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슈피겔만 作 - <쥐>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유태인 남자가 있다. 그의 아들 '아트 슈피겔만'은 아버지 '블라덱 슈피겔만'의 이야기를 만화로 담고 싶어 했다. 그렇게 홀로코스트를 다룬 그래픽 노블 <쥐 : 한 생존자의 이야기 >가 탄생했고, 만화책으로서는 유일하게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이 책에서 유태인들은 모두 쥐로 그려진다. 폴란드인들은 돼지, 프랑스인은 개구리, 미국인은 개이며, 독일인은 호랑이 줄무늬가 있는 고양이로 그려진다.
만화의 전개 방식도 독특하다. 현실의 아티(아트 슈피겔만)가 아버지를 찾아가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하고, 아버지 블라덱이 과거를 반추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블라덱의 회상이 주된 이야기이지만, 중간중간 현재 시기로 돌아와 아티가 아버지의 이야기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말하기도 하고, 현실 삶에서의 부자간의 갈등을 보여주기도 하며 액자식 구성을 취했다.
그저 한 남자가 전쟁 기간 동안 겪어 온 생애를 있는 그대로 담담하게 말하기 때문에 다른 제2차 세계대전을 다룬 영화나 소설만큼 감동적인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래서인지 더 실감이 느껴진다.
블라덱은 사람을 죽일 수 없어 하늘에 총을 쏘던 그저 한 인간일 뿐이다. 그러다 나치에게 잡혀 포로수용소로 끌려간다. 어제는 석방 포로들 600명을 숲으로 끌고 가서 모두 쏴 죽였다는 끔찍한 이야기들이 들려오지만, 블라덱은 흔들리지 않으며 추운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기운을 잃지 않도록 매일 차가운 물에 목욕을 하고 체조를 했다. 옆에서 자신은 곧 죽을 거라며 침대에 누워 밥도 먹지 않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많은 상황에서도 혼자 깨어 있으려 노력한다.
감옥에서 풀려난 후에도 블라덱은 항상 검거당할까 봐 긴장을 풀지 않았고, 이리저리 잘 숨어 다녔으며 상황 파악 능력과 위기 대처도 뛰어났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이 수월한 것은 아니었다.
아냐(블라덱의 아내)의 가족들은 아냐의 부모를 살리기 위해 아냐의 조부모가 숨어 있는 곳을 알려줘야 했다. 그리고 그들은 아우슈비츠로 끌려가게 된다. 그 후 결국에는 아냐의 부모님마저 그곳으로 끌려간다.
아냐와 난 창가의 장인과 장모를 봤단다.
머리를 쥐어뜯으며 울부짖고 계셨어.
장인은 백만장자였지만 그것도 그분의 목숨을 구해주지는 못했다.
블라덱의 아버지 또한 딸을 위해 죽을 걸 알면서도 그 길을 택한다. 이 시대에는 일가친척도 없는 시대였다. 그저 다들 제 목숨을 유지하기도 힘든 상황이었으니.
나치에 붙어 유태인을 잡는 유태인 경비병을 보며, 일제 강점기에 같은 민족을 팔아버린 한국인도 떠올랐다. 어디에나 매국노는 있기 마련인가 보다.
블라덱에게 운도 많이 따라줬겠지만, 결코 운만 따라 준 사람은 아니었다. 영어와 폴란드어가 능숙해서 간수에게 영어를 가르쳐 주며 잡혀 온 사람들 중 유일한 생존자가 된 적도 있었으며, 신발 공장에서 사촌이 일하는 걸 지켜보며 배웠던 구두 수선법을 이용해 제화공이 되기도 했다.
나치가 블라덱이 할 수 없는 수준의 장화 수선을 시켰을 때는, 장화를 숨겨 진짜 제화공에 가져가 하루분의 빵과 바꾸기도 한다. 블라덱은 항상 만일에 대비해 배급된 빵을 반만 먹고 반은 아껴 두는 습관을 들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제화공이 하는 걸 주의 깊게 지켜보며 더 전문적 기술을 외워두기도 한다. 그렇게 구두 수선을 하며 소시지를 비롯한, 수용소에서는 절대 먹을 수 없는 음식들을 얻어먹는다.
