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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서히 Apr 30. 2024

[에세이] 보리굴비 좋아하세요?

점심식사를 함께 하기로 한 그녀가 제게 물었습니다.

혹시 보리굴비 좋아하세요?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보리굴비였던 저는 내색없이 애써 태연한 척 물었습니다.

이 근처에 보리굴비 하는 곳이 있어요?


그녀를 따라 간 식당은 남도 음식점이었습니다.

메뉴판에는 수많은 남도 음식들 사이에 보리굴비가 정말 있었고 

우린 녹차물에 밥을 말아 한 수저 가득 퍼올린 후, 

식당 아주머니가 먹기 좋게 발라주신 보리굴비 살을 올려 말없이 밥을 먹었습니다.


이후 우리는 만날 때마다 당연한 듯 그 남도 음식점으로 향했고 태연한 듯 보리굴비를 먹었습니다.


내장까지 함께 말린 반건조 생선, 보리굴비 특유의 쿰쿰한 향을 녹찻물이 부드럽게 껴안아 주듯,

저의 힘들고 고된 일상도 그녀와 함께 먹는 보리굴비 한 끼가 따뜻한 위안이 되었습니다.


그녀와 저는 국적도 다르고 나이 차이도 많이 나지만 
이렇게 보리굴비를 함께 먹을 때면 가족보다도 더한 친밀감을 느끼곤 합니다. 
말없이 밥을 먹어도 불편하지 않은 무드, 
서로의 생각과 가치관을 존중해주는 태도, 
모든 것을 끝까지 말하지 않더라도 이미 느끼는 공감.


'친하다'라고 부르는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봅니다.

어린 시절부터 오랜 시간을 함께 한 친구라면 '친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저의 가족, 성격, 취미 같은 것들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친구라면 '친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어쩌면 오늘 처음 만난 이와도 '친하다'고 말할 수 있는 관계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순간의 강력한 교감은 매서운 속도로 낯선 이에 대한 경계와 긴장을 허물어뜨립니다.

교감이 거듭될수록 저는 상대방이 되고 상대방은 제가 되어 

완벽한 하나가 되었다는 희열이 눈물로 맺히는 경험, 해보셨나요?

희노애락과 무관한 완전한 희열에서 오는 뜨거운 눈물 말입니다.


그 순간, 그 찰나에 저는 그와 그녀와 그리고 당신과 '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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