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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서 May 11. 2022

낡은 가구 같은 사람

여행산문. 여행에세이

"어딘가 낡은 가구 속에  하나의 세상이 있고  안에서 낡은 가구 같은 사람과 만나 오늘  책에 대해 얘기 나누는 상상을 했다."




그날도 어제처럼 풀사이드에 앉아서 책을 읽다가 폰으로 일기 예보를 보았다. 포르투에 드디어 비가 그치는 걸로 나와있었다.  한가하게 선베드에 앉아 있을  있는 이곳 마데이라가 좋았지만, 포르투에서 3 넘게 지속된  때문에 피난 오듯 왔다는 사실 때문에, 포르투가 맑아졌다면 다시 가봐야 억울하지 않을 같았다. 무엇보다 포르투에는 내가  가보고 싶은 곳이 아직 남아  때문이었다.


비가 그친 도시는 맑고 투명했다. 어떤 도시는 비가 와도 좋지만 어떤 도시는 이렇게 환한 햇살이 비춰야만 가장 빛나는  다. 렐루 서점이 문을 여는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했다. 하지만 벌써 사람들이 줄을 서기 시작하고 있었다. 나의 입장 순서는 다섯 번째여서 이 길어져도 아무 걱정 없이 기다릴  있었다. 잠시  직원  명이 나와서 바로  건물 일층에서 입장권을 구매해야 한다고 안내를 했다.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그래야 한다는  이미 알고 있었다.  건물에서 입장권을 사고 나오니 바로 서점으로 입장할  있었다. 서점의 직원들은 능숙하게 손님들의 동선을 통제했다.

렐루 서점은 생각보다 작은 서점이다. 하지만 그들의 홍보 브로셔에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이라고 써있다. 그건 스페인 작가 엔리크 빌라 마타스가 남긴 찬사였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말은 그것이 무엇에 대한 언급이든 주관적인  아닌가. 그러므로 모두가 그렇게 느낄 거라고 장담할 수는 는 것이다. 세상에는 역사가 오래되고 압도적인 장서와 멋진 디자인으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이라고 평가받는 곳이  군데 있다. 렐루 서점 역시 그러한 서점들  하나지만 아마도 그중에서는 작은 서점에 속하지 않을까.


서점이라는 공간은 생각해 보면  기본 요건이 간단하다. 어떤  공간을 책으로 채워놓으면 된다. 손님들이 책을 골라서 구입할  있다면 가장 기본적인 서점의 조건이 완성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서점에서 제일 중요한  바로 그곳에 있는 책들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카페에 가는데 반드시 커피  때문에 가는 것만은 아니듯 서점도  공간이 주는 분위기가 중요하다. 게다가 어떤 건축물이  년이 넘게  모습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면, 그것만으로 그 서점을 찾을 이유가 충분하지 않을까. 렐루 서점은 1906년에 지어진 네오고딕 양식의 건물이다. 내부의 천장이나 바닥, 계단과 난간, 창문과 스테인드 글라스들이 더없이 아름다운  그만큼 시간이 쌓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렐루 서점에 들어오려고 줄을  사람들의 목적은 책을 사려는 것이 아니다.  세계에서 제일 아름답다는  서점이 어떤 인지 보고싶기 때문이다. 그런 손님들에게 서점 측에서 입장권을 판매하만약 책을 구매하면  입장권 값을 돌려주는  똑똑한 영업 방식 같았다.  

렐루 서점은  년이 훌쩍 넘은 서점이지만 그곳에서 판매하는 책들이 모두 옛날 책들인  아니다.   넘은 나무 책장에 올해 출간된 신간들이 꽂혀 있는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난  권의 포르투갈 시집을 들고 내부 공간을 둘러보았다.    이곳은 각종 모임이나 공연이 열리고 도서관의 역할도 하는 곳이었다고 한다.  시절의 작가들이 이곳에 모여서 나누던 얘기들이 책장 제일  어딘가 먼지처럼 쌓여있을  같았다. 한국에도 박인환 님이 만들었던 마리서사 같은 서점이 작가들의 살롱 역할을 했었다고 하지만  모습 그대로 아직까지 유지되고 있는 곳은 다.

렐루 서점의 직원들은 지나치게 친절하지도 않고 지나치게 쌀쌀맞지도 않게 손님들을 대했다. 매일 수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보니 그들 역시 피곤할지 모른다. 하지만   넘은 서점에 있는 현시대의 점원들의 모습이 마치  옛날 이곳에 있던 사람들처럼  어울렸다. 그들의 곱슬머리와 은빛 안경테, 그리고 깨끗한 바지와 카디건도 그들 옆에  있는   넘은 책장처럼 진중해 보였다.   젊은 여자 점원의 나이가 알고 보면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하며 서점을 나왔다.


나의 숙소는 서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호스트는 자신이 건축가라고 했다. 젊은 남자였는데 자신은 건축가지만 주업이 에어비앤비라며 었다. 숙소가 있는 건물 또한 오래돼서 그런지 그의 웃음소리가 낡은 가구가 삐걱거리는 소리처럼 들렸다.  방은  다른 장식 없이 심플했지만 구석구석에서 건축가의 취향을 느낄  있었다. 해가 조금 쌀쌀했다. 나는 덮을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식탁에 놓아둔 메모지를 찾았다. 방을 안내한 호스트가 내게   그의 전화번호가 있었다. 그가 방을 나서며 종이에 펜으로 전화번호를 적어  것이었다. 그때  그냥 폰으로 메시지를 보내면  텐데 번거롭게 펜과 종이를 찾는 그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덮을   냐고 물었더니 그는  안에 침구류를 넣어 놓은 가구가 있다며 위치를 알려주었다. 그의 말대로 옆방으로 들어가니 우리나라의 문갑 비슷하게 생긴 낡은 가구가 있었다. 그것은 그보다  오래돼 보이는 자물쇠로 잠겨 있었다. 그가 알려준 대로 자물쇠를 여니  안에는 블랑켓과 쿠션들이 들어있었다. 자물쇠 뭉치가 바닥에 떨어져 ! 소리를 냈다.  소리는 아주  어딘가로  이동시키는 같았다. 어딘가 낡은 가구 속에  하나의 세상이 있고  안에서 낡은 가구 같은 사람과 만나 오늘  책에 대해 얘기 나누는 상상을 했다. 나는 피식 웃으며 블랑켓 하나를 들고 거실로 나왔다. 블랑켓을 두르고 소파에 앉으니 해가  서쪽 하늘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 글, 사진 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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