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량 作 -<빛 속으로>
녹색광선에서 출판하는 책을 좋아한다. 아직 몇 권 출간되지는 않았지만, 양장본으로 된 디자인도 좋고 선정된 작가와 작품도 좋았다. 그리고 최근에 김사량 작가의 <빛 속으로>라는 새로운 책이 출간되었다.
부끄럽게도 이전까지는 김사량에 대해 알지 못했다. 그는 친일작가와 저항작가라는 극단적으로 다른 프레임 사이를 오간 작가라고 한다. 그래서 광복절을 맞이하여 이번 기회에 작가에 대해서도 알아보고, 책도 읽어 보게 되었다.
김사량은 1914년 3월 3일생으로 식민지 조선에 태어나 평양 보고 5학년 때 항일시위를 하다 퇴학당하고, 일본으로 밀항하여 도쿄제대에 입학했으며, <빛 속으로>를 일본어로 써서 아쿠타가와 상 후보에 올랐다. 이후에도 일본의 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작품 <천마>, <풀이 깊다>를 연속해서 '일본어로' 발표한다. 시대의 질곡을 피하지 못해 제국의 펜 부대로 동원되기도 했지만 결국 단신으로 중국 타이항산의 항일 근거지로 탈출했고, 해방이 되면서 고향인 평양으로 돌아갔다. 한국전쟁 때는 종군기자로 남하했으며, 퇴각하는 길에 심장마비로 사망했다고 알려져 있다. (223p 해설)
그는 보기 드물게 친북 작가인 동시에 친일파로 분류되던 인물이며 실제로 그런 이유로 1980년대 말까지 국내에서 언급조차 되지 않은 비운의 작가였다. 그러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윤동주에 비견되는 저항작가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 책에는 <빛 속으로>, <천마>, <풀이 깊다>, <노마만리> 네 편이 실려 있다. <빛 속으로>는 도쿄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조선인 대학생의 이야기이고, <천마>는 본인 스스로를 과대평가하며, 일본 권력에 빌붙어 다니는 소설가 '현룡'에 대한 이야기이다. 경성을 무대로 했다. 그리고 <풀이 깊다>는 강원도 산골의 이야기로, 일본의 색의 장려 운동(조선 총독부가 흰옷이 생산력을 떨어뜨린다고 생각해 백의 착용을 금지했던 정책)과 사이비인 백백교에 대해 말한다. 하얀 옷을 입지 못하게 하는 일본과, 하얀 옷만 입게 하는 백백교. 둘은 전혀 달라 보이지만 서민을 착취한다는 공통점이 있었으며, 언어뿐만 아니라 색깔마저 권력이 되는 식민지 상황을 보여주는, 나에게는 가장 감명 깊었던 이야기다. <노마만리>는 두꺼운 책의 도입부만이 실려 있는데, 김사량의 망명기에 대한 이야기로 베이징을 무대로 한다.
<빛 속으로>의 1인칭 화자인 '나'는 '남'씨 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일본식인 미나미 선생님으로 불렸다. 일본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불리는 게 좋다고 생각하지만 한 편으로는 마음이 불편하다.
나는 위선을 떠는 것도 비굴한 것도 아니라고 몇 번이나 스스로를 납득시켰다. 그리고 당연히 어린이부 안에 조선인 아이라도 있다면 나는 일부러라도 나를 '남'선생이라 부르도록 할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변명했다.
아마 주인공은 김사량이 자신을 투영한 인물이 아니었을까? 그의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싸우는 마음을 읽고 있는 듯했다. 특히 주인공이 조선인 청년 '이 군'과 대화하는 부분에서 그게 더 잘 부각된다
"사실 선생님한테 어느 나라 말로 이야기하면 좋을지 모르겠으니까요."
그의 말속에는 젊은이다운 분노가 담겨 있었다.
"물론 나는 조선인입니다."
