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제대로 된 현상학을 논할 때가 되었다. 솔직히 아직 공부가 끝나지는 않았다. 적어도 데카르트적 성찰은 다 읽고 이 글을 쓰고 싶었는데 시험기간이 겹치는 바람에... 여기저기서 참고한 문헌들을 이해한대로 요약해서 써내려갈 생각이다. 이 글에서부터는 무지의 책임을 덜기 위해 참고문헌을 남겨놓도록 하겠다.
단 자하비에 따르면 후설을 이해하는 데에는 세 가지 길이 있다. 선험적 논리학을 통해서, 초월론적 존재론을 통해서, 그리고 생활세계를 통해서이다. 이 셋은 각각 후설 철학의 전기, 중기, 후기를 이룬다. 내가 주로 따르고자 하는 것은 중기, 초월론적 존재론을 통한 길이다. 이 길의 주저가 바로 데카르트적 성찰인데, 데카르트에 대한 비판을 통해 현상학의 개념을 잡을 수 있어 조금 더 난이도가 낮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 때문이다.
전에 친구와 데카르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끝끝내 그 친구는 데카르트의 철학에서 신의 존재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그는 후설로 나아갈 준비가 되어 있다. 후설이 비판한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그에 따르면, 데카르트는 시작은 좋았지만 엄밀하지 못했다. 모든 지식을 의심한 끝에 결코 의심할 수 없는 본질을 찾으려는 시도는 좋았지만, 끝내 자신의 탐구 결과를 완전히 신뢰하지 못하고 전능한 신에 의지하여, 보다 정확히는 “신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라는 알량한 신념에는 의심을 제기하지 못하고 세계를 설명한다. 즉, 후설이 보기에 데카르트가 정립해낸 토대는 사유하는 나의 존재(cogito)가 아니라 신의 존재였던 것이다. 나의 존재는 신의 존재로 가기 위한 하나의 징검다리에 불과해졌다.
그러면 후설은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한다는 것일까? 데카르트의 코기토 논증을 찬찬히 살펴보자. 모든 사실과 지식들을 의심한다. 그러나 그것들에 대해서 사유하는 나의 존재는 의심할 수 없다. (후설에 따르면) 데카르트는 사유하는 나의 ‘존재’를 코기토로 삼았다. 후설은 더 나아간다. 후설은 ‘사유하는 나의 존재’ 그 자체를, 다시 말해 사유의 주체로서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끊임없이 어떤 ‘무엇’에 대해 사유하는 행위를 멈추지 않는 능동성을 결코 잃지 않는 주체를 코기토로 삼았다. 이런 단순한 말장난으로 무엇이 달라지는가? 데카르트에게 있어 정립된 나의 존재는 무능하다. 다만 한 토막의 실재성만을 끈질기게 부여잡고 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의 허락이 필요하다. 그러나 후설의 코기토는 다르다. 어떤 대상을 지향하고 그것을 마침내 현상으로서 구성해내는 ‘지향적 구성능력’ 자체가 바로 코기토이다. 이 경우 세계의 현존은 신의 보증이 필요하지 않다. 대상을 그 자체로서 현상으로 구성해내는 능력이 바로 코기토의 본질이다.
이 시점에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후설의 이런 논의에 대해 칸트적 세계관을 들이밀어서는 안 된다. 이건 현상학을 처음 접할 때 가장 흔히 하게 되는 실수인 것 같은데, (내 얘기다.) 바로 현상학을 물자체와 현상 사이 대립구도에서 이해하는 것이다. 이 경우 현상학은 칸트와 똑같아진다. 물자체에 대해서는 결코 알 수 없고 현상은 우리의 의식이 구현해내는 것에 불과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의식은 결코 아무거나 현상으로 구현하지 않는다. 혹은, 아무거나 구현하더라도 그것이 실제에 부합하는지 아니면 멋대로 구현한 것인지를 분간할 수 있다. 우리의 의식은 되도록 실재를 반영하여 현상을 구현하되, 의식의 자신의 필요에 따라 어느 정도 자율권을 갖는다. 예를 들어보자. 나는 안경을 쓰고 있다. 그리고 지금 화면을 본다. 나는 반드시 안경을 통해서 화면을 본다. 그러나 내가 구태여 의식하지 않는 한, 나의 현상 속에 안경은 없다. 조금 노력을 기울이면 나는 내 시야 주위를 감싸는 검은 안경테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일상적인 나의 현상에 이런 것들은 없다. 또 하나 더, 지금 보고 있는 노트북을 보자. 내게는 노트북의 뒷면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노트북을 생각할 때 결코 이것의 뒷면이 공백은 아니다. 왜일까? 실제 사물인 노트북은 마땅히 뒷면을 갖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즉, 의식에 나타나는 현상은 실재에 부합하게 구성되며, 중요성에 따라 누락된다. 그렇기 때문에 후설의 코기토는 칸트와 달리 그냥 구성적 주체가 아니라 ‘지향적 구성능력’을 갖는 주체이다. 즉, 실재로서의 대상을 지향한다.
