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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Use Apr 08. 2021

멸망 속에서 인류는 어떻게 구원될까?

김초엽 作 - <지구 끝의 온실>

2055년, 목숨을 위협하는 먼지 '더스트 폴'이 지구를 뒤덮었다. 2070년에는 세계 인구의 87%가 감소했으며, 그중 90% 이상이 더스트 및 더스트 폴이 초래한 간접 요인으로 사망했다.



김초엽 작가의 <지구 끝의 온실>에 나오는 인류 대멸망의 이유다. 포스트 아포칼립스 속에서도 남은 인류는 해결책을 찾아냈다. 그리고 다시 남은 인류에게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


밀리의 서재 여덟 번째 종이 책


더스트 시대에는 이타적인 사람들은 살아남을 수가 없었어.
물론 그 이타적인 사람들의 후손인 우리가 할 말은 아니지만.


그 후손 중 하나인 한국인 '아영'은 더스트 이후의 생명체들을 연구하는 '더스트 생태학'과를 졸업한 연구원이다. 아영은 화제의 식물인 '모스바나'라는 잡초를 연구하는 임무를 맡게 된다.



모스바나는 세발갈고리덩굴의 변형종으로, 빠른 속도로 증식하여 중요한 생태 자원들을 손상시키고 있었으며, 사람에게 닿으면 알레르기 반응도 일으켰다.


생존과 번식, 기생에 특화된 식물이지요. 마치 더스트 폴 시대의 정신을 집약해놓은 것 같다고 할까요. 악착같이 살아남고, 죽은 것들을 양분 삼아 자라나고, 한번 머물렀던 땅은 엉망으로 만들어버리고, 한 자리에서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멀리 뻗어나가는 것이 삶의 목적인... 어떻게 보면 그 자체로 더스트를 닮은 식물이에요. 


모스바나더스트와 닮았다. 심지어 더스트가 아닌, 모스바나가 지구를 멸망시켰다는 음모론도 나돌았다. 



모스바나에 대해 연구하던 아영은 에티오피아의 마녀라 불리어지는 아마라와 나오미 자매를 찾아가라는 메일을 받는다. 메일에는 푸른 불빛의 사진이 함께였다. 아영은 나오미를 찾아가고, 나오미가 더스트 시대를 떠올리며 진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극을 이끌어가는 주인공은 네 명이다. 현재를 살고 있는 아영. 그리고 더스트 시대에 어린아이였으며, 현재 그 시절을 떠올리고 아영에게 전해주는 나오미. 나오미가 지켜본 레이첼과 지수.



두 개의 기억이 아영의 유년기를 지배한다. 푸른빛이 흩날리던 잡초투성이 정원과, 어딘가 다른 세계를 바라보는 것 같던 노인의 뒷모습. 아영은 어쩌면 그 기억들이 자신을 말이 없는 생물들에 대한 연구로 이끌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끔 하곤 했다.


나오미와 아마라는 더스트에 내성이 있어 운 좋게 살아남은 어린아이들이다. 생존자들이 살아 있는 돔 시티 안에서는 내성종의 피를 끊임없이 뽑아 실험 대상으로 썼다. 나오미 자매는 돔 시티를 탈출해 떠돌아다니다가 다시 잡히고, 피를 뽑히고, 다시 도망치고를 반복하며 살아간다.



누군가를 의심하는 것도, 늘 배신을 경계하는 것도 너무 많은 체력을 소모하는 일이었다.


목숨을 위협받으며 도망 다니던 두 자매는, 숲 깊은 곳에 숨어 있는 프림 빌리지에 도착하게 된다. 그곳은 여성들끼리 모여 살고 있는 작은 마을이자 일종의 대피소였다. 나오미는 아마 그들이 모두 내성 종이기에, 돔 시티 밖에서도 살아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나오미는 그곳이 좋았다. 프림 빌리지의 리더는 지수였고, 마을의 꼭대기에는 온실이 있었다. 나오미는 가끔 창문으로 온실에서 일을 하고 있는 레이첼을 볼 수 있었다.


레이첼은 온실에서 인류를 구원할 식물을 만들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았고, 지수는 온실의 기계들을 정비하는 실력 좋은 정비사였다. 나오미는 호기심을 가지고 둘을 관찰한다.


둘의 개인적인 관계와 이야기들이 모스바나나 더스트와 무슨 상관인 걸까?



이들은 정말 인류를 구원할 사람들일까? 그들은 과연 인류를 구원했을까? 마을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세상을 구한 것은 누구일까? 


독자들은 아영의 입장에서 함께 궁금증을 느끼며, 호기심을 해결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그녀를 따라간다.



기계는 인류를 멸종시키기도, 인류를 구원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건 인간도 마찬가지다. 살아남아야만 하는 험난한 세상 속에서 자신을 혐오하게 되고 나는 이기적인 사람이라 단정 짓지만, 결국 연대와 믿음, 사랑으로 우리는 해결책을 찾아낸다.



김초엽 작가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 중 하나다. 그리고 <지구 끝의 온실>은 그녀가 도전한 첫 장편 소설이다. 짜임새 있고, 탄탄하고, 단편만큼이나 훌륭했다.

 

그녀가 쓴 작품들이 대게 그렇듯이 이 이야기 또한 여운이 오래 남고 애틋함이 느껴진다. 후반부에는 반전도 있어서 충격을 준다.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배경으로도 이렇게 동화 같은 작품을 만들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신비롭고 흥미로운 작품이다. 우리가 코로나 시대를 겪고 있어서 더 와 닿는지도 모르겠다. 김초엽 작가님이 앞으로도 더 많은 장편을 쓰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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