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대학로 배우 & 헤이리 지킴이
여성조선 2025년 3월호 ISSUE & PEOPLE 182 TOUR DE VETERAN 64
글 : 이상문 기자 사진 : 안규림, 이나리
파주 헤이리 2대 촌장을 지낸 이안수에게 삼남매가 있다. 아역 출신 배우 이나리(38)가 그의 장녀인 걸 알게 됐다. ‘글로벌 인생학교’라 불리는 motif#1을 지은 아버지는 지금 엄마만 데리고 끝이 안 보이는 세계 여행 중. 대물림으로 헤이리 터줏대감 공간을 이어가게 됐다. 배우로, 북스테이 하우스 호스트로, 바리스타로, 통번역자로 사는 ‘망중한 한중망’ 인생 이야기.
파주 헤이리 게이트 1으로 진입해 야트막한 언덕길을 오르다 보면 카페, 상가와 거리를 조금 둔 조용한 마을이 나타난다. 이 마을 여러 채 건물 중에 북스테이 하우스 모티프원(motif#1)이 있다. 아주 오래전에 자리 잡은 헤이리 터줏대감 격인 명소, 모티프원은 여러 이름으로 불린다. 사람들은 이곳을 북스테이 하우스로도 부르고 아티스트 레지던스라고도 하며 글로벌 인생학교라 칭하기도 한다. 아주 단순한 기능만 보자면 헤이리 여행객을 위한 게스트 하우스라 불러도 좋다.
모티프원은 디자인 잡지 기자 출신인 이안수 대표가 특별한 욕심으로 만들어낸 특별한 공간. 20년 넘게 기자와 편집장으로 일하다 새로운 삶에 도전하기 위해 미국 유학을 다녀왔고 이후로 눈뜬 ‘예술 여행자의 삶’에 착안해 만들었다. 세계의 모든 예술가들이 예술마을 헤이리를 방문해 영감을 얻고 서로 대화할 놀이터를 만들고 싶었다. 의도한 대로 지난 20여 년간 다녀갔다는 수많은 게스트들이 그와 나눈 대화는 ‘인생’과 ‘예술’이었다. 이안수 대표는 젊은 예술가들에게 스스로 멘토가 돼주기도 하고 방문자들을 연결해주기도 했다. 흡사 세계 예술가들의 글로벌 네트워크가 이 작은 공간에서 만들어진 것. 다녀갔다는 이가 4만 명 이상이라니 한 해에 2000명 꼴이다. 물론 한국인들도 많다. 둘씩 짝을 지어오는 숙박객들 중엔 친구도 모녀도 부자도 있다. 산책과 독서, 명상으로 하루를 온전히 채우고 싶은 나 홀로 여행자도 여럿이었다.
모티프원의 원래 주인장 이안수 씨는 돌아올 기약 없는 부부 여행을 떠났다. 지난해 출발하며 ‘세계를 떠도는 10년 노마드 여행’이라 말했다지만 어쩌면 더 걸릴 수도 있는 긴 여행이라고 한다. 쌓아놓은 돈이 많아서 팔자 좋은 여행 하고 있다는 오해는 금물. 말 그대로 유목민 같은 체험 여행을 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하기야 갖출 것 다 갖춘 럭셔리 여행을 한다 한들 어떤가. 그 용기가 오직 부러울 뿐이다.
수염 긴 도사님(이안수 대표)은 없지만 모티프원은 내내 안녕하다. 원형질은 그대로지만 조금씩 다른 색깔이 입혀져 더 발전될 조짐도 보인다. 딸 이나리가 아버지에 이어 공간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벌써 3년 차. 본업인 배우 외에 통번역, 강의, 아르바이트를 두루 경험하며 살던 차에 게스트 하우스 호스트까지 맡았다. 때론 정체성이 무엇인지 의심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모든 모습이 이나리 그 자체임을 받아들인다. 무엇을 하든 행복한 이나리, 헤이리 지킴이 이나리가 사는 법을 엿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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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많다.
"아버지가 평생 모은 책이다. 장르가 다양해 없는 게 없는 것 같다. 디자인 관련 책이 많거나 대다수일 걸로 생각하는데 오히려 인문학, 철학 책이 많다. 짐작하겠지만 경제경영 도서나 자기계발서가 적긴 하다(웃음)."
