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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tif Jul 02. 2024

최고의 남자, 최악의 남자

Ray & Monica's [en route]_184


궁수자리 치즈가게 모녀



멕시코 순무, 히카마(jícama)는 멕시코가 원산지로 이곳에서는 주로 샐러드나 주스로 만들어 먹는다. 아내는 한국 무를 구할 수 없는 이곳에서 생선찌개를 할 때 무대신 넣어 조리하기도 하지만 우리는 주로 과일처럼 생으로 먹는다. 샐러드에 넣기도지만 샐러드를 만드는 과정조차 생략하고 싶을 때는 단맛이 없으면서 수분이 많아 과일처럼 생으로 먹는다.


옥스나르 집이 있는 라스가르사스(Las Garzas)로 이사 가는 날, 로스 올리보스(Los Olivos)에서의 마지막 식사는 히카마 하나와 치즈 한 조각으로 좀더 간소하게 하고 싶었다.


이웃한 라린코나다(La Rinconada)의 공설시장으로 갔다. 야채가게에서 히카마 하나를 사고 '궁수자리' 치즈 가게로 가서 평소처럼 40페소치의 치즈를 샀다. 치즈가게 모녀에게는 우리가 오늘 이사간다는 사실을 얘기하는 것이 예의겠다 싶었다. 지난 5월 10일, 멕시코 '어머니날'에 이 모녀를 인터뷰했던 터라 모녀의 삶과 그 삶을 대하는 태도를 어느정도 알고 있었다.


어머니 마리사(Marisa Isabel) 씨는 딸, 마리아나(Mariana Guadalupe)가 한살이었 때 다른 여자를 만나 떠난 후 20년째 한 번도 모습을 보인적인 없는 남편을 호적에서 아직 지우지 않고 있다. 한 살 짜리 마리아나는 20살이 되었지만 여전히 딸이 함께 있는 한 남편과의 결혼은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이혼이 아니라 별거라고 여기며 홀로 육아와 가계를 책임져왔다. 20년 동안 응고된 남편에 대한 통한의 감정을 이렇게 정리했다.


"내가 그와 사랑에 빠졌을 때 그는 최고의 남자였고 최고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지고 나를 떠날 것이라고 말했을 때 그는 최악의 남자였고 최악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녀의 가슴에 남은 남편의 상흔을 건드리고 우리가 말도 없이 사라진다는 것은 아무래도 우리 자신에게도 용서되지 않는 일이었다. 우리가 이곳을 떠나게 되었다고 전했을 때 마리사 씨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비로소 뭔가 생각난 듯 잠시 기다려 달라고 했다. 그리고 노트를 찢어 다음과 같이 적어 아내에게 건네주었다. 멕시코 전통 우유과자 하몬시요(Jamoncillo) 두 개와 함께...


"2024년 6월 30일. 라파스, 바하칼리포르니아 수르

민지:

비록 언어장벽 때문에 속 깊은 얘기를 나눌 수 없었지만 당신이 바하칼리포르니아의 이 도시에 머무는 동안 당신을 만나서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나눈 삶의 이 현재 순간들에 감사드립니다.

_마리아나와 마리사"


그리고 이 인사만으로는 부족했던지 다시 뒷면에 간구의 기도문을 적었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부디 이분들의 여행이 내내 행복하고 풍요롭게 해주세요.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시며 베치에 앉은 것처럼 편안케해주세요. 

_마리사 이사벨"


●마리사와 마리아나 모녀의 '어머니날'

https://blog.naver.com/motif_1/223443912429


#작별 #라파스 #바하칼리포르니아반도 #멕시코여행 #세계일주 #모티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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