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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브란스 : 단절> 시즌 1에 대한 단상

나를 나로, 우리를 우리로 만드는 기억

by 도유


출처 : Apple TV

어른으로 산다는 게 힘들게 느껴졌던 순간 중 하나는 연인과 헤어진 다음 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출근했을 때였다. 때로는 회사에서 있었던 일이 퇴근 후에도 나를 괴롭혀서, 몸은 회사에서 나와도 마음은 회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스위치를 켜고 끄는 것처럼 직장과 일상을 쉽게 전환할 수 있다면, 더 단순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세브란스 : 단절>은 일과 일상이 철저하게 분리된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회사 '루먼(Lumon)'의 단절 층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단절 수술(Severance Procedure)'을 통해 회사 안과 밖의 기억이 분리된다. 회사에서는 회사에서의 기억만, 일상에서는 일상에서의 기억만 가지게 된다. 우리는 주어진 역할에 따라 다르게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 회사에서는 팀장으로서 팀원들을 이끌 수도 있고, 집에서는 막내로서 부모님의 챙김을 받을 수도 있다. 역할에 따라 다른 나의 모습을 통합하며 이런 모습도, 저런 모습도 다 나라고 인식한다. 하지만 단절 수술을 받은 사람들은 직장과 일상에서의 자기를 통합해서 인식할 수 없다.


단절 수술을 받은 사람들은 직장에서 사회화를 통해 직장에서의 자아 정체성을 형성한다. 회사 편람을 통해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것을 명시적으로 배운다. 동료들의 행동과 그에 대한 결과를 관찰하며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학습한다. 상과 벌 시스템으로 특정 행동이 강화되거나 소거된다. 회사에서는 간식, 장난감, 파티 등을 상으로 제공하는데, 시청자의 입장에서 '이런 걸 보상으로 준다고?' 반문하게 된다. 우리가 원하는 것이 우리가 진짜 원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화의 결과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단절 층에 있는 부서 사이 증오는 그들이 직접 겪은 경험이 아닌 들은 이야기로부터 시작되었다. 외집단에 대한 증오가 학습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루먼이라는 회사가 운영되는 방식은 사회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인간이 어떤 방법들을 사용해 왔는지 보여준다.


단절 수술은 개인 내 단절뿐 아니라 관계의 단절을 가져온다. 단절 수술을 받은 사람들은 직장 동료들을 직장에서만 안다. 직장 밖에서 마주치더라도 같이 일하는 동료임을 알 수 없다. 또한 직장에서는 내가 사랑하는 연인, 가족의 존재를 알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을 생각할 수 없다. 단절 수술을 받은 사람들은 '일할 때 사랑하는 가족의 존재를 잊는 것이 괜찮은지' 질문받는다. 관계는 나와 타인 사이의 공유된 기억을 바탕으로 형성된다. 단절 수술로 인해 소중한 사람을 기억하지 못하는 동안 나는 의식 속에서 그 사람을 잃게 된다. 하지만 그 사람을 기억하는 존재도 나라면, 나는 그 사람과 관계없을 수 있을까?


세상에 태어나 겪는 모든 경험이 나를 만든다. 살다 보면 마치 없던 일처럼 잊고 싶은 순간도 있다. <세브란스 : 단절>에서 마크는 사랑하는 사람을 상실한 고통으로 인해 단절 수술을 받는다. 그 결과 마크는 직장에서는 상실로 인한 고통을 느끼지 않게 된다. 하지만 고통 자체는 사라지지 않고, 그 고통을 감당하는 주체는 여전히 그 자신이다. 우리 삶의 고통을 없던 일로 끊어내는 것이 아니라 고통까지 끌어안을 때 고통으로부터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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