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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름달 May 14. 2021

(취업스토리5) 회사를 능동적으로 다녀보기

회사 안에서 이직 준비하기

 꿈과 희망을 가득 가지고 입사한 회사에서 마주한 것은 실망감뿐이었다. 대기업에서 나는 단지 부품이었고, 내가 없어도 회사는 잘 돌아갈 수 있다고 느꼈다. 희생만을 강조하였고, 내가 성장하고자 하는 방향에 대해서는 귀 기울여 들어주지 않았다. 멀리서 보았을 때는 꿈의 기업이었는데, 안에서 들여다보니 겉만 번지르르하고 속은 고여있는 곳이었다.

 파트에 배치받은 뒤 1년 정도는 부정적인 생각들로 가득했다. 돈과 관련된 업무를 하고, PPT나 엑셀 문서를 작업하거나 단순 취합 작업을 하면서 현타가 왔다. 이런 일은 중학교를 갓 졸업한 나에게 맡겨도 충분히 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걸 하려고 대학교를 졸업하고, 데이터 분석을 공부하고, SW 개발을 공부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SW 개발 직군이 할 만하다고 생각했던 일인 '오라클에 접속해서 sql 쿼리를 날리기', '이클립스를 켜서 자바 프레임워크로 프론트앤드 개발하기' 등의 업무는 하지 않았다. 하루 종일 PPT 문서를 만들면서 위로 정렬, 가운데 정렬을 하고 있었고, 엑셀 작업을 하면서 피봇 테이블을 만들고 있었다. "아, 때려치우고 싶어."

 그래도 어쨌든 내가 당분간 다녀야 할 회사인데, 조금 긍정적으로 생각해보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회사에서 어떠한 것들을 배웠는지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했다. 1년 동안 꽤 많은 것들을 배웠다. 단지 이론으로만 접했던 것들을 회사에서는 실무로 접할 수 있었다. 책에서만 보았던 ERP 시스템들의 실체를 눈으로 볼 수 있었고, 회사의 데이터들이 어떻게 인터페이스 되는지 직접 체감할 수 있었다. 그러한 시스템들을 구현하기 위해 필요한 데이터 베이스나 프로그래밍과 같은 기술들은 직접 공부가 더 필요했지만, 그래도 시스템들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고 운영되는지 아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크다고 생각했다. 마치 2D로만 보던 것을 3D를 넘어 4D로 보는 느낌과 비슷할 것 같다.

 이직을 준비하기 위해 필요한 것 중 하나가 포트폴리오였다. 나는 대기업 경력이라는 좋은 무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평가했다. 그래서 포트폴리오에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업무도 넣기로 했다. 운나쁘게도, 내가 하고 있는 일을 SW 개발이 아닌 PPT 문서 작업이나 엑셀 작업이었다. 그래서 좀 더 SW 개발자 다운 업무를 찾아 나서기로 했다. 수동적인 사람에서 능동적인 사람으로 바뀌는 계기였다. 함께 업무를 하는 선배에게 용기를 내서 말을 했다. "선배님, 저 SW 개발 직군인데 SW 개발을 하면 지금 하고 있는 업무에 대해 좀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번에 진행하고 있는 웹 개선 과제에 직접 참여해서 웹 개발을 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SW 개발 직군 다운 일인 웹 개발 과제에 참여하게 되었다.

 드디어 오라클과 이클립스를 설치하고 환경설정을 했다. (SW 개발 직군인데, 입사 후 1년 만에 드디어!) 주변에 도움을 받을 선배는 없어서 외부 개발자에게 배우며 웹 개발 과제를 해내갔다. 나에게 개발해야 할 화면이 할당되었고, 화면 설계부터 개발, 코드 리뷰, 테스트까지 순차적으로 진행했다. SW 개발 직군 다운 일을 하게 되어서 너무 행복했다. 과제가 끝난 뒤에는 또 개발할 일이 없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개발에 대한 맛을 한번 보았기 때문에, 또 맛보고 싶었다. 아직 그 정도로는 포트폴리오를 채우는데 어림도 없었다. 또 다른 먹잇감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찾아보았다. 회사 보안상 또 다른 어떠한 과제를 진행했는지 더 자세히 말하기는 어렵지만, 내가 이 곳에 없었더라면 겪어보기 어려웠을 법한 것들을 접하며 어떠한 기술이 있고, 어떠한 시스템들이 있는지 배워나갔다.

 매일 잠들기 전에 하는 일이 취업공고를 보는 것이다. 관심 있는 회사의 공고가 올라오면 포지션이나 지원 자격 등을 확인해보고 메모한다.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앞으로 채워나가기 위함이다. 또, 내가 회사에서 해볼 수 있겠다 싶은 자격요건들이 나오면 최대한 회사에서 많이 경험해보기 위함이다. 최근에 대용량 데이터 처리와 관련된 데이터 엔지니어링 포지션이 공고에 자주 보인다. 자격요건을 보면 특정 기술이나 솔루션에 대한 사용 경험을 요구하고 있는데, 마침 회사에서 내가 맡은 업무와 관련된 기술이다. 이렇게 좋은 기회가 어디 있겠는가! 기회를 잡기 위해 그 기술을 더 깊이 공부해보기로 했다. 처음에는 기술의 정의 정도밖에 모르는 상태였는데, 지금은 어떠한 데이터베이스를 사용하고, 어떠한 네트워크 망이 필요한지 등의 인프라에 대해서도 이해하고 있다. 앞으로는 직접 개발에도 참여해서 포트폴리오에 추가할 수 있을 만한 경험으로 늘려나가는 것이 나의 목표이다.

 아직도 PPT 문서 작업과 엑셀 문서 작업을 할 때면 현타가 온다. 또, 돈과 관련된 작업이나 단순 문의에 응답을 할 때에도 내가 콜센터 직원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1년 전의 내가 부정적으로 가득 차 있었다면, 지금은 긍정적인 부분들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다. 물론, 갑자기 애사심이 생겨서 회사가 좋아진 것은 당연히 아니지만 적어도 내가 하고 있는 업무에 대해서는 만족감이 생겼다. 맡은 업무가 너무 불만이어서 퇴사까지 고민했을 때, 이직을 위해 포트폴리오에 경력 추가라는 불순한 의도가 있기는 하지만, 조금만 내가 능동적으로 배우고 싶은 것들을 찾아보고 직접 공부해보는 것들이 만족감을 불러일으켰다. 역시, 나는 힘든 상황에 처하면 처음엔 절망할지언정 어떻게든 돌파구를 찾아서 나가려는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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