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활동과 사회적가치가 중요한 시대,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는가?
지구적 빈곤을 해결하고 경제개발을 돕는 월드뱅크, 인공지능을 선도하는 OpenAI, 환경과 에너지의 파수꾼 Re100, 통화정책을 수립하고 화폐를 발행하여 세계경제를 관장하는 미국 연방준비은행(Federal Reserve Banks), 전 세계 보고서의 표준을 제시하는 GRI, 미국 최대의 자연사박물관(American Museum of Natural History)의 공통점이 무엇일까? 놀랍게도 비영리조직이라는 점이다. 정부로부터 독립된 민간조직인 동시에 이윤을 배당하지 않는다는 면에서 예외가 없다. 오늘날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조직들이 의외로 비영리조직이라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우리는 그들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까? 세상을 조용히 지배하는 조직, 비영리경영에 대해 알아야 한다.
국가와 시장은 사회공동체의 주요 영역입니다. 시민사회 영역은 고도화된 민주사회의 산물입니다. 현대사회에서 발생하는 복잡다단한 문제는 정부와 기업의 힘만으로 전부 해결할 수 없어 시민사회의 성장을 재촉합니다. 공통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람들의 자발적 행동은 역사라는 무대의 하이라이트입니다.
이 뿌리는 기원전 500년 고대 그리스의 philanthropia(인간애)로부터 시작해 로마의 humanitas(인문)와 humanism(인본)으로 해석되어 유럽과 주변부로 퍼져나갑니다. 이 장대한 역사적 줄기는 현대 필란트로피(philanthropy)로 잉태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구약시대의 유대인들은 성경말씀인 의로움을 체다카(righteousness, 개인적 정의)와 미쉬파트(judgement, 사회적 정의)로 분류했고, 구원의 삶을 위해 체다카를 자선행위로 실천했습니다. 유사한 시기 동양의 공자의 서(恕, 공감하는 능력), 맹자의 측은지심(惻隱之心, 긍휼히 여기는 마음), 묵자의 겸애(兼愛, 만민을 평등하게 사랑함)는 ‘내가 싫은 것은 남에게도 강요하지 말라’는 인간애에 기초한 사상이었습니다.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사람에 대한 사랑과 사회를 향한 의로움은 동서양을 아우르는 넓은 품이었습니다.
서구문명의 성장배경에는 헬라의 차가운 이성만이 아닌 히브리의 따뜻한 인간애와 뜨거운 정의가 있었습니다. 필란트로피는 근대에서 현대사회로 이어지는 과도기의 영국, 독일, 프랑스, 스위스, 인도 등에 영향을 미치며 사회의 보편적 가치로 정착합니다. 1601년 영국에서 자선법(Charitable Uses Act)이 제정됩니다. 수십 년간 응축된 시민의 힘은 청교도 혁명과 시민혁명으로 이어졌습니다. 1801년에는 노동자들의 자발적 공제조합이 수천 개 결성되었고 유럽 전역으로 사회연대경제의 아이디어가 퍼져나갑니다. 1854년 민간 복지관의 효시가 되는 인보관운동(settlement movement)이, 1869년에는 자선단체의 효시라 볼 수 있는 자선조직협회(charity organization society, COS)가 발족합니다. 이러한 흐름은 사회복지활동, 지역운동, 자원봉사활동, 자선활동, 시민운동 등 하나의 언어로만 설명할 수 없는 복합적 성격의 사회적 행동으로, 현대 시민사회의 실천현장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한편 프랑스에서는 Jean-Jacques Rousseau의 사상이 초석이 되어 당시 급진정당 코들리에(Cordelie)클럽의 표어 자유(liberté), 평등(egalité), 박애(fraternité)에 영향을 주었고 1789년 프랑스 혁명의 표어로 채택되었습니다. 이후 1875년 프랑스는 헌법에 이를 명시함으로써, 자유는 시장경제, 평등은 국가체계, 박애는 시민사회라는 현대 민주주의 사회구조의 근간을 형성합니다. 프랑스의 사상가 Alexis de Tocqueville은 1831년 미국을 여행하며 「de la démocratie en Amérique」(미국의 민주주의)를 출간했습니다. 당시 계급갈등으로 어수선하던 프랑스를 떠나, 미국에서 어떻게 민주주의가 확장되는지 궁금했던 것입니다. 그는 미국의 지방자치제도, 참여배심원 제도, 자발적 결사체와 시민사회 등을 보며 강한 인상을 받았고, 민주주의가 선거제도만으로 작동하지 않음을 깨달았습니다. 1620년 프로테스탄트들이 신대륙에 상륙한 후 디아스포라를 조성하고 township 문화를 형성하며 자유와 평등의 민주주의 공동체를 운영해 왔던 결과였습니다. 뒤이어 상륙한 유대인들의 독특한 자선문화가 어우러져 미국 시민사회의 원형이 형성되었습니다.