-2만 권이 넘는다고 했다. 가져가는 책도 있고 놓고 가는 책도 있겠다.
"놓고 가는 책은 확실히 알 수 있는데 가져가는 책은 알 수가 없다. 안다 해도 분실된 책 때문에 속이 쓰리진 않을 것이다. 방문 이후 선물로 책을 보내주시는 분이 적지 않다. 책이니까, 서로 나누고 보태면 좋은 것 아닌가. 작가 분들이 많이 오신다. 독립출판사 하시는 분들도 많다. 여기서의 시간이 씨앗이 돼서 만들어진 책을 편지와 함께 보내주실 때 큰 보람을 느낀다."
-신간을 들여서 판매하는 건 어떤가.
"책을 판다는 건 수익구조를 기대하는 건데 그건 적당치 않아 보인다. 그냥 갖고 있는 책을 공유하는 정도면 좋다. 독립책방들도 너무 많은데 우리까지 경쟁에 끼어들고 싶진 않다. 책은 팔기보다 돌려 보거나 선물로 드리는 게 좋다."
-주인장이 배우인 줄 몰랐다. 드라마 <은실이>(1998)의 ‘맹순이’ 모습이 아직 생생하다. 그간 어떻게 지냈나.
"기억해주시니 고맙다. 어릴 때 연기하다가 학업에 열중했고 교환학생으로 미국 유학 다녀와서 중앙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했다. 여전히 배우가 본업이다. 연극무대가 주였고 가끔 영화도 찍었다. 작품 없을 땐 카페 아르바이트도 하고 통역이나 번역도 하고 가르치는 일도 했다. 지금은 배우이자 모티프원을 지키는 호스트로 산다. 3월에 영화가 나온다."
-아역 시절에서 성인 연기자가 되기까지 공백이 있다.
"연극과를 졸업했지만 30대 되기까지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꽤 있었다. 그러다 친한 선배가 극단을 만들면서 같이 해보자고 제안했다. 연기뿐 아니라 주제를 선정하고 연출자나 작가를 초대하는 공연기획을 배우게 돼 재미있었다. 소수자의 삶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 이전에도 관심은 있었지만 기부나 하는 정도였는데, 그걸 연극의 범주에서 무대 위에서 표현한다는 게 특별했다. 성 소수자 집단과 미혼모, 다문화가정 등을 접하고 워크숍을 하고 무대를 만들면서 보람을 느꼈다. 이전엔 입시연기를 가르치기도 했는데 틀에 박힌 연기를 가르친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음으로 다가가지 못하고 스킬만 알려준다는 느낌이랄까. 전투를 치르고 난 후의 허망함 같은 걸 느꼈다. 연기를 가르치면서 연기로부터 소외되는 느낌 같은 거였다. 극단을 하면서 엄청 많은 변화가 있었던 것 같다. 내가 하는 일에 효능감 같은 걸 느낀 게 그때부터였다. 단단해졌다."
-게스트하우스의 호스트가 됐다. 배우로서 매진하는 데 방해나 혼돈을 주진 않았나.
"전혀 없다고 할 순 없지만 오히려 잘된 일이다. 여기서 이런 방식의 만남을 통해서 연기에 필요한 에너지를 얻는다. 연기는 어려서부터 꽤 오랫동안 해온 일이다. 그럼에도 지치지 않고 해나갈 수 있는 힘을 받고, 내 연기의 방식을 쌓고 배울 수 있어 오히려 도움 된다. 어느 날 아빠가 엄마 퇴직을 기점으로 세계 여행을 계획한 게 시작이었다. 몇 년 전부터 누누이 얘기해 온 거라 준비가 돼 있었던 일이다."
-어떤 준비를 말하나.
"엄마는 장기 여행을 대비해 체력을 기르기 시작했다. 영어 공부를 하고 마라톤도 뛰었다. 아빠는 평소 엄마를 ‘바깥사람’이라고 불렀다. 보통 아내를 ‘안사람’, 남편을 ‘바깥사람’이라고 하는데 우린 반대다. 아빠는 모티프원 호스트였고 엄마는 직장에 다니셨기 때문이다. 2020년 엄마가 퇴직하자 드디어 공식 선언하셨다. ‘바깥분’과 계획했던 여행을 실행하겠다고, 그러니 나리 네가 헤이리에 들어오라고(웃음). 남동생은 영국에서 공부하고 있었고 여동생은 유엔국제기구에서 일하느라 외국에 체류하고 있어서 내가 간택(?)된 셈이다. 서울 살던 나도 이미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다."
