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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Use Mar 22. 2021

나는 흑인이고, 19세기로 강제시간여행 당했다.

옥타비아버틀러 作 - <킨>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여행에서 팔 하나를 잃었다.
위 양장본은 알라딘에서 나온 리커버 에디션이다.


옥타비아 버틀러의 <킨>은 호기심을 유발하는 첫 문장으로 프롤로그를 출발한다. 주인공은 왜 팔을 잃게 되었을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경찰들에게 왜 말할 수 없을까?


주인공인 '다나'는 흑인 여성이다. 백인 남편 '케빈'이 있고, 둘은 그저 새 아파트에서 이삿짐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런 다나에게 갑작스러운 현기증이 몰려오고, 당황한 것도 잠시, 눈을 떠보니 숲이 펼쳐져 있다.



그리고 강 한가운데에서 어린아이 하나가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다나는 상황을 파악할 새도 없이 아이를 구하는데 즉각 반응했다. 힘겹게 아이를 데리고 나왔건만, 뒤에서 아이의 어머니가 뛰어와 네가 내 아들을 죽였다며 때리기 시작한다. 다나는 긴 설득 끝에 아이에게 인공호흡을 해 그를 살린다.


하지만 이젠 총이다. 긴 총구가 다나의 머리를 겨눴다.


아이의 아버지였다.


다나는 죽음의 공포 앞에서 다시 이삿짐을 정리하던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도입부부터 빠르게 시작되는 시간여행과 목숨을 위협하는 다양한 상황들이 몰입도를 높이고, 뒷 내용이 궁금해 책을 손에서 내려놓지 못하게 한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다나와 같이 공간과 시간을 여행한다. 과연 그녀가 이동한 공간은 어디이고, 시간은 언제였을까?


그건 돌아온 지 바로 몇 시간 후, 다시 시작된 두 번째 여행에서 밝혀진다. 다나는 또다시 그 아이가 있는 장소에서 눈을 떴지만, 강에서 구해줬을 때에 비해 아이의 나이는 서너 살 많아 보였다. 그 아이의 이름은 '루퍼스'.


루퍼스의 어머니는 흑인들을 검둥이라고 부르고, 그의 아버지는 흑인과 말에게 채찍질을 하는 백인이었다. 그곳은 미국 남부의 메릴랜드였으며, 흑인을 검둥이라고 부르는 게 이상하다는 생각도 못하는 시대인 1815년이다.


  "어머니가 날 두고 뭐라고 했다고?" 나는 물었다.
  "그냥 못 보던 검둥이였다고. 엄마 아빠 둘 다 당신을 본 적이 없었어."
  "자기 아들 목숨을 구해준 사람한테 그런 표현을 쓰다니 어처구니가 없구나."
  루퍼스는 얼굴을 찌푸렸다. "왜?"
  나는 루퍼스를 노려보았다.
  "뭐가 잘못됐어? 왜 화가 났어?"
  "너희 어머니는 언제나 흑인을 검둥이라고 부르니, 루피?"
  "당연하지. 왜 안 되는데?"
  천진난만하게 묻는 말에 도리어 내가 혼란스러워졌다. (38p)


그리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루퍼스는, 다나의 먼 조상이었다. 그녀의 조상 중에 백인이 있었던 것이다.



다나는 자신이 있던 곳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그 상황을 견뎌야 했다.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흑인을, 백인이라면 누구든 잡아 노예로 삼을 수 있는 시대였다. 인간보다는 동물로 취급되던 끔찍한 시대.


사냥개를 끌고 다니는 백인들은 한밤 중에 노예들의 집에 찾아가 위협하고, 흑인 남성은 알몸으로 끌려 나와 가족들 앞에서 채찍질을 당한다. 그의 부인 또한 백인 남성들의 앞에서 옷이 벗겨지고 성추행을 당한다.


숨어 있다가 결국 백인에게 잡힌 다나도 성폭행을 당할 뻔하고, 그 순간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다나는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을 끔찍한 경험을 했지만, 시간 이동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언제 끌려갈지 모른다는 불안함으로 1분 1초를 보낸다.


하지만 다나는 계속해서 끌려가고, 결국에는 그 세계에 적응해야 했다. 다나의 걱정으로 다나의 손을 잡고 함께 시간 여행에 성공한 케빈은, 다나와는 전혀 다른 대접을 받는다.