Martin Luther(1483~1546)의 직업소명설, Jean Calvin(1509~1564)의 구원예정설 등은 신대륙의 프로테스탄트 공동체를 지탱하는 주된 이념들이었습니다. Luther는 세속적 직업에 소명의식을 부여했고, Calvin은 노동과 근면으로 모아진 재물을 신이 주신 선물로 생각하라 했습니다. 이러한 사상은 미국식 필란트로피로 발전해 시민사회를 이끌어 가는 정신이 되었습니다. 자선문화가 자양분이 된 새로운 형태의 대학이 설립된 해는 1636년이었습니다. New College라는 이름으로 출발한 이 대학은 이후 John Harvard 목사의 유산이 토대(foundation)가 되어 최초의 근대적 재단이 되었고 최초의 유산기부로 기록됩니다. 그의 이름 Harvard는 재창립된 현대식 사립학교의 시초입니다.
1776년 영국에서 독립한 미국의 시민사회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1830년대 노예폐지운동이 사회 전체로 확산하며 운동자금을 모집하기 위한 최초의 현대적 모금(fundraising)이 시도되었습니다. 강연회, 도서판매, 회비징수, 후원금 요청 등 다양한 방법론이 개발된 시기는 이미 200년 전이었습니다. 1861년 발발한 미국 남북전쟁이 끝나며 북부의 산업이 전국적으로 퍼져나갈 때 도시는 빈부격차로 인한 사회문제로 골치를 앓게 됩니다. 그 시기 영국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미국은 인보관운동(settlement movement)을 받아들이며 사회구조 개혁이 추진되고, 자선조직협회(charity organization society, COS)를 받아들이며 자선활동이 촉진되는 두 개의 흐름으로 나타납니다.
1867년 은행가 Peabody가 설립한 Peabody Education Fund는 최초의 기업(인)재단입니다. 당시 뉴욕시는 공공병원인 뉴욕병원을 개선하기 위해 The New York Hospital Charity Ball(자선무도회)을 개최하여 오늘날 후원행사 및 자선행사의 모태가 되었습니다. 철강왕 Andrew Carnegie는 기록적인 자선행위(부의 복음, 1889)를 실천했고, Max Weber의 노동윤리 사상(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1905)은 미국의 시민사회 발달과 비영리조직의 번성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1913년 석유왕 Rockefeller는 그의 이름을 내건 재단을 만들고 3500만 불의 기부금으로 시카고대학을 설립했습니다. 같은 해 미국 클리브랜드에서는 공동모금운동(community chest movement)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20년도 되지 않아 미국의 전국캠페인으로 확산된 공동모금운동은 1873년 영국 리버풀에 비치되었던 자그마한 모금함(chest)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비영리조직’을 지칭할 때 흔히 NGO(Non-Governmental Organization)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NGO는 정부와 대비되는 측면을 강조할 때 사용하나 엄밀히 말해 국제사회에 등록된 조직에 해당하는 용어입니다. UNDGC(United Nations Department of Global Communications, UN홍보국) 등 복수의 국제기구에서는 ‘비영리 원칙, 국제적 활동, 투명한 의사결정’과 같은 일단의 조건을 전제하여 NGO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UN이 창설된 1945년 처음 사용된 NGO라는 용어(Thomas Davies)는 UN헌장(United Nations Charter) 71조에서 경제사회이사회에 협의자 지위를 수여받은 기관으로 정의할 수 있으며 현재 6천개 내외로 추산됩니다.