아버지의 자식 농사는 성공적이다. 맏딸 나리는 어릴 적부터 싹수를 보인 끼를 살려 배우로 키워냈다. 아들은 영국 유학 후 군대를 다녀오더니 영화 만드는 일을 하게 됐다. 시작한 지 오래지 않은데 다큐멘터리로 단편영화제 초청작에 선정되는 등 승승장구 중. 가족 중에 유일하게 레드카펫을 밟아본 사람이란다. 결혼도 해 제일 먼저 가정을 이루었다. 둘째딸은 유엔개발계획(UNDP)에 들어가 아프리카 등지에서 근무하다가 근래엔 서울지사에서 일하게 됐다. 아버지는 예술마을 촌장, 어머니는 종합병원에서 정년까지 꽉 채운 의료인, 자식들은 저마다 선호하는 전문직 일을 하니 자유분방하면서도 균형적인 가정, 인생 공부를 독려하며 존재의 이유를 묻곤 하던 아버지 이안수의 영향으로 짐작해본다. 물론 아버지 이안수는 그 모든 걸 가능케 한 배경은 아내였다고 말한다. 자신을 ‘강한 나’, ‘세상을 읽는 나’로 키운 이는 바로 아내였다고, 이안수는 책 <아내의 시간>(남해의봄날)에서 말하고 있다.
-아버지 책 <여행자의 하룻밤>과 <아내의 시간>을 봤다. 자유로운 사고와 분방한 실천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맏딸 역시 독서량이 상당한 듯하고 SNS 포스팅 글도 좋아 보인다. 책을 써볼 생각은?
"아직은 먼 얘기인 것 같다. 옛날에 쓴 글들 보면 진짜 너무나 부끄럽다. 현재도 부끄럽지만 옛날 글은 정말로…(웃음).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아버지 영향이 컸을 거다. 아빠는 우리 어릴 때부터 글쓰기의 중요성을 엄청나게 많이 얘기하셨다. 여행을 자주 데리고 다니거나 보냈는데 항상 여행기를 쓰라는 조건이 붙었다. 대학생 때 유럽 여행을 갈 때 지원을 청했더니 여행기 원고를 써오라고 하셨다. 서포트 해주는 여행 경비는 그 원고료로 지불하는 거라고 말씀하신 게 기억난다. 일기도 다들 쓰게 하셨다. 아빠는 늘 기록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셨던 것 같다. 인생의 경험과 단상이 휘발되는 걸 경계하신 것 같다. 참, 우리 가족은 서로 편지 쓰는 문화도 익숙하다. 생일 등 중요한 날이나 모멘트가 있을 땐 편지로 마음을 전한다."
-처음 연기를 시작한 계기는 무엇이었나?
"유치원 때 선생님이 연기를 하면 잘하겠다는 얘길 처음 해주셨다. 초등학교 갔더니 1학년 담인쌤이 또 그 소릴 하셔서 진짜 해보면 어떨까 생각하고 시작했다. 몸 움직이는 것, 목청껏 외치는 걸 다 좋아하는 좀 왈가닥 말괄량이였다(웃음). 부모님께 연기 해보고 싶다고 하니 당시 유일했던 연기학원에 보내주셨다. 얼마 안 있어 오디션 기회가 오고 곧바로 일을 시작했다. 재미있었다. 되게 천연덕스러웠다고 한다."
-부모님이 맞벌이했고 별거한 기간도 있어서 어린 시절 기억이 단순할 것 같지 않다. 가장 기억에 남는 행복했던 순간, 가장 힘들었던 고비를 든다면?