블라덱은 놀랍도록 현실을 직시하고 있었다. 일찍이 삶을 포기한 자들은 일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여위어 가스실로 끌려갔다.
블라덱이 이야기를 하는 중간중간 현실의 삶이 나오며 전쟁 후 피폐해진 가족들의 삶이 조명된다. 겉에서 보면 아티와 아티의 부인인 몰리, 아버지인 블라덱과 새어머니 말라까지 정상적인 삶 같지만, 속은 곪아 있는 걸 알 수 있다.
블라덱은 종종 길을 걷다가 심장 발작을 일으키고, 아티의 친형은 아티가 태어나기도 전인 전쟁 죽에 죽었으며, 살아남았지만 내내 괴로워하던 아티의 친어머니는 자살했다. 그리고 아티는 정신과를 다닌다.
블라덱은 아우슈비츠에서의 버릇으로 절약 정신이 생기고 그런 것들은 자식인 아티를 괴롭게 만든다. 홀로코스트로 인해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 블라덱과, 그로 인해 고통받는 블라덱의 주변 사람들.
블라덱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액자 속의 형 리슈와 매일 비교당해야 했다.
블라덱 : 내 사진이 침실에 있을 필요가 없었지. 난 살아 있었으니까. 부모님에게 그 사진은 골치를 썩이지도, 문제를 일으키지도 않았지. 그 사진의 아이는 이상적인 애였고 난 골칫덩어리였어. 경쟁이 안됐지. 부모님은 형 얘긴 하지 않았지만 그 사진은 나에 대한 일종의 비난이었어. 형은 의사가 되었을 것이고 부유한 유태인 아가씨와 결혼했겠지. 아니꼬운 녀석이었어.
아우슈비츠를 겪은 사람들은 후손에게까지 그 영향을 주고, 나치 독일 하에 번성했던 많은 기업들은 그 어느 때보다 더 번창하고 있다. 마치 우리나라의 일제강점기 때와 같이.
아티는 이 이야기를 감히 겪어보지도 않았던 자신이 써도 되는지, 작가의 고뇌를 겪는다.
그러니까 나 자신이 아버지와의 관계에 대해 아무 의미도 찾지 못하고 있으면서... 어떻게 아우슈비츠의 의미를 찾을 수가 있지?
대학살에 대해서도 말이야... (아티)
하지만 살아남은 사람들이 최선의 인간은 아니었듯이 죽은 사람들도 최선은 아니었죠. 무작위였으니까요! (아티의 정신과 의사 선생님)
블라덱 : 어?! 왜 서는 거냐?! 아직 집에 다 오지 않았잖아?
몰리 (아티 부인) : 얻어 타려는 사람이 있어요.
블라덱 : 얻어 탈 사람? 아니, 이런! 흑인 깜둥이 아냐! 빨리 출발해!
...
블라덱 : 세상에 쟤 처가 어떻게 된 것 아냐? 돌았구만! 믿을 수가 없군! 여기 검둥이가 앉아 있다니!
블라덱은 인종차별의 피해자였지만, 그 또한 인종차별주의자 발언을 하며 자가당착에 빠진다.
블라덱 : 아가, 너 미친 것 아냐? 왜 그런 거야? 난 저 검둥이가 우리 뒷자리 물건을 훔쳐가지 않는지 계속 지켜봤단다.
몰리 : 뭐라고요? 말도 안 돼요! 어떻게 아버님이 인종차별을 하실 수 있죠? 마치 나치가 유태인 얘기하듯 흑인을 대하시는군요!
블라덱 : 아이고! 난 네가 이럴 줄은 정말 몰랐다. 검둥이는 유태인과 비교할 수도 없어!
몰리: 하지만 어떻게 흑인들은 다 도둑질한다고 말씀하실 수 있죠?
블라덱 : 그만하자. 응? 넌 그들을 몰라.
제2차 세계대전은 선악 구도과 명확했던 전쟁이었지만, 아티는 아버지의 이 에피소드를 집어넣음으로써 피해자라고 모두 선은 아니라고 재고하게 만든다.
<쥐>는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사실적 묘사뿐만 아니라 전쟁이 지금의 우리를 어떻게 바꾸었는지도 보여주며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을 겪은 우리에게 큰 공감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또한 만화로서도 실험적인 구성으로 찬사를 받았다는 점에서 이 책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