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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나 Mar 15. 2024

30대 호주워홀, 주 60시간 일해봤어?

호주워홀 일상 편(2)

작년에 윤석열 정부가 주 69시간제 노동시간 개혁법 통과 문제로 나라가 들썩였던 적이 있었다. 여론의 뭇매를 맞고 사실상 철회를 선언하긴 했지만 말이다. 나 역시 그 법안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입장을 고수하는 편이다. 말이 좋아 바쁠 때 일하고 한가할 때 쉰다라는 취지이지, 아무 시스템도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이 법안을 실행한다는 것은 독이라는 판단이다. 


그런 내가 주 60시간을 일하다니 기적이었다. 


처음부터 이렇게 일할 생각은 없었다. 일하면서도 내가 이렇게 일하고 있을 줄 몰랐다며 우스갯소리로 이야기하고는 했다. 이야기하기에 앞서 우선 호주의 고용시스템에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호주의 고용형태는 캐주얼, 풀타임, 파트타임으로 나뉜다. 

캐주얼은 편히 이해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라고 적었지만 정확히는 프리랜서 개념에 가깝다. 고용주와 정해진 시간 계약 없이 바쁘면 더 들어가고 한가해지면 일이 줄어든다. 고용형태가 불안정하기 때문에 위의 3가지 고용형태 중 시급을 가장 높게 받을 수 있다. 

풀타임 잡은 정규직으로 이해하면 쉽다. 업장마다 다르지만 주에 35~50시간 정도 안정적으로 시간을 받을 수 있다. 가장 안정적인 고용형태이며 연봉제로 계약을 하기도 한다.

파트타임은 말 그대로 정해진 시간타임에 일을 하는 우리나라 아르바이트 형태와 가장 유사하다. 정해진 시간타임에 들어가기 때문에 시간확보에 안정적이나 업장에 따라 다르겠지만 시급이 위의 고용형태 중 가장 적다.


나는 주로 캐주얼로 일을 했다. 워홀로 호주를 오게 된다면 대부분 캐주얼의 고용형태를 취한다. 호주의 워홀은 한 업장에서 6개월 이상 근무할 수 없도록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한시적으로 코로나기간 동안 이 제한을 해지하였지만 작년 6월에 다시 이를 다시 제한하였다.) 


캐주얼로 일을 한다는 것은 일할 수 있는 시간을 많이 확보할수록 돈이 벌린다는 것이다. 물론 나도 처음부터 일을 많이 받지는 못했다. 그리고 이렇게 일을 할 생각도 없었다.(웃음)


아무래도 처음 일하던 곳에서 시간을 너무 많이 잘리는 경험을 하며 한이 맺힌 것 같다. 일하고 싶다는 한, 초반에는 풀타임 근무자들의 휴가기간으로 주 20시간 정도 일을 할 수 있었는데, 풀타임 근무자들이 휴가에서 복귀하자 시간이 칼같이 잘려나갔다. 주 10시간 일할 때도 있었다. (시급이 아무리 높아도 주 10시간으로는 생활하는데 무리가 있다.)


아 이래서 워홀자들이 투잡을 뛰는구나!(웃음) 투잡을 결심했다.


다른 잡을 하나 더 구하기로 했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지역이동을 고려하고 있었기 때문에 동일 경력의 일을 세컨잡으로 구하기 시작했다. 세 번쯤 인터뷰를 보고 세컨잡이 구해졌는데 이후로의 일이지만 나는 첫 업장을 그만두고 이 업장에서 마지막까지 일하게 되었다.


시급은 첫 업장보다 2달러 정도 낮았지만 시간을 많이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고 일을 하면 할수록 즐거웠기 때문이다. 첫 업장에서는 코워커 모두가 자기가 살기 위해 벅찬 느낌이었는데 이 업장은 모두와 함께 일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느끼지만 돈도 중요하지만 근무환경의 중요성을 아무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두 달쯤 두 곳을 병행했다. 그때가 한창 이스터(부활절) 시기였는데, 이 이스터 시기를 기점으로 나는 첫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다. 세컨잡을 통해서 받는 수익이 훨씬 커지기도 했고 첫 업장의 경영주 마인드와 업무환경 때문에 즐겁게 일을 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세컨잡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리고 일이 익숙해지기 시작했을 때쯤 우리 매장이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는지 매장이 진짜 너무 바빴다.(일하는 동안 매출 신기록을 달성하기도 했다.) 시간이 점점 늘기 시작했는데, 이때부터 통장에 꽂히는 돈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공휴일이 끼기라도 하는 주는 다음 주 수요일(주급날)이 기다려지기도 했다. (호주는 공휴일에 근무한 자에게 시급을 2배로 주도록 되어있다.)


매장이 바빠지며 내가 일하는 시간도 늘어갔고 어느 순간 돌아보니 평균 50시간 일하고 있는 내가 있었다. 매장의 매출이 최정점을 찍은 주에 드디어 주 60시간을 달성했다. 만감이 교차했다. 


"어머나? 나 이렇게 일할 생각 없었는데...? 나 왜 열심히 일하고 있죠?"


내가 친구에게 한말이었다. 호주에서 60시간을 일했다고 하면 다들 말한다.


"YOU ARE RICH!" 


그래 한시적 부자가 되었다.(웃음) 물론 지치기도 했다. 주 60시간을 일한 다는 건 주 7일을 근무한다고 봐야 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한국에서는 어떻게 해서든 회사를 벗어나고자 했는데, 지금은 내가 자발적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 그것도 나의 의지에 의해서 말이다.


무엇이 달라진 걸까? 분명 똑같은 나인데 나 왜 일하고 있죠? 


생각해 보면 나는 그동안 나를 위해 일해본 적이 없었다. 한국에서 일할 때의 나는 항상 사장 좋은 일만 하구나 생각하며 일했다. 열심히 일해도 나보다는 너를 위해서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일하면서도 내내 불만이 가득한 직장인이었던 것이었다.


호주에서는 오로지 나를 위해 일했다. 일을 하면서 매출이 오르면 시간을 더 받을 수 있으니까 바쁜 것 마저 좋았다. 친구들이랑 맛있는 것을 먹고 싶었고 내가 사는 곳 외의 도시에도 가보고 싶었다. 그리고 돈도 모으고 싶었다. 


생각해 보니 한국에서 나는 하고 싶은 게 없었다. 이제 나이가 되었으니 일을 하렴이라고 말하는 사회시스템에 맞춰 일을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나를 위해 일하기보다는 남을 위해 일한다고 생각했다. 세계여행을 돌아와서도 나를 위해서가 아닌 나에게 기대하는 부모님을 위해서 일을 다시 해야지 생각했다. 


결국 다른 건 내 마음이었다. 그리고 주 60시간을 일하며 나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 "아 이제 쉬어야지" 

여러분 주 60시간 일해봤나요? 해보니까 알겠더라고요. 사람은 쉬어야 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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