  "아저씨는 누구죠?" 루퍼스가 물었다.
  "내 이름은 케빈이다."
  "다나는 지금 아저씨 소유인 가요?"
  "어떤 면에서는 그렇지. 내 아내니까."
  "아내?" 루퍼스는 듣기 싫은 소리를 냈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케빈, 아무래도 내 지위를 낮추는 게 좋겠어. 이 시대에는......"
  "검둥이는 백인과 결혼할 수 없어!" 루퍼스가 말했다.  (109p)


다나는 노예들 틈에 섞여 루퍼스의 집에서 일을 하고 채찍질도 당하지만, 케빈은 정성스러운 손님 대접을 받는다. 둘은 오래 대화를 나눌 수도 없었다. 그 시대에 백인과 흑인이 동등하게 사랑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


  "우리가 온 곳에서는 백인이 흑인을 검둥이라고 부르면 야비하고 무례하다고 여겨. 그리고 우리가 온 곳에서는 백인과 흑인이 결혼할 수 있어."
  "하지만 법에 어긋나잖아."
  "여기에서는 그렇지. 우리가 온 곳에서는 그렇지 않아." (110p)


다나와 케빈이 노예제도가 해방된 후의 삶을 살고 있다 하더라도, 그 시대를 보고 생각하는 점은 서로 달랐다. 다나는 자신이 직접 노예가 된 것처럼 함께 슬퍼하고 충격을 받는데 반해, 케빈은 관찰자의 입장에서 상황을 지켜본다.


  "아무도 채찍질을 지켜보라고 당신을 부르지는 않으니까 그렇겠지."
  "채찍질을 얼마나 많이 하지?"
  "나는 한 번 봤어. 한 번만으로도 욕 나오게 많아!"
  "그래, 한 번도 너무 많지. 하지만 내가 상상한 모습은 아니야. 감독관도 없고, 사람들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일을 시키지도 않고..."
  나는 케빈의 말을 잘랐다. "제대로 된 숙소도 없고, 흙바닥에서 자야 하고, 음식은 부족해서 쉴 시간에 텃밭을 가꾸고 부엌채에서 뭐라도 훔치지 않으면 모조리 몸져누울 지경이지. 권리는 하나도 없고 언제든, 아무 이유도 없이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가족에게서 떨어져 팔려나갈 수 있어. 케빈, 사람들을 때려야만 잔인한 건 아니야."
  "잠깐만. 이곳에서 일어나는 잘못을 과소평가 하는 건 아니야. 난 그저..."
  "아니, 그러고 있어. 그럴 의도는 없겠지만 그러고 있다고." (189p)



루퍼스는 착했고, 다나를 잘 따랐다. 다나 역시 그런 루퍼스를 좋아했다. 다나는 루퍼스를 그의 아버지처럼 되지 않게 하기 위해 그를 가르다.


"루퍼스, 그 애를 강간했니? 왜 그런 짓을 했어? 앨리스는 네 친구였잖아."
"이제 우리는 어른이 됐어. 그 애가 내가 아니라 검둥이 수컷을 택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거야!"
"앨리스의 남편 말이니?"
"달리 누구 얘기겠어!"
"그래." 나는 씁쓸한 마음으로 루퍼스를 내려다보았다. 케빈이 옳았다. 루퍼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한 내가 바보였다. 나는 다시 말했다. "그래. 감히 어떻게 그 애가 자기 남편을 택할 수 있겠어. 자기가 무슨 자유민이라도 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
"난 어떤 밭 일꾼보다 더 앨리스를 잘 돌봐줄 수 있었어. 앨리스가 계속 거절하지만 않았어도 절대 해치지 않았을 거야."
"앨리스에게는 거절할 권리가 있어!"


하지만 루퍼스는 시간이 지날수록 아버지와 비슷하게 변하게 된다.


"아이작은 도망 노예이고, 앨리스는 아이작의 도망을 돕고 있지. 어쨌든 판사는 그렇게 볼 거야."
"앨리스는 어떻게 되는 거지?"
"감옥행. 채찍질. 그다음엔 팔아버리겠지."
"노예가 되는 건가?"
"자기 잘못이야."