"아빠 엄마가 바빠서 어릴 때 할머니 댁에 자주 맡겨졌다. 그 시골이 아직도 그립다. 아무 생각 없이 가장 행복했던 순간으로 꼽는다. 경북 김천인데 역에서 내려서도 차로 한 시간 가까이 들어가야 하는 촌이다. 시골의 향기도 좋았지만 할아버지 할머니의 사랑 때문에 그런 것 같다. 할아버지 등에 업혀 논과 밭을 다니고 개울물에서 뛰어 놀고 개구리를 잡던 기억이 생생하다. 외양간의 소와 돼지, 닭도 우리 삼남매의 친구였다. 서울에서 자랐지만 그곳이 내 고향이나 다름없다. 힘들었을 때를 굳이 꼽자면 30대 초반쯤이었던 것 같다. 가장 불안한 때였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디서 에너지를 얻는지 알고는 있었지만 앞으로 뭘 할지에 대한 정립이 안 돼 혼돈스러웠다. 뭐든 하고 있고 뭐든 할 수 있는 건 좋은 거지만, 뭐든 할 수 있다는 게 오히려 불안의 요소가 된다고나 할까. 뭐든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은 뭐든 실패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말해주기도 하니까."
-연기자로서의 정체성 고민이 가장 컸겠다.
"그랬다. 연기를 계속할 거라고 마음먹지만 기회가 오지 않으면 약해지고 불안해지는 시기가 있었다. 혹시 속으로는 포기하려는 것 아닐까, 좀 더 열심히 해도 되는데 게을러진 걸까 등등 별 도움 안 될 고민을 하며 마음을 괴롭혔다. 그런데 이제는 달라졌다. 계속하기로 한 이상, 현재 그 일을 하고 있지 않는다 해도 불안해 하거나 조급해 할 필요는 없다. 언젠가는 다시 하게 될 테니까, 라고 마음먹는다. 배우들이 다 그렇지 않겠나. ‘먹고사니즘’과 배우로서의 정체성 사이에서 갈등하고 고민하는 거는 비슷할 거다. 부름을 받는 직업이니 어쩔 수 없다고 본다(웃음)."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은 다르다는 말이 생각난다. 아주 잘하지 못해도 좋아하는 일을 선택해야 할까? 반대로 좋아하지 않아도 잘하는 일을 하는 게 행복할까?
"좋아하는 일이 잘하는 일일까에 대한 불안감이 누구나 있을 거다. 둘 다 충족된다면 당연히 럭키하겠지만 둘 중 하나만 해당한다면 불안하긴 할 것 같다. 잘해서 돈도 잘 벌면 좋기야 하겠지만 진짜 좋아하는 일이 아니라면 역시 불안하지 않겠나. 그래서 난 내가 좋아하는 일을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자기위안 같지만 어차피 자신감은 스스로 만들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라도 내가 나한테 에너지를 주지 않으면 어쩌겠나. 과거와 달리 이제 그 루틴이 확실히 자리 잡았다는 얘기다."
-‘지금을 충실히 살아야 현재의 고유한 내가 보인다’라는 아버지 책 속 말씀이 생각난다.
"맞다. 그런 태도로 사는 거다. 이동진 평론가의 블로그에도 비슷한 뜻의 말이 있더라. ‘인생 전체는 되는 대로, 순간순간은 열심히’(웃음). 20대 때엔 10년, 20년 뒤의 내 모습을 거창하게 그려보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그 나이가 되니까 아무것도 없다. 거창하게 이루어진 게 하나도 없다. 그림을 크게 그려놓으면 나중에 돌아볼 때 거의 다 실패가 된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지금은 큰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 작은 성취를 자주 하려고 노력할 뿐. 소박한 성취들이 쌓이다 보면 나도 어느 방향으로든 가고 있겠지, 그래서 지금은 알 수 없는 어떤 큰 성취에 이를 수도 있겠지… 뭐 그렇게 방향을 잡고 살고 있다. 그렇게 사니 마음도 편해지고 오히려 에너지가 생기고 일도 많아진다(웃음)."
-모티프원이 이나리에게 주는 성취감이 있다면 어떤 건가?
