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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영 Jun 25. 2023

다른 일요일

에세이_02


오늘은 일요일입니다. 

매번 돌아오던 일요일이지만, 이번 일요일은 왠지 의미가 더 큽니다. 아무래도 편집자로 취업을 하고 정신없이 일을 하다 맞이한 첫 주말이라 그렇겠지요. 평일의 분주함과 고민과 걱정들이 잠시 물러나고 조금은 평온해지는 시간입니다. 물론 쉬는 와중에도 다음 주에 해야 할 것들, 새롭게 알아가야 할 것들, 제가 책임진 원고에 대한 부담감이 마음 한편에 자리 잡고 있어서 마냥 편하지는 않습니다. 시간의 감각을 더 예민하게 느끼게 되는 일요일입니다.




사실 취준 시절, 애쓰지 않으면 매일이 휴일이 되어 버리는 그 시간에도 마음에 늘 불편함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때의 불편함과 지금의 불편함은 다릅니다. 그때는 무척 조급했지요. 모든 불편함은 오로지 제자신에게 향했습니다. 해소되지 않고 분명하지 않은 감정들이 호흡을 무겁게 만들었습니다. 짐짓 태연한 척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취준을 하겠다고 호언했지만 그 말은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말과 다름이 없었습니다. 자신도, 미래도 전부요. 확신이 없는 시간을 살아내면서, 그 하루에, 일주일에 어떤 합리적인 기준과 체계를 구축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저를 배려하지 않고 일정하게 흐르는 시간이 야속했습니다. 뛰는 것을 멈출 수 없지만, 어디로 뛰어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는 난감한 상황이었지요. 지금은 그런 모호하고 희미한 시간에서 약간은 벗어난 듯한 기분입니다. 자신에게 활시위를 당기던 시커먼 힘을 어찌 되었든 다른 곳에 쏟아부을 수 있으니 그렇겠지요.




그러나 여유를 부릴 때는 절대 아닙니다. 방심해서도 안 됩니다. 긴 터널에서 탈출했다는 해방감에 도취되어 생각이 흩어지고 어지러워진다면 편집자의 책임을 다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공들여 쓴 글을 제게 맡겨주었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을 갖기 위해, 원고의 매력을 발견하고 이를 독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책으로 만들어야 하는 책임감의 무게를 놓지 않기 위해 어느 정도 긴장 상태를 유지해야 합니다. 적어도 이 일을 온몸으로 흡수할 때까지는요. 그래서 분명한 현재에 집중합니다. 불확실한 미래는 불확실하게 둡니다. 오늘의 마음가짐을 지키며 당장의 과제들을 무사히 잘해나가는 게 중요하겠지요. 원래 멀리 있는 모든 사물은 불확실하고 불명확합니다. 그저 가까이 다가갔을 때 그 형태와 질감과 색이 분명히 보입니다. 저도 마찬가집니다. 눈앞의 한걸음에 초점을 맞춥니다. 결음의 끝에 다음 도약해야 할 고지가 보일 것입니다. 다소 낙관적인 생각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아무리 걸어도 고지가 보이지 않을 수도, 원하지 않는 고지가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지요. 그렇다고 별 수 있겠습니까. 이러니저러니해도 야속한 시간은 계속 흐를 테니까요. 조금은 단순하게 그냥 느껴지는 이 시간을 채워봅시다. 달콤한 꿈과 씁쓸한 꿈은 꿈으로 두고요.




오늘은 일요일입니다. 

사람들 모두 저마다의 방식으로 일요일을 보내겠지요. 셀 수 없이 다양한 삶의 일요일들. 그 일요일들의 공통점은 내일 월요일이 온다는 것뿐입니다. 그뿐입니다. 일요일다운 일요일도 월요일다운 월요일도 없습니다. 자신만의 삶의 궤적이 적절하고 충분하게 시간을 채워갈 것입니다. 몇 주 전 조급하고 불안한 일주일을 보냈던 저는 오늘 다른 일요일을 보냅니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도서관에 책을 빌리고 좋아하는 유투버의 영상을 보냅니다. 그리고 내일을 준비합니다. 수심을 알 수 없는 불투명한 일주일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흠뻑 빠져보자고 스스로를 달랩니다. 일주일은 깊어봤자 일주일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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