"그러니까 넌 원하던 대로 남자를 없애고 여자를 갖게 되겠구나." 나는 넌더리를 내며 말했다. "강간의 보상으로 말이야."
  "난 그놈과 사귀지 말라고 애걸을 했어. 내가 앨리스에게 애걸을 했다고!"

  나는 루퍼스가 앨리스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앨리스에게는 불행한 일이었다. 흑인 여자를 강간한다고 부끄러울 것은 없어도, 흑인 여자를 사랑한다면 부끄러울 수 있는 시대였다.


루퍼스는 다나와 함께할수록 그녀에게 애정을 느끼고 사랑을 갈구하지만, 흑인을 대하는 잘못된 방식으로 그녀에게서 점점 더 멀어진다. 그는 결국 그 시대의 남자였고, 다나는 그를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한다.


너는 옆에 머물고 싶지 않은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어.


그게 꼭 루퍼스만의 잘못일까? 루퍼스는 아버지의 강압적인 환경에서 학대를 받으며 자랐으며, 노예에게 채찍질을 하라고 어릴 때부터 강요 당했다.



루퍼스는 아버지에 비해서 관대했지만, 아버지처럼 잔인해질 때도 있었다. 다나는 그런 루퍼스를 미워하고 증오하지만, 자신의 조상이라는 이유로 그를 지켜야 했다.


작가는 다나와 루퍼스의 애증 관계를 토대로 인종과 젠더, 노예 문제를 자연스레 녹여낸다. 노예들은 목에 사슬이 묶인 채로 이리저리 팔려 다니고, 백인 주인 마음대로 그들의 자식을 팔아버린다. 잔인하지만 그 시대에는 그게 상식으로 통용되었다.


  "흑인 자유민은 학교를 만들 수 있어."
  "그러다가 큰일 나요. 주인님은 벌써 누나를 안 좋아해요. 너무 똑똑하게 말하는 데다가 자유 주 출신이니까."
  "그게 왜 문제가 되지? 난 그 사람 소유가 아닌데."
  나이절은 살짝 웃었다. "이 동네에 자기보다 말을 잘하는 검둥이가 있는 것도 싫고, 우리 머릿속에 자유에 대한 생각을 심는 것도 싫은 거죠."
  "우리가 처음 보는 사람에게 들어야 자유에 대해 생각할 수 있을 만큼 멍청한 줄 아는지 원." 루크가 중얼거렸다. (136p)


작가 '옥타비아 버틀러'는 실제 흑인 여성으로, 다른 백인 작가들에 의해 쓰인 어떤 인종차별 책 보다 차별에 대해 생생하게 그려낸다. SF라는 장르에 미국의 역사와 사회 문제점들을 묶어 완벽한 글을 써냈다. 첫 페이지를 편 순간부터 그녀와 함께 그 시대에 떨어진 것처럼 나를 책 속으로 끌어당겼다. 둘의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게 될지, 사랑이라는 감정을 통해 결국 바뀌게 될지, 끝까지 궁금하게 만든다.


나는 서서히 이대로 가만히 누워 있기가, 이 일마저 용서하기가 얼마나 쉬운지 깨달았다. 내가 했던 모든 말에도 불구하고 너무 쉬웠다.



한국에도 타임슬립 드라마가 많은데, 우리가 과연 노비의 혈육으로 가게 된다면 어떤 상황들이 펼쳐질까? 아마 다나가 그랬듯이 두 번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을 끔찍한 경험들을 겪었을 것이다. 양반을 주인님이라고 불러야 하고, 자식을 양반의 마음대로 팔아버리며, 식탁에서 인간답게 밥을 먹지 못하고 동물 취급을 당했을 터이다.


수월함 말이야. 우리나, 아이들이나... 노예제도를 받아들이도록 훈련시키기가 얼마나 수월한지 전에는 몰랐어.



다행히 지금은 계급이 완전히 사라지고 모두가 평등해졌지만, 여전히 인종과 젠더 문제는 우리가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있다. 그것들에 대해 날카롭게 지적하는 다양한 책을 접한다면, 당사자가 아니고서야 알 수 없었던 부분까지 문제점을 파악하고 서로 연대하여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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