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y & Monica's [en route]_299
*은퇴한 부부가 10년 동안 나라 밖을 살아보는 삶을 실험 중이다. 이 순례 길에서 만나는 인연과 문화를 나눈다._이안수·강민지
스노우버드(Snowbird)는 북미의 북부 사람들이 겨울철의 혹독한 추위를 피해 따뜻한 남부 지역으로 일시적으로 옮겨 생활하는 계절적 이주자를 말한다. 스노우버드는 야외활동에 적절한 따뜻한 기후를 선호하는 경제적 여유를 가진 은퇴자들이 대부분이다.
스노우버드가 선호하는 목적지는 플로리다, 애리조나 등 따뜻하고 여유로운 미국 남부와 비슷한 기후에 물가가 저렴한 멕시코나 중미의 코스타리카나 파나마, 남미의 에콰도르, 칠레, 아르헨티나 등 다양하다.
경제력 있는 스노우버드의 방문은 지역 경제에 중요한 수익원이 된다. 특히 관광업과 부동산 시장에서 큰 역할을 한다. 특정 지역에 집을 구매해서 매년 방문하는 스노우버드는 현지의 자선 활동에 참가하거나 환경보전 같은 볼런티어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지역 사람들과의 유대와 선의의 실천을 통해 충만감을 경험하고자 하는 이들을 통해 지역 커뮤니티가 문화적으로 풍요로워지는 효과를 얻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스노우버드를 유치하고 더 오랫동안 체류토록 하기 위한 법적 장치를 마련하기도 한다. 멕시코의 경우 임시 거주 비자를 발급하고 코스타리카와 파나마의 경우는 은퇴자를 위한 특별 비자를 제공하고 세금 감면이나 의료 서비스 할인 같은 혜택을 제공한다.
미국 플로리다주 연방상원의원들은 캐나다 스노우버드들이 더 오래 머무르도록 하기 위한 법안인, '캐나다 스노우버드법(Canadian Snowbirds Act)을 의회에 상정했다. 캐나다 방문객이 미국에서 보낼 수 있는 기간을 12개월 기간 중 하루를 뺀 6개월로 제한한 현행법을 미국에 거주지를 소유하거나 임대하는 50세 이상의 캐나다 시민이 매년 최대 240일까지 미국에 머무를 수 있도록 2개월을 연장하는 법안이다. 현행법은 캐나다인이 6개월 이상 미국에 거주하면 연방세를 내야 한다. 이런 제약을 완화함으로써 매년 플로리다를 방문하는 수백만 명의 캐나다 스노우버드들이 더 오래 머물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들이 플로리다 지역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유지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노우버드들의 권리를 개선하기 위한 '캐나다 스노우버드 협회(CSA ; Canadian Snowbird Association)가 1992년에 설립되어 10만 명이 넘는 회원을 두고 있다. 협회에서는 '캐나다 스노우버드 법' 상정 같은 특권의 확대를 로비를 통해 실현하고 있다.
우리 숙소에 묵고 있는, 캐나다 온타리오주에서 온 놀튼 헌터(Knowlton Hunter)와 제니퍼(Jennifer) 부부는 그제 페덱스(FedEx)로 부재자투표용지를 받았다. 스노버드 주민도 연방 선거에 투표할 수 있으며 온타리오주 주민들이 부재자 투표로 지방 선거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도 이 협회에서 얻어낸 변화이다.
과테말라도 스노우버드들이 선택하는 곳이다. 그들은 안티구아와 아티틀란 호수 주변을 선호한다. 그중에서도 안티구아가 압도적으로 많다. 치안이 안정되어 있고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16세기 식민지 도시의 매력을 잘 보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어 사용자가 많고 장기체류에 적합한 숙박과 레스토랑 등, 스노버드들을 위한 인프라가 탁월하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그럼 스노우버드들은 이곳에서 주로 무엇을 하면서 살까. 저희 숙소에 함께 지내는 이들의 보편적인 루틴을 예로 든다면 아침에 느긋하게 기상해 간단한 아침을 직접 준비해서 먹는다. 식후 산책으로 공원을 거닐거나 유적지를 돌아본다. 점심은 비교적 간편한 로컬 음식점에서 한다. 오후에는 숙소의 동료들과 대화를 즐긴다. 토픽은 그때그때 다르다. 지난 삶과 자녀와 손자·손녀 등 가족들의 얘기, 이슈가 되는 시사적인 얘기, 여행 경험과 지역 정보 등이다. 천을 사다가 간단한 동전 주머니 같은 가족들에게 줄 선물을 만든다. 돌아가면 시작할 새로운 정원 디자인을 스케치하기도 한다. 주말 오후에는 전시 오픈을 비롯한 문화행사에 참석하는 경우가 많다. 저녁식사는 주로 도시에 있는 각 나라 음식점들을 순례하면서 비교적 오랜 시간 즐긴다. 저녁을 먹은 뒤 나들이하는 경우도 잦다. 바에서 라이브 음악을 즐기면서 와인이나 칵테일을 한 잔씩 한다. 당구나 다트, 테이블 축구 게임을 즐기는 이들도 있다.
숙소 인근의 '엑싯 인(Exit Inn)'은 근동의 스노우버드들이 모이는 곳이다. 저녁 6시가 되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낸다. 7시 정도가 되면 손님으로 꽉 차는데 손님뿐만 아니라 라이브 연주를 하는 사람도, 오픈 마이크로 노래를 부르는 사람도 스노우버드들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떠나온 곳은 모두 다르지만 몇 번 만나고 나면 젊은 시절부터 한동네 이웃이었던 것처럼 친구가 되기 때문에 마치 마을 어르신들의 소통 공간인 마을회관 같은 분위기가 된다. 한국의 입춘은 이미 열흘 전이었지만 캐나다는 여전히 한겨울. 4월은 되어야 봄기운이 돌기 때문에 스노우버드들이 집으로 돌아갈 날은 아직 아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