"아빠가 평소에 “여기 오는 모든 사람들은 하나하나가 다이아몬드다. 잘 들여다보고 배워라”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이 맞다. 만남에서 배운다. 나의 부모님의 과거의 삶과 지금의 여행을 보면 되게 멋지다. 자신들도 그렇게 살고 싶다는 분들이 매우 많다. 부부가 함께하는 10년간의 자유 세계 여행. 누구나 꿈꾸지 않겠는가. 이런 걸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용기는 어디에서 왔을까. 두 분의 선택에 적잖은 영향을 끼친 것 중엔 수년간 모티프원에서 만난 사람들의 영향이 클 것이다. 세계 이곳저곳에서 온 방문자들과 교류하고 친구가 된 덕이다. 나 역시 이곳을 운영하며 수많은 사람을 만난다.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 이야기만 모아도 책 몇 권은 낼 수 있다. 사람을 만나 교감하고 인생을 배우는 것, 그게 모티프원에서 발견한 성취 아닐까(웃음)?"
-특별하게 기억나는 여행자들이 있다면?
"작년에 왔던 호주 친구는 팟캐스트를 한다고 했다. 노트북 하나 들고 몇 달은 한국에 또 몇 달은 뉴질랜드로 옮겨 다니며 사는 친구다. 친해진 인연으로 나를 팟캐스트에 초대했다. 그 친구한테 자유로운 삶의 방식, 다채로운 소통의 방식을 배운다. 그가 여기 오지 않았다면 어떻게 그런 것들을 배울 수 있었겠나. 이런 이들을 보면 나도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은 에너지가 생겨난다. 지금 난 미국, 독일, 프랑스, 호주 등 세계 곳곳에 친구가 있다. 종종 만나게 되는 이런 인터뷰 기회도 설레는 순간들이다. 취재하시는 분들로부터 배우는 것들이 오히려 많다(웃음). 이 조그만 공간 안에서의 만남이 나를 매번 어디론가 데려가주고 있는 느낌이다. 그게 공간의 힘인 것 같다."
프랑스로 입양된 한국인 일러스트레이터도 잊지 못할 여행객이다. 모티프원에 묵는 동안 공간에 영감을 받아 방에서 본 통창 풍경을 그렸다고 한다. 작품이 된 그림을 들고 다시 방문해 선물로 전해주니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7인의 남정네들과의 인연 이야기도 재미있다. 16년 전 군 입대를 앞두고 친구들 여럿이 단체 숙박을 했다. 자신들의 10년 후 모습과 인생 플랜을 PPT로 발표하더니 10년 후의 자신한테 보내는 편지를 써놓고 갔다고 한다. 모티프원이 타임캡슐 노릇을 한 셈. 3년이 더 걸렸다. 13년 후에 다시 나타난 일곱 명의 친구들은 저마다 어엿한 사회인이 되어 있었다. 푸릇했던 지난날을 회고하며 회포를 풀었다. 네 명은 따로 재방문해 편지를 또 써놓고 갔다. 또 10년 뒤인가 물었더니 3년 뒤쯤 찾으러 오겠다고 했다 한다. 호스트도 덩달아 설레는 느낌일 듯."
-국내 손님으로는 어떤 이들이 많이 방문하나.
"다양하다. 친구끼리 부부끼리 오기도 하지만, 모녀나 모자, 부자나 부녀가 힐링 하고 가는 예가 많다. 대체로 2030 여성들이 가장 많다. 50, 60대 중년 여성은 친구들끼리 오신다. 소셜미디어 시대니까 SNS를 통해 입소문 듣고 오는 MZ세대가 많다. 크리에이터들도 방문한다. 책 읽을 공간, 힐링하는 공간으로 소개됐다. 어반스케치 동호회 친구들이 오신 적도 있다. 헤이리 스케치하러 오셨다 했다. 학생 딸과 짝을 이룬 엄마 손님을 보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모른다. 자기성찰과 명상, 독서를 위해 혼자 오시는 분들도 많다."
-외국인 여행자는 한국에 대해 무엇을 궁금해 하나?
"K팝이나 K드라마 얘길 할 것 같지만 의외로 그런 호기심은 아주 많지 않다. 대개는 ‘공간’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이다. 헤이리 예술마을과 모티프원이라는 공간에 대한 궁금증으로 대화가 진행된다. 공간이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서 체험하고 대화한다. 조용한 공간에서 자신을 정리하고 영감을 얻어가려는 건 외국인이나 국내 손님이나 비슷하다."
-모티프원의 슬기로운 이용법은 무엇인가. 미리 가이드 한다면?