이곳에 해당하지 않는 넓은 의미의 ‘비영리조직’을 NPO(Non-Profit Organization)로 정의할 수 있을 것입니다. NPO는 시장(기업)에 대비되는 측면을 강조하여 탄생한 용어였습니다. 필란트로피의 마음으로 세상을 보는 비영리조직은 공통의 유익(public benefit)이라는 공익(共益)과 공공의 이익(public interest)이라는 공익(公益)을 성취하기 위해 존재하며 모두 공공선(common good, 公共善)을 지향합니다. 성경 로마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라(work together for good)’라는 구절은 선(good, 善)의 본질적 특성을 규정합니다. 선(善)을 혼자 추구할 때 독선(獨善, self-righteousness)으로 흐를 수 있으므로 선(good, 善)을 이루기 위해 합력으로 공공선(common good, 公共善)을 경주하라는 말씀입니다. ‘선’이라는 개념이 공공선으로 수렴될 때 온당한 뜻이 되듯이 ‘합력’이란 연대와 협력, 이해관계자의 참여와 거버넌스를 통한 의사결정 등 호혜성을 강조하는 시민사회의 기본적 운영원리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공익활동을 수행하는 조직의 무대는 시민사회(civil society)입니다. 시민사회를 특정한 경계선으로 구분하기에는 문화적 속성이 개입해 간단치 않습니다. 가시적인 경계선이 아닌 품이 넓은 관점으로 바라봐야 개선된 삶을 살고자 하는 보통사람들의 터전이 시민사회라는 개념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비영리경영(non-profit management) 역시 특정한 비영리조직만의 경영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사회적 경영, 공익적 비즈니스가 요구되는 모든 현장과 조직에 필요한 관점입니다. 경영학의 대가 Peter Drucker는 그의 저서 「Managing the Non-Profit Organization(1999, 한국 번역명: 비영리단체의 경영)」을 통해 비영리조직에 대한 경영을 집대성해 냈습니다. 그의 관심은 비영리 ‘조직’ 자체에 대한 경영이었지만 후대는 이를 ‘비영리경영(non-profit management)’으로 발전시켰습니다. ‘비영리경영’은 현재 영미권을 중심으로 주요 대학의 학위 및 비학위과정으로 다뤄지고 있음이 주지의 사실입니다. 특히 영국을 위시한 유럽사회는 비영리와 사회적경제(사회연대경제)를 결부시켜 통합적 접근을 시도함으로써 비영리경영의 의미를 공익경영과 사회적 경영으로 확장하고 있습니다.
최근 사회 분위기는 정부와 기업 모두 사회적 가치를 떠나 경영을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공익성과 공공성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비영리(non-profit)’라는 개념을 단순히 소유권이 있는가, 없는가의 기준으로 독해할 때 편협한 시각에 동참하게 됩니다. ‘비영리(non-profit)’라는 개념을 ‘비영리성(not-for-profit)’으로 이해한다면 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습니다. ‘비영리성(not-for-profit)’은 공공선을 지향하는 필란트로피의 요건입니다. 따라서 비영리조직이란 영리를 단념한 조직이 아니라 이윤창출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공익과 공공선을 표방하는 모든 조직과 기관을 포함합니다. 비영리경영은 비영리조직의 전유물이 더 이상 아닙니다. 비영리경영이란 공익과 공공선을 열망하는 모든 조직의 언어입니다.
경영을 뜻하는 manage라는 말은 본래 ‘말을 훈련하고 다루다’는 뜻에서 유래했습니다. 무엇이든 야생의 것을 다루는 일은 고도의 전문성과 경험이 요구되는 일이며 동시에 시간과 인내가 많이 소요되는 일입니다. 비영리경영은 경영의 본질적 성격에 가장 흡사한 환경 위에 놓여 있습니다. 신념 중심의 자발적 결사체를 다루는 일은 쉽게 복종되지 않는 야생성을 훈련한다는 의미와 같습니다. 이를 성공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기술과 올바른 관점이 절대적으로 요구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비영리경영을 본격적으로 다루는 곳이 희박합니다. 그러다 보니 운영전문성보다 회계투명성만 강조하는 목적전치가 일어나기도 합니다. 아마도 경영은 경영자만의 영역이라는 오래된 인식이 작용했음을 추측해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전체를 조망하고 맥락을 이해하는 힘보다 미시적 사안과 기술적 역량에 치중하는 현상은 경영이 경영자의 것이라는 낡은 유산에서 비롯된 결과입니다.
경영(management)은 목적한 바를 이루는 총체적인 역량과정입니다. 경영을 기업경영(corporation management 혹은 business administration)으로 국한해 공익현장에 이식하려 한다면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는 경우와 같습니다. 조직은 저마다의 설립 배경이 다르고 존재의 이유가 다르며 고유한 정체성도 다릅니다. 이곳에서 말하고자 하는 비영리경영은 현장에서 발을 딛고 사회적 가치와 공익을 실천하는 모든 조직에 어울리는 옷이 되기를 바라는 관점에서 기술되었습니다. 경영기법에 대한 지식이 이곳의 주된 테마가 아닌 이유입니다.
조직을 바라보는 관점, 조직을 이해하는 지혜, 조직과 함께 하려는 소망이 값진 것입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건강한 비영리경영> 책을 통해 확인하세요.
이재현, 건강한 비영리경영, 2024.7. 한국문화사
(이 책의 저작권은 한국문화사에 있습니다)
*홈페이지 방문하여 <건강한 비영리경영> 프로그램을 확인하고
저자 이재현 컨설턴트에 대해 더 알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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