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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름달 May 25. 2021

(나 시리즈1) 나는 해리포터 덕후입니다.

나만의 무기이자, 시그니처 포인트

 어떤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된다는 것은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그 분야는 천문학이 될 수도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박사 학위를 따고 연구활동으로 얻은 결과에 대해서 수많은 논문을 쓰고 발표를 해야 전문가로 인정받을 수 있다. 최소한 10년 이상의 시간을 한 분야에만 몰두해야 한다. 잘 생각해보면, 덕후와 정의가 비슷하지 않은가? 덕후의 뜻을 네이버 사전에서 빌려오자면, "오타쿠의 의미로도 사용되지만, 어떤 분야에 몰두해 마니아 이상의 열정과 흥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긍정적인 의미"이다.

 나는 해리포터 덕후이다. 나에게 가장 좋아하는 것을 물어보거나 자신 있는 것을 물어본다면, 망설임 없이 해리포터라고 답 할 것이다. 너무 좋아해서 책과 영화를 반복해서 보았고, 그러다 보니 전문가가 되었다. 친구들 뿐만 아니라 회사 등 주변 사람들에게도 해리포터 이야기를 자주 꺼냈더니, '나 == 해리포터'라는 공식이 생겼다. 해리포터를 보면 내가 떠오른다고 한다. 덕후에게 최고의 칭찬이 아닐까 싶다. 해리포터와 처음 만난 것은 10살 때였다. 어느 날, 한자 급수 시험을 위해 공부하던 중이었다. 공부하기 너무 싫어서, 집에 있는 아무 책이나 집어 들고 몰래 책을 읽기 시작했다. 맙소사, 너무 재미있어서 다음 책을 빨리 읽고 싶었다. 결국 그날 한자 공부는 포기하고, 다음 책을 빌리기 위해 동네 도서관으로 달려갔다. 18년 전, 나를 매료시켰던 책은 바로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이었다.  

 고등학생 때 겪은 잊지 못할 해리포터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있다. "해리포터 행방불명 사건"을 먼저 소개한다. 수능을 앞두고서도 틈만 나면 해리포터를 읽었다. 엄마는 수능 공부는 안 하고 책만 읽는 내가 걱정이 되셨는지, 책을 숨기셨다. 수능이 끝나고 책을 돌려받긴 했는데, 한 권을 돌려받지 못했다. 분명히 집에 있을 7-4권 책을 28살이 되어서도 찾는 중이다. "반 2등과 1등이 함께 야자를 튄 사건"도 소개한다. 18살 때, 해리포터 영화 마지막 시리즈인 죽음의 성물 part2가 개봉하였다. 마지막 영화만큼은 개봉일에 보고 싶었다. 개봉일은 평일이어서, 야자를 튀어야만 했다. 내가 고등학생일 때는, 야자가 강제여서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야만 선생님께 허락받고 뺄 수 있었다. 반 2등이었던 나는, 다른 반의 1등인 친구와 함께 선생님께 학원 레벨테스트를 본다고 거짓말을 하고, 그날 야자를 뺐다. 우리는 영화관에 가서 눈물과 콧물을 흘리며 마지막 해리포터 영화를 보았다.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라왔던 해리포터를 보내주는 느낌은 너무 슬펐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해리포터에 대한 사랑은 계속되었다. 특히 원어민 교수님의 영어 교양 수업에서 그 사랑이 빛이 났다. 중간고사 대체 과제로 영어 에세이를 3번 제출해야 했다. 첫 번째 에세이의 주제는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었다. 나의 존경심을 가득 담아 덤블도어를 찬양하면서도 그의 잘못에 대해서도 지적하는 에세이를 작성하여 제출했다. 두 번째 에세이의 주제는 '가고 싶은 여행지'였다. 호그와트에 입학하고 싶고, 방학이 되면 위즐리네 집에 놀러 가고 싶다고 에세이를 작성했다. 교수님께서 세 번째 에세이도 해리포터로 써오면 F를 줄 거라고 경고했다. (왜?) 세 번째 에세이의 주제는 '사회 문제'였다. 해리포터로 쓸지 말지 고민한 끝에, 결국 머글 혼혈 차별주의와 집요정 학대에 대해서 에세이를 작성했다. 교수님은 F를 주려다가 마지막 에세이를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며 결국 A를 주셨다. 나와 해리포터의 승리였다!  

 해리포터 덕후들을 대상으로, '해리포터 이펙트'라는 책의 번역가를 모집했던 적이 있다. 번역할 만큼의 영어 실력은 안되었지만, 해리포터 덕후라는 사명감을 가지고 지원했다. 1차 전형은 '내가 해리포터를 얼마나 사랑하는지'에 대한 에세이를 쓰는 것이었다. 해리포터에 대한 사랑을 듬뿍 담아 에세이를 작성했고, 당연하게도 1차 전형에 합격했다. 2차 전형은 직접 번역하는 것이었다. 책의 일부를 받아 번역해서 제출하는 것이었다. 아쉬운 영어 실력으로 2차 전형은 합격하지 못했지만, 출판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1차 전형 때 제출했던 에세이를 책에 실어도 되겠냐는 내용이었다. 오 마이 멀린! 당연히 그 제안을 수락했다. '해리포터 이펙트' 책에 나의 이름과 함께 내가 얼마나 해리포터를 사랑하는지 실리게 되었다. 해리포터에 어떠한 형태로든 나의 흔적을 남기는 것이 버킷리스트였는데, 버킷리스트를 달성하는 순간이었다. 이로써 난 성공한 덕후가 되었다.   

 해리포터 덕후로 18년간 살아오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해리포터 전문가로 인정받았다. 해리포터에 대해 궁금한 것들이 있으면 나에게 물어보고, 때로는 나에게 해리포터 질문을 하면서 도전장을 내미는 친구들도 있다. (도전장이 온다는 것은, 나를 일인자로 인정한다는 것인가?) 성공한 덕후가 되기 전에는, 단순히 해리포터에 대한 사랑을 일상생활에서 펼치는 것만 해왔다. '해리포터 이트'라는 책에 나의 짤막한 해리포터에 대한 글이 실림으로써 해리포터로 인정받는 맛을 알게 되었다. 지금은 해리포터의 인물에 대해 집중 탐구 중이다. 왜냐고? 해리포터 인물 집중 탐구에 관한 에세이를 써서 사람들에게 해리포터에 나오는 등장인물의 매력을 널리기 위해서다! 언젠간 해리포터 박사가 되어서, 세계 곳곳으로 강연을 하러 다니는 나를 상상하며 성공한 덕후의 삶을 그려본다.

 덕후라는 것을 널리 알리면서, 사람들에게 나를 기억시키기는 것이 수월해졌다. 해리포터를 보면 자연스럽게 내가 떠올리는 것만큼 나를 각인시키는 쉬운 방법이 없다. 나를 소개할 땐, 해리포터 덕후라고 소개하고, 사람들에게 해리포터에 대해서 아무거나 물어보라고 요구한다. 그럼 대부분 "네빌 롱바텀은 누구랑 결혼했나요?"와 같은 책에는 나오지 않는 질문을 하거나, 특정한 장면을 보여주면서 "다음에 나올 장면은 뭘까요?"와 같은 퀴즈를 낸다. 해리포터 덕후인 나는 손쉽게 답변해줌으로써 사람들에게 자그마한 충격을 준다. 그렇게 해리포터 덕후로 인정받고, 각인되는 것이다. 18년 동안 쌓아온 해리포터 덕질로 인해 얻은 "해리포터 덕후"라는 타이틀은 이제 나만의 무기이자, 시그니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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