"방은 5개가 마련돼 있는데 오붓하게 2인까지만 이용할 수 있다. 스테이 비용은 14만~30만원 정도다. 취사는 안 되지만 음료 등 간단 조리는 가능하다. 잘 만큼 자고 멍 때리고 싶으면 멍 때리고 읽고 싶으면 읽고 대화하고 싶으면 대화하면 된다. 헤이리 산책은 기본이고 파주 곳곳에 퍼져 있는 재미있는 곳을 방문하길 권한다. 이전 여행자들이 게스트 노트북에 남기고 간 경험담을 참고해 시간을 보내는 방법도 추천한다."
-여행자와 호스트가 만나는 정규 프로그램은 있나?
"정규 프로그램을 운영하지는 않는다. 게스트가 원하면 거실에서 서로 만나 대화할 순 있다. 게스트하우스에선 여행객들이 서로 어울리는 풍경이 익숙하다. 하지만 조용히 있길 원하는 분들도 있다. 그렇지만 그들도 누군가 말 걸어주길 기다리는 경우가 많다. 너무 각자의 시간을 보장하는 데만 철저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눈인사하다가 말로 인사하고 대화가 이어지고 그러는 게 일반적이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저녁 와인 회합이나 막걸리 파티 정도는 한다. 규칙적인 건 아니다. 같이 음악 듣기, 뜨개질하기, 요가 배워보기 등도 아이템이다. 직업상 외국 경험이 다채로운 여동생이 오는 날엔 세계의 음식 이야기, 문화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갖기도 한다. 원하는 사람만 신청하라고 미리 공지한다. 상설 프로그램은 없고 모든 게 다 그때그때 시도해보는 것들이다(웃음)."
-이곳 이름이 모티프원이다. motif는 ‘주제’를 뜻하는 프랑스어에서 왔다. 배우 이나리의 모티프는 무엇인가.
"아빠를 닮아서인지 탐험, 시도, 도전이란 말이 좋다. 언제가 돼야 다 성장했다고 말하게 될지 모르지만 인생 내내 탐험하고 시도하려 한다. 그게 나의 모티프 아닌가 싶다."
-대화 중에 ‘효능감’이라는 표현을 여러 번 썼다. 직관적으로 탐험하고 효능감을 느낄 때까지 시도하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런 것 같다. 무슨 일이든 완결이 된다기보다 죽을 때까지 그냥 그것을 향해 열심히 나아가는 것 아닐까 생각한다. 경험하지 못해 미숙한 감정도 있고 해보지 않아 되지 않는 일도 많다. 무수한 시도를 통해 배우고 확장해 나아가는 게 인생 아니겠나. 해봐야 부족함을 알고 그래야 뭘 더하고 싶은지 아는 거니까 맞장뜨듯이 즐기며 하는 거다. 그래서 내 덩어리를 키우고 싶다. 위로만 솟는 게 아니라 옆으로도 지평이 넓어지는 사람이 되고 싶다. 배우라는 직업이 그렇지 않나. 늘 새로운 인물을 맞이해야 하는 직업 아닌가."
-부모님 책 말고 이나리 코너엔 무슨 책이 주종인가.
"소설이랑 인문학 위주다. 다들 그렇겠지만 한강 작가 노벨상 수상 이후 작가님 책이 늘었다. 연극할 때 인물 이해를 잘 하려면 문학적 감수성이 큰 도움이 된다. 철학적 본질이나 사회 이슈도 잘 알아두어야 무대 준비가 수월해 집중하는 편이다."
-독서클럽을 만들 생각은 없나?
"관심과 열망이 있긴 한데 아직 해본 적 없다. 읽는 것도 좋고 이야기하는 것도 좋아하니 해볼 만할 것 같다. 평소에 연극이나 영화를 보고 감상평을 나누며 수다 떠는 걸 좋아한다. 문학동네에서 하는 ‘독파’ 클래스에 참여하고 있는데, 나중에 독서클럽도 도전해보고 싶다."
-아직 미혼이다. 비혼주의는 아닐 테고….
