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찌소 Sep 20. 2023

구찌가방을 선물 받은 엄마의 반응

루이비통을 데려왔어야



신혼여행 때, 하와이에서 나의 루이비통을 포기하고 사온 구찌와 펜디는 한국에 돌아온 후 친정엄마와 시어머니의 품에 안겨드렸다.


평소 명품가방을 좋아하시던 시어머니는 역시나 펜디 가방을 보시더니 만족해하셨고 그 즉시 모임에 들고나가기 시작하셨다.

구찌, 친정엄마가 인생 처음 접한 명품 브랜드. 엄마는 사위가 있을 때는 뭘 이런 걸 사 왔냐며 고마워하셨다. 하지만 진짜 마음은 그게 아니었다. 엄마는 나와 둘이 있을 때와 사위가 있었을 때와는 다른 반응을 하셨다.

“얼마 주고 샀냐?”
“왜?”
“그냥~”
“백만 원은 넘어~”
“아이고, 그 돈으로 차라리 다른 걸 사주지~”
“왜 또 그래? 선물한 사람 생각은 안 하고? 엄마 명품가방 하나도 없잖아~ 중요한 모임 있을 때 들고 다니면 되잖아~”
“엄마는 구찌인지 팔찌인지 그런 거 관심도 없다~ 차라리 에어컨이나 사주지 그랬냐”

그 시점 우리 친정집 에어컨은 상당히 낡아 있었다. 하지만 나의 루이비통을 포기하고 사온 구찌인데 엄마의 그 반응은 굉장히 서운했다.

“뭘 들고 다녀봐야 좋아지는 거지~ 그러니까 한번 들고 다녀봐~”
“백만 원이 넘는 걸 아까워서 어떻게 들고 다니냐? 가방이란 게 좀 편하게 들고 다녀야 좋은 거지~ ”

나는 더 이상 할 말을 잃었다. 받을 준비가 안된 사람에게는 명품가방이 짝퉁가방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고 있었다.

그렇게 아끼고 아껴서 자식들 교육 제대로 시키고 집이라도 자가로 가지고 계신 엄마의 평생 노력을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현재 100만 원짜리 구찌 가방을 못 들 정도로 가난한 상태는 아닌데 엄마도 이제는 좀 가꾸고 꾸미고 다녔으면 싶은 마음에 가슴이 아팠다.


요즘 꼭 돈이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람들만이 소장할 수 있는, 명품이란 게 그 정도로 대단한 것은 아닌 것 같은데, 환갑이 넘으신 엄마 정도면 이제 명품가방 하나쯤은 들고 다녀도 괜찮을 연세에도 왜 아직도 명품가방이 사치로라고만 느끼시는 걸까.


명품가방하고 에어컨은 용도 자체가 다르다. 어떻게 에어컨 하고 비교를 할 수 있는지.


엄마가 젊었던 시절, 자식들을 키우느라, 돈 버느라 자기 자신 꾸밀 돈이 없어 그저 흘러가버린 그때는 내가 너무 어려서 돈이 없었고 지금은 가방 하나 정도는 사드릴 수 있는데 비싼 걸 어떻게 편히 들고나 다니겠냐고 하시고.

우리 집과 도긴개긴 형편이 비슷한 시어머니 마인드, 명품 가방 따위는 그렇게 지나친 사치로 여기지 않는, 우리 엄마와는 비교될 수밖에 없는 그 태도가 더욱 나의 마음을 비참하게 했다.


왜 비슷한 형편에서 두 사람의 반응은 이렇게 다른 거지? 현재 양쪽 집안의 경제적 차이가 아주 심하게 차이가 나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보면 친정이 조금 더 우위에 있는 것 같은데 말이다.

거기다 시어머니는 평생 전업주부로 사셨고 친정엄마는 워킹맘으로 사셨는데, 그렇게 본인을 혹사시켜 놓고도 100만 원짜리 가방하나에도 벌벌 떠시는.

그런데 그런 모습을 보고 자라서 그런지, 나 역시도 나를 위한 루이비통을 하와이에서 환불하고 온 것부터가 잘못된 선택임은 분명했다. 나부터 생각할걸, 사다 달라고 말한 적도 없는 두 어머니들 선물 때문에 내 인생 처음 사는 명품 가방을 환불하고 남의 가방만 사가지고 오다니.

100만 원짜리 구찌가방에 벌벌 떠는 엄마나, 168만 원짜리 루이비통 가방을 환불하고 사 오지 못한 딸이나, 볼품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결국 그때 산 구찌가방은 현재 엄마의 집이 아닌 나의 집에 보관 중이다. 엄마는 정말로 구찌 가방을 좋아하지 않았고 들고 다니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 안쓰러운 구찌가방을 내 집으로 입양을 했다. 하지만 나 역시도 구찌가방을 들고 다닌 적이 열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장롱에 고이 모셔놓고만 있는 중이다.

그리고 주인 잘 만난 펜디는 현재 아주 많은 모임에 참석하고 있는 고귀한 아이로 쓰임을 받으며 잘 살고 있는 중이다.


하와이에서 구찌를 환불하고 루이비통을 데리고 왔어야 했다...



작가의 이전글 첫 명품가방은 루이비통일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