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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찌소 Sep 22. 2023

벤츠 타는 시아버지와 중고 아반떼

차 한 대쯤이야 별거 아닌 줄



예전부터 tv나 인터넷 기사를 보면 연예인들이 돈을 많이 벌어 부모님께 차를 사줬다는 이야기, 집을 사줬다는 등의 이야기를 쉽게 접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30이 다 돼서야 경제적인 독립을 하게 된 나는 20대까지는 차 한 대 사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일인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어쩌다 늦은 나이까지 공부를 하게 되어 부모님의 경제적 지원을 받으며 살았기 때문에 돈에 대한 인식이 조금 부족했던 것도 있다. 하지만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은 누구보다 컸고 나중에 꼭 돈을 벌게 되면 부모님께 집은 못 사드리더라도 차는 한 대 사드려야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처음 내돈내산한 차는 노란색 마티즈이다. 풀옵션으로 1300만 원 주고 직장생활 2년 차에 구입을 했다. 1년 바짝 모은 월급은 2000만 원 내외, 직장생활 3년 차에 결혼을 했으니 내가 모은 돈은 고스란히 결혼 자금으로 들어가게 되었고 나에게는 아빠에게 차를 사줄 돈은커녕 옷 한 벌 사드릴 여윳돈도 남지 않았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니 일을 할 수가 없어 3년을 쉬었다. 그 당시 남편의 월급은 270만 원,
외벌이였기 때문에 현재 한 달 생활비인 100보다 더 졸라매어야 했던 시절이었다. 1년에 1000만 원 정도 간신히 모았고 아이까지 태어났는데 이렇게 모아서 언제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가나 막막했다.

친정 부모님께 점점 무언가를 해드리겠다는 나의 꿈은 희미해져 갔다. 이제부터는 친정부모님이 우선이 아니라 내 자식의 앞 길이 우선순위가 되었다.
 모든 포커스는 자식에게로 맞춰졌다. 양가 부모님의 생신이나 명절 때 드리는 용돈 말고는 서프라이즈식의 깜짝 용돈을 드리는 것은 쉽지 않았다.

외식은 5천 원짜리 칼국수면 충분했다. 그렇게 허리띠를 졸라도 월 270만 원으로 3인 가족이 생활하는 것은 다 불어 터진 라면을 먹는 것 같은 퍽퍽함 그 자체였다.

그 무렵 친정아빠는 오래된 차를 처분하시고 가장 저렴한 아반떼를 중고로 장만하셨다. 마음 같으면 그랜저 이상의 신형 새 차를 안겨드리고 싶었지만 환갑이 넘으신 아빠가 저렴이 중고차를 사는 그 시점에 나는 주머니 사정이 빈곤했기 때문에 어떠한 발언도 할 수 없었다.

아마도 지금 아빠가 사는 이 차가 아빠 인생에 마지막 차가 될 것 같은데 나에게 돈이 넉넉했다면 이 타이밍에 새 차를 사드릴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만 있었다.

하필 그 타이밍에 칠순이 다 되어 가시는 시아버님께서는 인생 마지막 차라고 하시며 벤츠 e클래스를 구입하셨다. 중고가 아닌 새 차로 말이다.

비슷한 형편에 어디서 돈을 끌어다 사셨는지 출처는 모르지만 이 전의 차도 이미 좋은 급의 차였기 때문에 아버님의 새로운 차 벤츠는 크게 놀라울 일은 아니었다.
결혼하고 여러 가지 선택지에서 늘 고급을 선택하는 시댁의 문화에 나도 이제 어느 정도는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댁의 경제적인 문화 또한 존중한다.

친정부모님의 가난한 습관은 여러 사건을 통해 시댁과 계속해서 비교되고 있었고 그런 양가 부모님을 보면서 같은 위치, 같은 경제적 상황 속에 있을지라도 살아온 생활습관이 참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 번도 좋은 차, 좋은 가방, 좋은 고기를 접해본 적이 없는 친정 부모님의 선택에 현재 경제력이 없는 딸이 뭐라고 왈가왈부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지만 돈이 있다한들, 이렇게 평생 부모님의 몸에 베인 자린고비의 습관들이 쉽게 사라질 수 있을까?

어느 자리에서건 벤츠와 아반떼는 확실히 비교가 된다. 그것도 뉴 벤츠와 덜덜이 중고 아반떼는 말이다. 그렇다고 우리 부모님의 선택이 부끄럽지는 않다. 없어서 안 사시는 것이 아니라 한 푼이라도 아껴서 자식들에게 쓰려는 그 깊은 마음을 나는 알고 있다.

환갑이 넘으셨던 아빠는 이제 몇 년 후면 칠순이시다. 나는 아빠에게 70이 넘으면 운전은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판단이 흐려지셔서 혹시라도 있을 사고에 자식으로서는 걱정을 안 하려야 안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 운전을 하지 말고 대중교통을 권하고 있는 나는 아빠의 인생 마지막 차를 덜덜이 중고 아반떼로 기억되게 한 큰 죄를 지은 것 마냥 가슴이 아프다.
정작 엄마와 아빠는 아반떼도 기쁘게 잘 타고 다시시는데 말이다.

옛날엔 그렇게 쉽게 보였던, 부모님께 차를 사드리는 일이 나에게는 하늘의 별을 따다 드리는 수준의 상상도 못 할 일이 될 줄이야.

평범한 서민인 나에게는 이룰 수 없는 꿈이었다는 것을 그땐 알지 못했다.

많이 늙어버리신 엄마 아빠를 보며 돌아가시기 전에 한 번쯤은 꼭 새 차만큼이나 큰 무언가를 선물해드리고 싶은데, 과연 꿈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

사십이 다 된 딸은 가난한 부모님 걱정을 하고, 칠십이 다 되어가는 부모님은 아직도 자리잡지 못한 딸의 집 문제로, 얼른 우리 딸이 30평대 아파트를 사야 되는데... 사야 되는데 하고 졸이고 계시니 동상이몽이 따로 없다.

현재 주머니에 뽀얀 먼지밖에 없을지언정, 나는 아직 꿈을 버리지는 않겠다. 꿈꾸는 건 내 마음이니까. 꿈을 꾸는 것조차 돈을 주고 사야만 하는 건 아니니까.

그런데 왜 나는 굳이 돈으로 부모님께 효도를 하고 싶은 거지?
(이 이야기는 다음에 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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