코기토를 이런 식으로 이해하면 문제는 간단해진다. 세계의 존재는 더 이상 신의 보증이 필요하지 않다. 내가 그것을 본다는 것, 다시 말해 그것이 현상으로서 나의 의식에 주어진다는 것 자체가 내 의식의 지향성으로 인해 그것의 존재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즉, 세계는 내게 사태 그 자체로 주어진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적인 상황 속에서 우리는 자주 착각한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많은 편견과 습관들이 있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의 의식이 순수한 상태라면, 우리는 의식에 직접 주어지는 그대로를, 다시 말해 사태 그 자체를 직관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여러 관습들이 이런 순수한 직관을 막는다. 그리고 이런 편견의 가장 기저에서 가장 강력하게 자리하는 우리의 태도가 있는데, 그것을 자연적 태도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현상학적 방법이란, 세계가 실재로는 존재한다고, 혹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정하는 것도 아니며, 동시에 내가 존재한다고, 혹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정하는 것도 아닌, “실재의 배제가 아니라 실재에 대한 특정한 독단적 태도를 중단시키는 것”이다. 이를 다른 말로 ‘현상학적 괄호넣기’, 혹은 ‘현상학적 판단중지(에포케)’라고 한다. 현상학적 방법은 실재에 대한 우리의 독단적인 태도를 괄호 안에 넣음으로써 사태 그 자체에 대한 직관을 가능케 하는 것을 의미하며, 이를 전문용어로 ‘현상학적 환원’이라고 한다.
그런데 자연적 태도란 무엇일까? “우리가 경험에서 마주하는 세계가 우리와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단적으로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다. “반대로 현상학적 태도를 견지하면서 현상학적 철학에 참여하려면 세계에 관한 소박하고 검토되지 않은 몰입에서 한 걸음 물러나 그 세계의 마음-독립적 현존에 대한 우리의 자동적인 믿음을 유보해야 한다.” 그래서 자하비는 현상학적 방법론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그것은 “우리를 자연주의적 독단론으로부터 해방하고, 우리가 모두 일정 수준에서 구성의 과정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즉 우리 자신의 구성적 연관을 깨닫게 하는 것이 (현상학적) 에포케와 환원의 목적이다.”
그러므로 현상학적 환원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은 지향적 구성능력 그 자체이며, 이로부터 인식주체로서의 나의 현존과 인식대상으로서 세계의 현존이 의심할 수 없는 진리로서 우리에게 주어진다. 이 때, 나와 세계의 현존은 과거 서구 철학에서 전통적으로 이해된 것처럼 상호독립적인 것이 아니다. 나는 언제나 세계 속의 나이며 세계는 언제나 나에게 나타나는 세계이다. 왜냐하면 정말로 의심할 수 없는 코기토는 세계의 현존 그 자체도, 혹은 나의 현존 그 자체도 아닌 세계에 대한 나의 지향적 구성능력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와 나는 언제나 상호 연관되어 있어야 한다. 연관되지 않은, 그래서 지향적 구성능력의 한계를 넘어가서 상정된 세계 혹은 나의 존재는 모두 의심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후설은 칸트의 물자체 형이상학을 ‘소박한 형이상학’이라고 말하며 배제했다.
