼼꼼하고 깊게 파는 겁니다.
좋은 주제란, 그렇다면, 그것 자체로 우리의 도덕적 결함에 한 줄기 빛을 던지는 뭔가를 품고 있어야만 합니다. 그런 확장을 하지 못하거나 그런 생생한 빛을
발산할 수 없는 주제는 겉모습이 아무리 화려해도 그저 사소한 우발적 사건,
맥락에서 벗어난 의미 없는 사실 한 조각이 되고 말아요."
단순해 보이는 소스일수록 가장 정교한 조합과 가장 완벽한 혼합을 거쳐 만들어야 하고, 단순해 보이는 옷일수록 심혈을 기울인 디자인이 필수라는 거죠.
선택이라는 귀중한 본능은 그런 기나긴 인내를 통해 희석되는데, 천재는 아니어도 천재성이 스스로 모습을 드러낼 때는 바로 그런 인내가 주로 의지할 대상의
하나여야 합니다. … 이야기가 짧을수록 디테일은 더 많이 제거되고 ‘행동을 위해 치워”지며, 효과를 위해 잉여 요소들을 덜어낼 때 무엇을 남겨둘지 고르는
선택뿐 아니라 필수적인 요소들을 제시하는 순서에도 더 많이 좌우되니까요.
이 글의 서두에서 제가 궁금해 했던, 작가의 메세지와는 거리가 있어 보였던 다양한 배경 묘사들은 사실
메세지 전달을 더 두드러지게 하기 위한 작가들의 선택이었던 것이란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배경
묘사들이 축적되어 상황의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키고 인물을 살아 숨쉬게 하는 것인데 장편 소설을 다 읽고 나면 강렬한 메세지만 기억에 남으니 그러한 메세지 축적 과정의 중요성을 쉽게 간과했던 겁니다. 그리고
유능한 작가일수록 소설에 기록할만한 가치를 가진 요소가 무엇인지 선택할 수 있는 감각을 타고나는 것인데, 그러한 배경 묘사 역시 작가들의 치밀한 계산 속에서 다 의미있게 기록된 것들인 셈이죠.
이디스 워튼의 표현을 빌리면, '모든 관점과 모든 방법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개인, 집단, 그리고 그 뒤에 놓은 사회적 배경이 작품 구성 속에서 각자 완벽히 할당된 몫을 떠맡는 근사한 그림을 완성'하는 것이 결국
소설가가 추구해야 할 방향성이 될 것입니다. 그동안 폭풍우에 휩쓸리는 돛단배처럼 방향성 없이 소설을
써 대던 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를 날것의 상태로 그냥 훅 던져 놓는 것이 아니라, 글 또한 인물, 상황, 배경의 조화와 적재적소의 효과적인 배경 설명이 어우러지면서 뭉근하게
메세지를 끓여서 내 놓는 것임을, 그래야 뜨끈한 국물처럼 독자의 마음 속에 흘러들어가 불을 지필 수 있음을 깨달을 수 있던 책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