"안 하고 싶어서 안 하는 건 아니다. 좋은 사람이 있으면 하고 싶다. 연애 경험? 없었다면 거짓말 아니겠나. 결혼이 쉽지 않은 이유로 엄마아빠도 한몫한다. 내가 경험한 사랑의 예시가 너무 하이 퀄리티인 거다. 부모님의 사랑의 밀도나 서로를 존중하는 방식을 목격하고 나면 자신이 없어진다. 두 분은 7년 연애하고 40년 이상 같이 살고 있는 부부다. 둘 사이에도 시행착오도 있었고 위기도 있었을 거다. 그런데 서로의 삶을 지혜롭게 분리했다 결합했다 하며 아름답게 유지해왔다. 40~50년의 경험치가 녹아 있는 그들의 사랑과 결혼은 이상적이다. 그 탓에 내 스탠스도 덩달아 높아진 것 같다(웃음). 어쨌거나 가장 중요한 건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부모님은 진짜 서로를 사랑함을 느낀다."
-여행 마친 부모님이 집에 들어서면 무슨 말을 첫마디로 할까?
"지금도 수시로 연결이 되고 영상통화도 하기 때문에 십수 년 만에 만나는 건 아닐 거다. 그래도 진짜로 얼굴 마주하면 일단 “고생했어~”라고 말할 것 같다. 아빠엄마의 이번 여행은 여행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거의 탐험 수준이니까. 부유한 노년 부부의 유유자적 여행이 전혀 아니다. 두 사람은 사실상 해외 여행을 한다기보다 먼 나라에서 삶을 체험하고 있는 셈이다. 영상편지엔 “너희가 열심히 사니까 우리도 부끄럽지 않게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고 보내온다. 불편한 게 많은 여행인데도 포기하지 않고 견디고 열심히 탐험한다는 뜻이다. 자식들보다 더 열정적인 분들이다. 그러니 “고생했다” 다음 말로는 “참 대단하다”고 할 것 같다."
-예술마을 헤이리는 지금 어떤가. 예전보다 다소 다운된 느낌도 든다.
"세월이 많이 지나 콘텐츠가 변화하고 있는 건 맞는 것 같다. 예술은 여전히 예술인데 트렌드는 바뀌니까 내용도 변화하고 사람도 변하는 것 같다. 수년 전부터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들이 서서히 만들어갈 변화도 주시하고 있다. 하지만 예술마을 헤이리는 여전히 헤이리다. 수년 뒤에 뭔가 변화가 온다 해도 지금의 기반을 수성함으로써만 가능한 일이다. 헤이리의 확장성이나 파주의 확장성이나 모두 기대해볼 만하다."
-모티프원 이나리가 할 역할도 클 것 같다.
"헤이리의 뿌리는 여전히 깊고 굳건하다. 새로운 문화 트렌드가 생긴다 해도 예술을 사랑하는 주민과 여행자의 융합은 계속될 거다. 나는 여기 온 지 수년밖에 안 되니 스텝 바이 스텝으로 배우며 살려 나아가는 게 우선이다. 처음엔 아빠와 3개월씩 바통터치를 하며 헤이리를 접했고 이젠 한 해, 두 해가 쌓여간다. 해를 보낼 때마다 조금씩 녹아들고 깊게 이해하기 시작했다. 전엔 아빠한테 물어보며 일했지만 지금은 혼자 당면하고 알아서 해야 한다. 전구도 스스로 갈아야 하고 수도 동파에도 혼자 대비해야 한다. 홀로서기 한 지 2년, 이제 겨우 ‘나리가 혼자서도 잘 하는구나’라는 믿음이 생긴 것 같다. 조심스럽게 내가 하고 싶은 시도를 늘려나갈 계획이다. 수년 뒤엔 이곳에 새로 들어온 사람들도 적응기를 거치고 움직일지 모른다. 그들과의 협업도 흥미로워질 것으로 기대한다."
-마지막으로 3월 개봉한다는 새 영화 소개를 해보자.
"<초혼>이라는 장편 영화다. 위안부 할머니들 이야기를 다룬 <귀향>이라는 영화를 만들었던 감독님 작품이다. 지난해에 찍었고 1990년대 이야기다. 부당한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연대한 노동자들과 대학 노래패 이야기다."
*원글 : 여성조선
https://woman.chosun.com/news/articleView.html?idxno=1199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