후설의 현상학을 요약하자면, 데카르트의 코기토를 확장하여 지향적 구성능력의 존재를 밝혔고 이로부터 주체인 나와 대상으로서의 세계가 나타난다. 보다 정확히는, 나를 포함한 세계 전체가 비로소 드러난다. 후설에게 세계는 현상학적 환원 이후에 남겨진 것이며, 이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즉 스스로 나타나는 것으로서의 현상이다. 그러므로 후설에게 있어 현상학이란 나의 자연적 태도를 괄호에 넣은 후 비로소 나타나는 세계 일반에 대한 탐구이다. 그런데 이 때 세계가 현상으로서 나타난다는 것이 중요하다. 세계는 나의 외부에 실재하는 것으로 상정된 것도 아니며 철저하게 나에게 귀속된 것으로서도 아니다. 피에르 테브나즈의 설명에 따르면, “세계가 현상으로 나타난다고 하는 것은, 세계라는 존재란 더 이상 현존이나 현존의 실재성이 아니라 세계에 관한 존재 의미이며, 이 세계의 의미가 코기토에 의해 지향되는 사유대상(cogitatum)이라는 사실 속에 귀속된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다. 환원이라는 것은, 코기토만이 아니라 ego - cogito - cogitatum (자아 - 사유 - 사유대상), 즉 세계에 대한 의식, 세계에 대한 의미를 구성하는 의식을 나타낸다. 또한 이 새로운 관점에서 세계는 하나의 현존이 아니라 단순한 현상이자 의미다.”
이러한 후설의 사유는 그 자신이 밝힌 바와 같이 몹시도 베르크손적이다. 이는 베르크손의 박사학위 논문이자 첫 주저의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다. 바로 “의식에 직접 주어진 것들에 관한 시론”이다. 베르크손의 ‘의식에 직접 주어진 것들’이 의미하는 것은 후설의 ‘사태 그 자체’와 다르지 않다. 다만 둘은 방향성에서 차이가 있는데, 베르크손의 목적은 철저하게 형이상학이었으며 단지 형이상학의 방법론으로서 현상학적 방법론을 (아직 등장하지도 않았지만) 사용한 것이다. 후설은 바로 이 방법론을 정식화하여 어디에나 적용될 수 있도록 체계를 세웠다고 말할 수 있겠다. 거칠게 말하자면, 베르크손의 철학은 후설의 방법론에 따른 결과물일 수도 있다. 실제로 베르크손은 물질과 기억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지각은 권리상으로는(이론적으로는) 전체의 상일 것이나 사실상으로는 당신에게 관심이 있는 것으로 환원될 것이기 때문에, 당신이 설명해야 할 것은 따라서 어떻게 지각이 생기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그것이 제한되느냐이다.”
이후 후설의 현상학적 방법론은 다각도로 발전한다. 우선 그의 제자인 하이데거에 의해 존재론적 전회를 한 번 겪게 된다. 실존주의적으로 왜곡되고 잘못 이해된 탓에 많은 명성을 얻게 된 이 철학자의 철학은 사실 현상학을 시도했다가 점차 현상학을 포기해가는 과정이다. 이와는 별개로 후설의 저작은 프랑스로 건너가서 또 한 차례 발전하게 된다. 이 과정이 꽤 재밌어서 좀 적어볼까 한다. 우선, 후설의 책을 가장 먼저 불어로 번역해서 출판한 사람은 다름 아닌 에마뉘엘 레비나스이다. 그리고 그의 책을 몹시 감명깊게 읽은 프랑스 청년들 중에는 장 폴 사르트르, 시몬 드 보부아르, 모리스 메를로-퐁티가 있었다. 처음 현상학을 접할 때의 스토리가 인상적이다. 어느 날 보부아르와 사르트르는 친구 레몽 아롱과 함께 ‘카페 드 플로르’에 앉아 있었다. 이 때 레몽 아롱이 환희에 차서 사르트르에게 “자네가 현상학자가 된다면, 이 와인잔을 가지고도 철학을 할 수 있게 된다네!”라고 말하자 사르트르가 몹시 감명을 받아 그 날로 레비나스가 번역한 후설의 “데카르트적 성찰”을 읽었다고 한다. 정말이지 프랑스 철학의 위대한 시절이 아닐 수 없다. 이후 사르트르와 퐁티는 프랑스 현상학계의 주류를 이룬다. 현대 현상학은 메를로-퐁티 계열과 그렇지 않은 계열로 나뉠 정도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에게 현상학을 전달해준 레비나스는 비 메를로-퐁티 계열의 대표주자이다. 레비나스와 더불어 미셸 앙리와 장 뤽 마리옹 등도 여기에 속한다. 이후에는 아마 하이데거를 빼고 사르트르와 메를로-퐁티를 다룬 후, 레비나스와 미셸 앙리까지 다루면 현상학 특집이 끝나지 않을까 한다. 와 존나 많네. 언제 다 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