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써니썬 Jul 11. 2021

미국에서 처한 변호사 선임 위기

UCSC Wildcat Strike 3; 아직은 살아갈 만한 세상

    파업 시작 2주차. 모든 게 멈췄다. 


    대학원생 조교들은 학생들의 성적을 제출하지 않았다. 학교측에선 당일까지 성적 마감을 하지 않는다면 조교들을 해고할 거라 단단히 경고했다. 이에 맞서 오전 11시부터 학교의 중앙광장인 Quary Plaza에서 정문 base까지 시위 행진이 있을 거란 메일이 왔고 나는 미련없이 수업을 쨌다. 수업을 듣는 것보다 그들에게 힘을 보태는 일이 다신 돌아오지 않을 이 순간, 내 시간을 더 값지게 보내는 거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eight three one... plaza에 다 와가는데 누군가 숫자를 있는 힘껏 외치고 있었다. 조금 더 다가가니 사람들은 마커로 그 숫자들을 자신의 팔에 급히 받아적고 있었다. 그렇다. 바로 변호사들의 전화번호다. 학생들이 혹여나 시위현장에서 잡혀가게 된다면 무료로 우리를 경찰서에서 꺼내줄 분들이 계셨고 만약을 대비해 전화번호를 몸 곳곳에 적어두는 것이다. 저 모습을 보는 순간 솔직히 도망가고 싶었다. 우선 나는 변호사를 선임하더라도 외국인이기에 어떻게 될 지 모르는 상황이었고 둘째는 한국으로 가야하는 불상사가 벌어질까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보람찬 일을 하고는 싶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교환학생 생활을 걸고 싶진 않았다. 

    혼자 갈등하고 있을 때, 옆 사람이 내게 사진 속의 종이를 전달했다. 감옥으로 잡혀간다면 법적인 도움을 줄 수 있으니 작성하라는 신청서였는데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애초에 채울 수 있는 칸이 별로 없었다. 미국에는 보호자도 없고 법적 전략 같은 건 살면서 생각해본 적도 없는 데다가 너무 놀라서 머리도 잘 돌아가지 않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다들 열심히 무언가 적긴 하였지만 나는 그냥 가방에 넣어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오히려 이 신청서를 받으니 마음이 더 편해졌다. 변호사든 뭐든 어쨌든 경찰서에서 살아나올 수는 있겠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어서일까. 아님, 정의가 살아있음을 느꼈기 때문인가. 세상을 정상 궤도로 돌려놓고자 하는 그들의 불타는 의지가 전해져서 그랬으려나.


함께 시위 행진한 모르지만 가까웠던 학생들

    한 시간 가까이 되는 시간을 시위 노래를 부르고 린다와 수다도 떨며 한참을 걸었다. 산타크루즈답게 시위 행진 역시 축제와도 같았다. 분노는 감췄고, 에너지는 넘쳐났다. 슬픔은 숨겼으며, 밝음으로 이겨냈다. 어두운 밤도 결국엔 눈부신 해가 거둬가는 것처럼 말이다. base에는 이미 수 십 명의 학생들이 우리를 맞이하는 것 마냥 피켓을 들고 한 줄로 길게 서서 또 구호를 외치고 있었는데 순간 울컥했다.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하나의 목표를 위해 하나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니.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올바른 세상을 갈망하고 있다니. 그리고 그 속에 내가 있다니.


    불같이 타올랐던 시위는 코로나로 인해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햇빛이 내려앉던 base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사람들로 가득 찼던 공간엔 그 누구도 없었다. 하나둘씩 산타크루즈를 급히 떠나게 되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엔 절대 사라지지 않을 무언가가 남았다.


    찰나와도 같았던 미국 생활은 나에게 마치 영화와도 같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장면을 꼽자면 단연코 시위 참여이다. 절실함이 모이면 세상이 움직인다. 소수의 대학원생들이 학교를 향해 외쳤던 분노의 목소리는 학교 전체로 번졌고 더 나아가 UCSC 뿐만이 아닌 UC Berkeley 등 다른 지역의 학교들까지 퍼져나갔다. 정치계 역시 학생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기 시작했다. 변화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아직 걷지도 못하는 아이를 업고 시위 행진 내내 참여했던 어머니부터 거동이 불편한 학생들까지 수많은 사람들과 몸을 부딪히고 눈을 마주하며 걸었던 그 순간은 아직 너무나도 생생하고 짜릿하다.


   사회를 다시 정상 궤도로 돌려놓고자 하는 간절한 기도는 세계 어느 곳이든 존재한다. 대학교 2학년 때, 교내 청소노동자 분들이 우리의 등하굣길에서 시위를 하신 적이 있다. 그들 역시 햇살이 감싸던 공간에서 묵묵히 목소리를 내고 계셨다. 그날의 나는 죄송하게도 무슨 일인가 하고 스쳐지나가기만 했다. 만약 시간을 되돌려 그 순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아무 말 없이 그들의 옆에 앉을 것이다.


    행동하지 않으면 달라지는 건 없을테니.

작가의 이전글 나이 스물 셋에 저지른 첫 가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