기분 탓인지 대답하는 내 목소리가 약간 떨렸다. 아마도 이 군 앞에서 적어도 이름에 대해서는 신경이 쓰였었나 보다. 아무렇지 않은 기분으로 그를 대할 수 없었던 것은 내 마음속에 비굴함이 존재한다는 증거임이 틀림없었다. (20p)
주인공은 부끄러움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계속 자신을 합리화시키기 위해 일본인의 이름으로 지낼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만들어 낸다. 그의 속마음을 읽고 있노라면 윤동주와 다자이 오사무가 생각나기도 했다.
그가 가르치는 학생 중 하나인 하루오는 어딘가 비뚤어진 아이다. 그는 주인공을 조센징이라고 부르며 놀려댄다. 그럼에도 주인공은 사랑과 관심으로 하루오를 대하며 아이에게 휘말리지 않는다. 의분을 참지 못하는 조선인 청년 이 군은, 주인공이 하루오를 감싸주는 것 마저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선생님은 조선인이라고 따돌림당하는 게 무서워서." 그는 조롱하듯 외쳤다. " 저 녀석을 결국 끌어안으시려는 거죠?"
"무례하게 말하지 마시오."
나는 어쩐 일인지 울컥해서 화를 냈다.(40p)
'위선자 녀석, 너는 또 위선을 떨려고 하는구나.'
내 곁에서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너도 지금은 근성이 바닥나서 비굴해졌잖아.'
나는 깜짝 놀라 그 목소리로부터 뒷걸음질 치려는 듯 대답했다.
'어째서 나는 늘 비굴해지지 않을 거라고, 그럴 수 없다고 애쓰고 있을까? 그것이 오히려 비굴의 늪으로 발을 담그기 시작한 증거가 아닌가......'
...
하지만 역시 나는 안이하게 비굴을 짊어진 채 엎드려 있었던 것일까? 따라서 지금은 스스로를 다그치는 쪽을 택했다. 저 무구한 아이들과 조금이라도 거리를 두지 않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하지만 결국, 자신을 꼭꼭 숨기려고 어묵 바에 온 조선인과 너는 무엇이 다르다고 할 것인가! (41p)
그래서 나는 이 땅에서 내가 조선인이라는 것을 의식할 때마다 무장해야 했다. 그렇다, 분명히 나는 혼자만의 진흙탕 같은 연극에 지쳤던 것이다.
주인공의 혼란스러움 속에서, 하루오와 서서히 가까워지는 과정은 꽤 따뜻하다. 하루오는 그저 잘못된 시대에 태어나 차별을 당하며 비뚤게 자라난 어린아이일 뿐이다. 국가도, 가정도 지켜주지 못했던 어린아이는, 진심을 다하여 대해주는 주인공에게서 점차 안정감을 찾아간다.
"나는 조센징이 아니야. 나는 조센징이 아니라고! 그렇죠, 선생님?"
나는 그의 몸을 꼭 안았다. 내 눈가에 뜨거운 것이 울컥 솟는 것을 느꼈다. 이 군의 시퍼렇게 독이 올라 흐트러진 모습도, 이 소년의 아픈 울부짖음도 책망할 수 없는 기분이었다.
우리나라 사람이 일본어로 쓴 책을, 다시 우리말로 번역한 책을 읽는 기분은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번역가 '김석희'는 김사량을 20년 동안 연구하며 박사학위까지 받은 사람이다. 그래서 모든 문장들이 매끄러운 것이 한 문장 한 문장 고심해서 번역한 게 느껴지는 책이었다.
언어는 그 언어를 사용하는 국가와 유리될 수 없다. 적의 언어로 자신이 좋아하는 문학 활동을 해야 했던 김사량의 마음은 어땠을지, 이 책을 읽으며 조국어의 소중함을 생각해 본다.
글을 쓰면서도 새삼 힘든 것은 언어이다. 그래서 문장에서 일본어를 죽이고 싶다고까지 생각해 본다. 모국어를 일본 문자로 생경하게 직역해서 옮기면 과연 어떤 것이 될 것인가. - <잡음>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