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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tif Jul 03. 2024

사람은 왠지 가슴이 벅차다

Ray & Monica's [en route]_185


애달픈 부정


"어때요? 잠자리는 편안했어요?"

옥스나르가 아침에 우리를 방문했다.

"마치 한국의 우리 집에 온 것 같아!"


옥스나르는 본업인 에어비앤비 숙소관리로 여전히 분주했다. 넓은 정원관리와 침구류 세탁까지 직접 해야 해서 그의 노동은 쉽사리 끝나지 않았다. 그런 그를 위해서 아내는 디너로 잡채를 준비했다. 수영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사 온 돼지고기와 시금치, 버섯, 당근, 양파, 마늘, 깨소금, 참기름까지 이곳에서 구입 가능한 재료들을 모두 사서 다듬고 볶았다. 아내는 냉장고와 싱크대가 없는 곳에서 3개월을 살았던 직후이므로 이곳의 넓지 않은 조리대도 운동장처럼 넓어 보인다고 했다. 이런 경우를 대비해 아껴두었던 당면과 간장을 남김없이 사용했다. 조리를 마치자 큰 냄비에 그득했다.


아직도 정원을 뛰어다니고 있는 옥스나르를 부르자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올랐다. 평소 식사 속도가 빠르기도 한 옥스나르지만 이번에는 마파람도 없었음에도 게눈 감추듯 순식간에 빈 접시로 변했다. 두 번째 접시도 마찬가지...


그가 모든 일을 마친 저녁에 마주 앉았다. 그는 일이 고된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다. 1,300km 밖 멕시칼리(Mexicali)의 아이들에 대한 그리움에 사무쳐 있었다.


첫 번째 여자친구에게서 얻은 딸, 소피아(Ana sofia)와는 여전히 엄마의 연락두절로 소통이 되지않고 있었다. 그런 중에도 위안은 두 번째 여자친구에게서 얻은 두 아들을 라파스로 데려올 계획이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9일 출발로 비행기 티케팅을 해두었어요. 멕시칼리에 도착하자마자 리암(Oxnar liam)과 가엘(Gael alessandro)을 데리고 바로 티후아나(Tijuana)로 가서 하룻밤을 자고 라파스로 올 거예요. 아이들은 이미 여행용 목베개도 준비해 두었답니다. 이곳에서 저와 한 달 반을 함께 지내게 될 거예요."


그는 아들과 함께하는 동안 사무친 아버지의 정을 모두 쏟을 계획으로 머릿속이 가득했다.


"어린이 자전거 두 대를 봐두었어요. 매일 노을이 아름다울 시간에 말레콘(Malecon)의 자전거도로에서 함께 자전거를 탈거예요. 수영을 할 거고요 요리를 해줄 겁니다. 아주 다양한 요리를 해줄 거예요. 혹시 맵다고 호들갑을 떨어도 먹게 할 거에요. 강한 아이로 키우고 싶어요."


아직 새벽이 오지 않았는데도 닭이 울었다.


오늘 아침에는 옥스나르가 아침을 준비했다. 감자를 넣은 스크램블 에그(huevos revueltos con patatas)였다.


"시간도 많이 걸리지 않는 아주 쉬운 음식이라 요리라고도 할 수 없어요. 그냥 스크램블 에그인데 감자를 넣을 수도, 버섯을 넣을 수도, 새우를 넣을 수도 있죠. 제가 토르티야에 싸 드릴게요. 그냥 어린이용 음식이라고도 볼 수 있고요."


어젯밤에는 아이들이 무엇이든 먹을 수 있도록 매운 것도 먹게 하겠다고 했지만 그가 연습하고 있는 메뉴는 이처럼 자극이 하나도 없는 것이었다.


수영장에서 돌아온 아내의 가방은 또다시 쇳덩이를 넣은 것 처럼 무거웠다.


"오늘은 닭볶음탕을 만들어보려고요. 옥스나르에게 가능한 한 여러가지 한국 음식을 먹여보고 싶어요."


우리끼리는 그동안 생선찌개나 닭볶음탕 자체를 온전한 식사로 밥 없이 먹곤 했다. 한국인들은 이것을 밥과 함께 먹는 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며 밥을 좀 했다. 하지만 이들이 주로 쌀을 익히는 방식대로 냄비 대신 프라이팬을 사용했다. 


방금 전 끝난 재회 후 둘째 날의 디너도 옥스나르는 두 접시를 비우면서 손가락으로 원을 그리고 엄지를 세우곤 했다. 그는 이런 표현이 수고를 아끼지 않은 조리사에게 예의 기도하지만 내일 더 좋은 메뉴가 준비될 가능성을 높인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아내가 디저트로 냉장고에서 식힌 수박을 내왔다. 옥스나르가 물끄러미 수박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이제 나흘 밤 밖에 안 남았군요. 가지 않으면 안 되나요?"


사람과의 관계는 왠지 가슴이 벅차다. 설혹 그것이 통증으로 남더라도....


●아버지 Oxnar, 물보다 짙은 피의 밤

https://blog.naver.com/motif_1/223344229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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