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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Use Apr 11. 2021

인간이 극도로 두렵습니다

다자이 오사무 作 - <인간 실격>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저는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에 나오는 유명한 첫 문장이다. 도입부부터 강렬하게 독자를 끌어당긴다.


민음사와 교보문고에서 발매한 한정판 <디 에센셜 다자이 오사무>를 추천한다.   양장본이라 소장 가치도 있고 다자이 오사무의 다른 단편들도 함께 볼 수 있다.


이 글의 주인공은 '요조'지만, 작가인 다자이 오사무의 자전적인 소설이다. 돈 많은 집에서 태어난 것에, 심지어 그 돈이 정당히 벌어진 돈이 아니라는 것에,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자신의 조국인 일본의 행태에, 끊임없이 부끄러워하며 살아온 그의 인생은 어딘지 윤동주를 떠올리게 하는 부분이 있다. (물론 그런 부분에서만이다.)


요조는 인간이 두려워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청년이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요조는 익살꾼이며 밝은 아이지만, 사실 그의 내면은 침체되어 있고, 어느 것에도 흥미가 없으며, 항상 주변 인간들에 대한 불안과 공포 속에서 살아간다.



저는 인간을 극도로 두려워하면서도
아무래도 인간을 단념할 수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 한 마디로 요조의 성향이 짐작 갔다. 본인이 보기에 자신은 사회 부적응자이지만, 인간과 함께 어울리고 싶어 쾌활함으로 무장한 채 사교성 있는 척 살아가는 아이. 이 책이 (원래도 베스트셀러였지만) 갈수록 더 많이 팔리고 있다는 것은, 현대 사회에 요조에 자신을 투영하고 공감하는 젊은이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뜻이 아닐까?


그는 행운아라는 말을 들으며 살아왔지만 정작 자신은 지옥 가운데서 사는 느낌이었다고 한다. 오히려 그를 행복하다고 하는 사람들 쪽이 훨씬 더 안락해 보였다고.



그저 밥만 먹을 수 있으면 그것으로 해결되는 괴로움. 그러나 그 괴로움이야말로 제일 지독한 고통이며 제가 지니고 있는 열 개의 재난 따위는 상대도 안 될 만큼 처참한 아비지옥일지도 모릅니다.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치고는 자살도 하지 않고 미치지도 않고 정치를 논하며 절망도 하지 않고 좌절하지도 않고 살기 위한 투쟁을 잘도 계속하고 있다. 그렇다면 괴롭지 않은 게 아닐까? 그런 사람들은 철저한 이기주의자가 되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확신하고 한 번도 자기 자신에게 회의를 느껴 본 적이 없는 것은 아닐까? 그러면 편하겠지.


실제 다자이 오사무는 자살 시도를 꽤 여러 번 했으며, 그중 마지막 시도는 성공하여 서른아홉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정신 병원에도 갇혀 있었으니, 위 문장은 정말로 그가 항상 지니고 있던 생각이었을 것이다.



20대 초반에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이 책을 읽고 꽤 충격받았던 기억이 있다. 요조의 이야기가, 나의 내면과 너무나 닮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타인은 항상 나를 지치게 했고, 아프게 했다. 

 

어쨌든 여기에도 나를 위협하는 끔찍한 인간이 있었구나.
타인. 불가사의한 타인. 비밀 투성이 타인.


요조가 하는 행동들은 공감이 되지 않는 부분들이 많았지만, 요조가 하는 생각들은 대체적으로 공감이 갔다. 나도 인간이 두렵고 인간은 정말로 알 수 없다고 생각하며, 혼자 상처 받고 우울해 하기를 반복했었으니까. 하지만 요조가 그랬듯이, 나도 나를 상처 준 타인을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혐오에 빠지곤 했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위안도 받았다.


이 책을 처음 읽은 후로 내가 좋아하는 책 중 한권이 되었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하리라 믿어 친구에게 선물했다. 하지만 친구는 요조라는 인물에 전혀 공감하지 못했고, 인간의 내면이란 얼마나 다양하고 다른가를 깨달았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지금, 이 책을 다시 읽어보니 나 또한 요조에게서 많이 빠져나와 있었다. 이제는 타인도 나와 다를 바 없는 인간으로 보게 되었으니까.



짧은 기간 동안 나에게 내면의 변화를 가져다준 것은 사람도 아니고, 경험도 아니고, 그동안 읽어온 수많은 책들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책은 내면은 단단하게 만들어 주고 나를 성장시킨다. 타인의 다양한 성격들과 깊은 내면도 책을 통해서야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다. 그렇다고 타인을 기피하는 요조의 내면이 열등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내면이 우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제 불행은 거절할 능력이 없는 자의 불행이었습니다. 권하는데 거절하면 상대방 마음에도 제 마음에도 영원히 치유할 길 없는 생생한 금이 갈 것 같은 공포에 위협당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본인이 타인에게 큰 상처를 받기 때문에 남들보다 타인을 더 잘 배려하며 타인에게 상처주기를 꺼려하는 요조는, 그런 성격으로 인해 인간에게 둘러싸일 수밖에 없는 역설적인 상황에 빠져 있게 된다. 하지만 타인을 기피하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가리지 않고 하며 활발하게 지내는 사람들은, 본인은 괜찮겠지만 자신도 모르게 타인들에게 상처를 주는 상황이 생기게 된다.


옳고 그름은 없다. 선과 악도 아니다. 그저 각자 성향이 다른 사람들일 뿐.



요조가 선택한 자살이라는 결과를 비난할 생각도 없다. 누구도 그의 삶을 살아보지 않고서는 그럴 자격이 없다.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고귀한 감정이다. 그저 인간은 각자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나와는 전혀 다른 타인도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살아가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 아닐까.


지금까지 제가 아비규환으로 살아온 소위 '인간'의 세계에서 단 한 가지 진리처럼 느껴지는 것은 이것뿐입니다.
모든 것은 그저 지나갈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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