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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꼽슬이 Apr 24. 2024

10km와 하프코스는 많이 달랐다.

초보 러너의 마라톤 체험기

2022년은 달리기를 시작한 지 2년째로,

30분 정도는 많이 어렵지 않게 쉬지 않고 달릴 수 있게 되었다.


그러고 나니, 뭔가 기록을 측정해보고 싶은 마음에

마라톤 대회에 신청을 하게 되었다.


10km 코스만 세 번을 달렸는데, 두 번은 버츄얼 레이스로 공인 앱을 통해

혼자 정해진 거리를 달린 기록으로 인증을 받는 방식이었고,

한 번은 현장에서 출발선에 떼로 모여 서 있다가 출발 신호에 일제히 달리는 마라톤이었다.


확실히 현장에서 여럿이 같이 달리니 더 신나고, 기록도 단축시켰던 경험이 있다.  

그래서 2023년에는 하프코스에 도전해 봐야겠다고 쉽게 생각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일들로 작년에는 마라톤을 아예 한 번도 시도를 못했다.




올 해는 여름에 해외로 1년 살이 나갈 계획이 있어, 그전에 꼭 하프코스를 완주하고 싶었다.


그래서 2022년에 좋은 기억이 있는 22회 경기마라톤대회 하프코스를 신청했다.


3, 4월에는 나름 준비한다고 일주일에 두 번은 1시간 쉬지 않고 달리기를 했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였다. 지나고 보니 최소한 15km까지는 달려봤어야 했던 것 같다.


그렇게 힘들 줄은 몰랐다. 예상을 벗어나도 한참 벗어났다.


자신감이 넘어 오만했었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마라톤 5일 전, 이미 몇 번 하프 코스 완주해 보신 집사님께 꿀팁을 듣지 못했다면,

나의 완주는 물 건너간 일이었을 것이다.


10km 달릴 때는 주최 측에서 준비해 준 물 두 잔이면 충분했다.


그러나 하프는 물도 있고, 물에 적신 스펀지도 있고, 중간 좀 지나서는 보급품이라고 부르는 바나나와 초코파이 비슷한 것들이 있었는데 그것으로 충분치 않았을 것이다.


나는 집사님이 알려주신 에너지젤을 4개 준비해서 갔다.


출발 전에 하나 먹고, 중간중간 하나씩 두 개를 달리다가 먹었고, 완주 후에 마지막 한 개를 먹었다.


마지막 1km가 남았을 때는 복근에 근육 경련이 올 기미가 보였는데,

그래도 완전히 경련이 오지는 않고 지나갔다.


그만한 것은 중간에 먹어 준 에너지젤 덕분인 게 맞는 것 같다. 보급품은 먹지 않을 수 있었던 것도.

그것을 먹었다면 굉장히 입이 텁텁해서 혼났을 것이다.


그리고 초반에 오버페이스로 너무 힘들어, 여름날 헥헥 대는 강아지처럼 입 벌리고 헐떡이며 달리고 있었는데 뒤에서 어떤 무리가 함께 달리며, 그중 유경험자로 보이는 사람이 '입으로 숨 쉬지 마'라고 크게 얘기해 주는 게 귀에 들어왔다.


분명 나에게 한 얘기가 아니었는데, 나한테 꼭 필요했던 말이었다.


그게 들리게 하신 것도 그분의 손쓰심이었다고 나는 느꼈다. 은혜로운 경험....


그 뒤로 잠시는 입을 벌리고 숨을 쉬더라도 가능하면 코로 숨 쉬려고 노력했다.

그게 탈수를 막고 끝까지 달리는데 일조했음은 분명하다.


이런 여러 가지의 도움으로 나는 하프코스를 완주할 수 있었다.

그리고 3일이 지난 지금....

사실 아직도 온전히 회복이 안되었다.

그 여파로 양쪽 입술 끝에 수포가 생기고, 왼쪽 눈엔 결막염이 왔다.... 감기 같은...


사실, 의대 실습하던 시절 이후 입술 단순포진은 처음이다.

이렇게 면역력이 떨어지다니...


운동은 적당히 하면 보약보다 훨씬 훌륭한 약이지만,

과하면 독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고 있다.


다음에 하프를 달리게 되면, 정말 미리 체력을 다지고, 훈련도 체계적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이런 생각을 하는 거 보면, 사람은 정말 망각의 동물이 맞다.


하프 당일 완주 후에는, '이게 내 인생 마지막 마라톤이다'라고 생각했었는데 말이다.


완주의 기쁨은 그래도 꽤 크다. 페북 피드에, 풀마를 몇 번이나 완주한 선배가 '진정한 마라토너의 세계에 입문한 것을 축하한다'라고 하는 것을 보면... 하프 정도는 완주해야 이런 얘기를 들을 수 있구나 싶고, 10km는 마라토너에게 마라톤이라고 말하면 안 되는 거리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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