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tif Apr 26. 2024

여름을 위한 인터미션,   북스테이 모티프원

[롯데 라이프스타일 랩 매거진 2024여름호]


Place | Make a SUMMER 소만

지도 밖에서 마주한 몰입의 세계

에디터 | 오은재 

포토그래퍼 | 김혜정


경기도 북쪽 끝에 위치한 헤이리 예술마을을 찾아가는 일은 산책이라기보단 여행에 가깝다. 대중교통을 최소 두 번 이상 갈아타야 하거나 자차를 몰고선 어마어마한 거리를 돌파해야 하니까. 지도에 찍힌 이동 경로와 시간을 헤아리다 보면 마음의 거리 또한 늘어난다. 그럼에도 이 모든 여정을 ‘산책’이라 일컫는 이유는 마을을 걷다 보면 자연스레 눈치채게 된다. 온몸에 힘을 빼고 울퉁불퉁한 지형을 따라 목적 없이 어슬렁대고 나서야 몰입하게 되는 ‘아름다움’이 있다. 


“울타리를 지나서 바다 반대편 고사목 쪽으로 와. 일렁이는 가는 물줄기가 보이면, 푸른 나무에 둘러싸일 때까지 상류로 올라와. 해가 지는 쪽으로 물길을 따라오면 평평하고 탁 트인 땅이 나오는데, 거기가 나의 집이야.” 《시와 산책》을 읽다 친구에게 자신의 집까지 오는 길을 설명하는 인디언 소녀의 이야기에 밑줄을 그어 뒀다. 목적지까지 이동하는 동선을 단축시키는 데 급급한 요즘의 방식과 달리, 길을 떠나는 일이 마치 시 한 편을 읽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작가의 의견에 동의하며 문장을 재차 정독했다. 길 위의 장면을 구체적으로 상상하는 동안 마음 속에 선과 면으로 이루어진 밋밋한 지도가 아닌 풍경과 이야기가 공존하는 소개서가 마련되었다. 헤이리 예술마을을 찾아온 사람들에게도 이와 같은 방식으로 안내한다면 어떨까. 처음 온 이들에게 헤이리는 다소 미로처럼 보인다. 알 수 없는 방향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 걷다가도 의식하지 못한 새 다시 왔던 자리로 돌아오게 된다. 지도 앱을 참고해도 복잡하게 얽혀있는 경로를 완벽하게 이해하기에는 부족하다. 응접한 두 산 사이 위치한 마을의 비밀은 지도 밖 풍경에 집중해야만 알아 차릴 수 있기 때문이다. 


헤이리 마을 조성 초기부터 힘을 보탰던 380여 명의 창작자들은 이곳이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이 되길 바랐다. ‘아름다움’에 관한 정의는 저마다 다르기에 같은 그림을 그리기 위해선 몇 가지 규칙을 정할 수밖에 없었다. ‘페인트를 쓰지 않을 것, 지상 3층 높이 이상으로 짓지 않을 것’. 나무 군락이 키 작은 건물들을 한 아름 안고 있는 모양새를 감상하다 보면 비로소 모든 게 그와 같은 방식으로 연결된 것을 발견한다. 다정한 정경을 만들어 낸 사람과 이들의 약속은 감히 지도의 언어로는 표현할 수도 없다. 두 눈으로, 두 발로 이를 똑똑히 감각하고 나서야 마음의 장벽이 허물어진다. 그 경계 없는 자리에서 만난 자연과 예술은 몰입의 세계로 향하는 근사한 길을 내어준다




여름을 위한 인터미션 

북스테이 모티프원


A.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헤이리마을길 38 - 26 

H. motif1.co.kr


북스테이 모티프원은 쏜살같이 흐르는 시간을 뒤쫓느라 매번 눈부신 계절을 낭비하고 마는 우리에게 잊고 있던 여름방학 같은 순간을 선물한다. 이나리 호스트는 모티프원을 돌보며 수많은 인생의 인터미션을 목격했다. 그가 이곳의 운영을 도맡게 된 이유 또한 이와 연관 있다. 20여 년 가까이 모티프원을 지킨 1대 주인장 이안수 선생은 타국에서 인생 2막을 시작하고자, 대학생 때부터 운영을 도왔던 딸에게 자리를 물려주었다. 처음 손님을 맞이한 2005년부터 지금까지 모티프원을 스쳐 간 여행자만 해도 무려 4만 명이 넘는다고. 각자의 계절을 보내느라 분주했을 이들이 이곳에서 마주했을 장면들을 떠올려본다. 


‘모티프원’이라는 이름에는 투숙객들이 이곳에서 발견했으면 하는 단 한 가지가 숨겨져 있다. 바로 ‘내 삶을 움직이는 동기’다. 인생을 걸쳐 해내야 하는 숙제의 실마리를 찾고자 수많은 기업가와 예술가도 이곳에 방문했다. 한 템포 쉬어 가다 보면 잠재해 있던 영감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고서 말이다. 그러나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마음을 울리는 좋은 순간조차 당근이 아닌 채찍으로 낭비하곤 한다. 번민과 쉼을 두고 갈피를 잡지 못하는 이들에게 이나리 호스트는 내키는 대로 머무르거나 표류하기를 권한다. 이곳에서의 선택은 책장 앞이나 길 위에서만 유효하다. 당장 어떤 방향으로 향할 것인지, 어떤 페이지를 읽을 것인지. 왜 그러기를 택했는지. 무수한 선택의 이유를 알고 싶다면 다시금 방으로 돌아가 책상에 앉아보는 것도 좋을 테다. 어릴 적부터 잡히지 않는 시간을 글로 적어 내리며 정리했던 이나리 대표는 각 방마다 ‘방명록’이라는 믿음직한 대나무숲을 마련해 두었다. 사려 깊은 자리에서 오늘을 복기하다 보면 나를 움직인 것이 시간이 아니라 마음임을 깨닫는다. 우리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동기는 사소한 마음 너머에 고이 잠들어 있다. 


자고로 여름방학은 호기롭게 세워 둔 계획 따윈 잊고 신나게 즐겨야 더욱 보람찬 법. 방학 숙제를 핑계로 여름 하늘을 만끽하던 그때처럼 유유히 흐르는 순간을 관찰해 본다. 더위를 식혀줄 차 한 잔을 준비해 공유 서재로 향한다. 벽면 크게 차지한 책장을 훑다 2만 권이 넘는 장서 중 눈에 띄는 제목을 하나 골라낸다. 낡은 책 특유의 그윽한 향을 느끼며 페이지를 넘긴다. 열린 창문 틈으로 무성해진 계절의 소음이 파고든다. 맹렬하게 우는 매미, 안부를 나누는 새의 날갯짓. 우거진 나무의 잔기척을 감지하는 사이 지친 마음에 새살이 차오르는 것만 같다. 그렇게 우연히도, 시간을 들여 먼 길을 와야 했던 단 하나의 이유를 알게 된다. ⓒ롯데백화점 라이프스타일 랩, ⓒ어라운드


LIFESTYLE LAB 매거진 Vol.10에서

기획·편집·제작 | 어라운드 AROUND


https://culture.lotteshopping.com/community/magazine/view.do?webMgznSeqno=57



작가의 이전글 "새는 어디에서 목을 축일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