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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Use Aug 22. 2021

노벨상 수상 작가가 그린 인공지능 로봇과 인간의 우정

가즈오 이시구로 作 - <클라라와 태양>


가즈오 이시구로의 노벨상 수상 이후 출간된 <클라라와 태양>, 올해 초 서점이나 SNS에서 안 읽을 수 없을 정도로 홍보를 했던 책이다.


인공지능 로봇과 인간 소녀의 우정을 그린 이야기라니, 진부할 것 같아서 미루고 미루다가 이번 기회에 읽게 되었다. 초반부는 생각보다 흥미진진했으며, 중반부부터는 늘어지기 시작해 페이지 한 장 한 장을 넘기는 게 힘들어지게 하더니, 후반부에서 훅 치고 들어오며 다시 재미있게 달려간다.


책 표지가 정말 예쁘다!


이 책은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하여, AF라고 불리는 인공지능 로봇인 클라라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진열대에 늘어져서 자신을 선택할 인간을 기다리는 AF들은 마치 지금의 펫 샵을 연상시킨다. 선택이 되지 않은 AF들은 진열대 뒤로 밀려나며, 결국 사라지기도 한다.


클라라는 다른 AF들과는 다르게 관찰력이 뛰어난 AF이다. 하지만 인공지능의 시점으로 쓰여진 세상은 어딘가 왜곡되어 있으며, 그것을 해석해내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가령 길가의 노숙자가 저녁에는 가만히 엎드려 있다가 아침에는 일어나 돌아다니는 것을 보고는, 거지 아저씨가 죽어가다가 태양의 힘으로 살아났다든가 하는 식으로 해석을 해 버린다.


클라라는 계속 태양에 주목하는데, 그 이유는 아마 AF들이 태양열을 에너지원으로 작동하기 때문인 것 같았다.



클라라는 조시라는 소녀에게 선택되어, 그녀의 집으로 가게 된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향상'이라는 걸 선택할 수 있는데, 추측으로는 유전자 조작 같은 것을 통해 지능 수준을 높이는 것을 말하는 듯했다. 하지만 여기에는 심각한 부작용이 따른다. 잘못되면 큰 병을 가지고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조시의 언니도 그렇게 죽었고, 조시도 '향상'을 하느라 몸이 약해졌다. 조시의 친구들은 모두 '향상'을 받은 아이들이었고, 오직 릭만이 향상을 선택하지 않은 아이였다. 아이들은 릭을 이상하게 보고, 부모들도 티는 안 내지만 왜 릭의 부모가 그런 선택을 했을까 좋지 않게 수군거린다.



아픈 조시에게 클라라는 최고의 친구였다. 클라라의 목적은 오직 조시를 사랑해주는 것뿐이고, 맹목적으로 그녀를 위한 모든 것을 했다. 클라라는 그렇게 프로그래밍되어 있는 인공지능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시의 어머니가 클라라를 데려 온 목적은 다른 데에 있었다. 조시는 곧 죽을 테고, 그러면 클라라가 여태 배워 온 조시를 흉내 내며 조시의 안에 들어가서 살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녀는 클라라에게 조시만큼 너를 사랑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클라라가 들어있는 조시는 정말 그녀의 딸일까? 아마 아닐 것이다. 조시의 어머니는 딸인 조시 그 자체를 사랑하는 것보다는, 그녀를 사랑하는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아이를 잃게 되는 것이 슬픈 것보다는, 아이를 잃게 돼서 하염없이 슬픔에 잠기게 될 자신을 보는 것이 더 슬픈 것이다. 자신이 가장 사랑해 마지않는 딸마저도 자기 자신의 여러 감정들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만 필요할 뿐이었다.


이미 우리도 인간의 내면적인 면을 중시하기 보다는 기능을 더 중시하는 사회로 가는 단계에 서 있지 않나 싶었다.



클라라는 인공지능이기 때문에 그녀의 감정선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이 아무리 열심히 조시를 따라 해 봐야 조시가 될 수 있을까에 대해 계속 생각하며, 조시가 건강해지는 것이 모두를 위한 최선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클라라는 진열되어 있을 당시, 쿠팅스 머신으로 인해 몸이 아픈 경험이 있었다. 쿠팅스 머신은 연기를 뿜어내는 기계였는데, 연기가 태양을 가려 클라라와 AF들이 모두 몸이 안 좋아진 것을 이유로, 쿠팅스 머신을 파괴해야 조시가 나아질 것이라 판단한다. 그리고 그것을 파괴하는 데에는 클라라 머리에 있는 용액이 필요했다. 클라라는 자신이 이상해질 것을 감안하고서도 그 용액을 이용해 기계를 멈춰 버린다.



클라라의 시점에서 담담하게 쓰여진 결말은 그 때문에 더 슬프고, 잔인하게 느껴졌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A.I.>도 떠올랐다. 결말까지 달려가는 동안 지루하기도 했지만, 클라라의 시점에서 쓰여진 문장들은 순수하고 깨끗해 필사한 문장도 많았다.



이 책의 제목이 클라라와 태양인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이 책에 나오는 것들 중 변하지 않는 것은 클라라와 태양뿐이기 때문일 것이라 추측해본다. 클라라가 보는 세상은 아름답지만, 마치 기계처럼 아이들을 업그레이드하는 '향상'이 존재하고, 아이들 또한 '향상'을 선택해 준 부모님을 고마워하며, 인공지능이 일자리를 빼앗아 갈 뿐 아니라 극장 자리까지 차지하고 마는 미래는 디스토피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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