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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tif Jul 02. 2024

라파스의 잔소리꾼

Ray & Monica's [en route]_182


이사


우리 부부에게 잔소리꾼이 한 명 있다.


"제발 문 좀 잠그고 다녀요!"

"밤에는 나가시지 말라고 했죠!"


그 잔소리꾼이 옥스나르(Oxnar)이다. 우리가 이렇게 라파스에서 180일이 넘게 머무르게 된 것도 이 청년 때문이다. 우리가 지난해 12월에 라파스에 당도했을 때 처음 묵은 곳이 옥스나르의 에어비앤비 숙소였다. 당시 우리는 1월 중으로 코르테스 해를 건너 다시 본토로 들어가 멕시코를 일주한 다음 중미나 카리브 해 국가 중 한 나라로 갈 예정이었다.


옥스나르와 너무 자주 식사를 하고 너무 많을 얘기를 하고 서로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린 것이다. 우리는 칼리포르니아 수르의 최남단 로스카보스(Los Cabos)를 돌아와서도 본토행 페리를 타는 대신 그의 바람대로 그의 집으로 오게 되었다. 우리도 사막건조지역인 이탈리아반도 크기의 바하칼리포르니아 반도를 종단하는 동안 많이 지쳐있었기 때문에 한 숨 돌리는 정주의 시간을 갖는 게 좋겠다 싶었다. 


그의 도움으로 집을 렌트했다. 우리 예산에 맞는 적은 비용으로 집을 얻다 보니 산 아래 가난한 동네였다. 3, 4m의 높은 담으로 둘러싸인 중산층 주택가에서 살고 있는 옥사나르는 변두리 지역의 치안과 안전에 대해 경험해 보지 못했으므로 불안한 마음이 컸다. 


하지만 그곳에서 3개월을 살아온 우리가 그곳을 살아보지 않은 옥스나르보다 그 지역의 정서를 더 잘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문이 대로변에 접한 것에 불안해했고 여전히 우리에게 잔소리를 이어갔다.


시간이 흘러 우리도 라파스를 떠나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외국인 여행자로 살아야 하는 것은 제한된 체류기간의 제약 속에 놓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라파스에 정이 든 우리는 이곳에서의 정주를 늘이기 위해 두 번 더 미국을 다녀왔다. 체류연장을 위해서다. 그럼에도 다시 배낭을 꾸려야 할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옥스나르는 우리가 떠나기 전 단 며칠이라도 함께 지낼 수 있기를 원했다. 7월 6일 심야에 바하 페리(Baja Ferries)에 오르기로 날짜가 정해지자 그의 방을 내어주면서 자신의 집으로 이사를 강요했다.


약속 날 저녁 그의 어머니, 재클린(Jacqueline)과 함께 차를 가지고 왔다. 재클린은 건축가 딸, 미셸(Michelle)의 대학원 진학을 위한 인터뷰 때문에 미초아칸의 모렐리아(Morelia)에 다녀오너라 공항에서 아들을 픽업해온 시간이었다. 


그의 것인 우리가 사용하던 책상과 집기들을 순식간에 차에 올리는 것으로 이사 준비가 마무리 되었다. 그가 집주인처럼 방을 정리하고 점검했다. 그의 'OK'사인과 함께 우리는 차로, 아내는 자전거로 옥사나르 집으로 향했다. 우리가 당분간 지냈던 그의 방에 들어서자 마치 서울의 집에 돌아온 듯한 마음이었다. 


우리는 늦은 밤이지만 인근의 40년 넘어 묵은 노포, 타코집으로 가서 귀가를 자축했다. 그러므로 우리가 라파스와의 이별로 감내해야 할 통증은 시작도 안된 셈이다.


#상봉 #라파스 #바하칼리포르니아반도 #멕시코여행 #세계일주 #모티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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