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만 있으면 돼." 뭐 그런 건 아니고
라떼 마시는 꼰대 추가
“아, 새로 나온 레고 갖고 싶다.”
아이는 얼마 전 생일 선물로 산 레고 안의 설명서를 보며 중얼 거린다. 조립 설명이 모두 끝난 페이지에는 새로운 레고가 등장한다. 레고 회사의 바람대로 아이는 새로운 레고에 눈독을 들인다.
“얼마 전에 생일이라 샀잖아. 갖고 싶은 걸 다 살 순 없어. 어린이날 즈음 다시 이야기해 보자.”
여기서 끝냈으면 깔끔했다.
"엄마 때는 말이야 레고 한 두 세트만 있어도..."
아이의 입이 비죽 튀어나온다. 회사에만 라떼가 있는 게 아니다. 집 안에도 라떼 마시는 꼰대 한 명 추가다.
아이를 가르치는 일은 세상 그 어느 일보다도 많은 공부가 필요하고 인내가 필요한 동시에. 스스로도 꽤나 괜찮은 존재가 되어야 함을 뼈저리게 느끼는 중이다. 왜 갖고 싶은 걸 다 살 수 없는 것인지. 인간의 욕망과 소비 사이에서의 관계에 대해 엄마의 고민이 먼저 되어야 아이가 이해하기 쉽게 설명할 수 있다. 그저 라떼 이야기로는 아이와 멀어질 뿐이나, 반복되는 설명에 지칠 땐 툭하고 라떼가 튀어나온다.
"생일 선물로 남편한테 뭐 받아? 남편이 필요한 거 있냐고 묻는데 딱히 모르겠더라."
누군가 물었다. 잠시 멍했다. 지난 생일에 뭐 받았더라.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임팩트가 없는 선물이었거나. 그냥 형식적으로 받은 선물이었겠다 싶었다. 아마도 '딱히' 갖고 싶은 게 없었을 것이다. 어려서는 생일을 기다려 그렇게 갖고 싶은 것들을 받고 즐기고 축하했는데. 왜 생일이 그렇게 신나지 않고 선물이 기다려지지 않을까.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여보, 로봇 청소기 엄청 할인하는데 살까?"
"필요 없을 것 같은데?"
다음 날.
"여보, 이거 로봇 청소기 찾아봤더니 사람들이 집안일 도와주시는 이모님을 들인 거라면서 엄청들 좋아해."
"편리하겠지만, 그거 돌리려면 바닥 꼼꼼히 치워야 하는 것도 보통 일 아니야."
다음 날.
"여보, 이거 오늘까지 할인인데. 일단 사서 써보고 별로면 내가 손해 안 보고 팔면 되지."
그래. 사라 사. 마음대로 해라. 귀 따갑다.
그렇게 필요하든 필요하지 않은 '편리하다'는 이유로. '할인을 많이 한다'는 이유로 많은 물건들이 집으로 들어왔다. 그래서였다. 생일 때 필요한 게 없었던 이유가. 아이들에게는 꼭 필요한 물건을 되도록 특별한 날에만 사주려고 가르치려고 하면서. 정작 어른들인 부부는 필요하면 언제든지. 혹은 몇 주 망설이다가. 바로 사 들였다. 가격이 저렴할수록 고민의 크기는 작았고, 크면 큰 데로 약간의 시간이 필요할 뿐이었다.
진정한 생일 선물을 받아 보고 싶다고 막연히 생각해 본다. 너무 갖고 싶었는데 참고 참았다 생일을 명분으로 받아서 오랫동안 귀하게 대접해 주고 싶다. 처음 만난 순간의 행복감의 크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줄어들겠지만. 그래도 꽤 오래. 다른 물건들보다 더 오래 대접받을 것이다. 30년쯤 전 가지고 놀던 레고 한 세트가 문득문득 떠오르 듯이. 하나라도 없어질까 귀하게 다루던 어린아이의 마음이 생각나면 지금의 나도 마음이 뭉글뭉글해 지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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