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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ka aka 도깽이 엄마 Jun 24. 2021

DINK라며...

난 거짓말쟁이가 되었다

이렇게까지 딩크를 고집하던 내가 애기가 생긴 데에는 피임에 소홀했던 나의 책임도 있다.

결혼하고 난 후 혹시 모르니 산전 검사를 해보자는 남편의 권유에 산부인과를 방문해 보았다. 임신을 할건 아니지만 그래도 나의 난소나이가 나 역시 급 궁금해 졌다. 동네 산부인과를 찾아 36만원이라는 거금을 지불하고 산전 검사를 진행했다. 갈 때 마다 느끼지만 산부인과 진료는 늘 기분이 먼가 이상하다. 그리고 늘 여자 의사 선생님에게만 진료를 받다 남자 의사선생님에게 진료를 받으니 더 이상 했던 걸까? 아무튼 그렇게 진료를 마치고 남편과 나는 부대찌개 점심을 먹고 가을 캠핑을 떠났다.


며칠 후 결과가 나왔다는 문자에 다시 산부인과를 찾았다.

결과는 생각보다 참혹했다. 나의 난소나이는 측정 불가이며 자연임신 확률은 하위 10%로 안됐다. 난소나이가 측정불가일 만큼 안 좋다는 건 슬펐지만 자연임신의 확률이 매우 낮다는 것은 꼭 기분이 나쁘지 많은 않았다. 물론 임신을 하지 않더라도 결과가 좋았으면 우쭐했겠지만 그래도 행여라도 피임에 소홀해도 임신을 할 확률이 낮겠다는 것에 크게 안도하였다. 하지만 그 의사 선생님이 돌팔이였던 걸까 아니면 다른 환자의 결과와 바뀌었던 걸까 아니면 정말 신이 나에게 내리신 인생의 숙제 같은 것일까?


피임을 딱 2번 소홀했던 그때 난 임신이 되었고 정확히 36주 후 난 아들을 출산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지속적으로 흔들림 없이 딩크를 고집하던 나에게도 피임을 소홀하게 만든 계기가 있었고 남편의 그 계기를 기가 막히게 포착해 나를 설득했다.




그날은 결혼 전 평범한 주말이었다. 정확히 어떤 계절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으나 그 장소와 그때의 그 모습은 아직도 정확히 기억난다. 토요일 오후 남편과 나는 김포에 있는 아울렛을 갔었다. 집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 있어 심심하면 자주 방문하는 곳이다. 쇼핑을 마치고 남편과 나는 1층 한식 뷔페 식당에 밥 먹으러 갔었다. 세 개의 테이블이 한 줄로 놓인 곳 정 가운데에 남편과 내가 앉았다. 한참을 먹고 있는데 왼쪽 옆 테이블에 중년 부부가 눈에 들어왔다. 50대 초 중반으로 보이는 이들 커플은 내가 그리도 고집하던 딩크 부부였다. 디저트를 먹고 있던 그들은 대화 없이 각자의 음식에 충실했으며 맛있는데 한입 먹어 보라는 권유 외에는 일절 대화가 오가지 않았다. 그 커플을 보고 있자니 마치 바람 빠진 인형 같아 보이기도 헸고 인생이 별로 재미 없어 보였다. 그렇게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데 오른쪽 테이블에서 아기가 울기 시작했다. 3살과 1살정도 되어 보이는 남매가 엄마, 아빠 그리고 조부모님과 함께 식사를 하러 왔다. 아들은 할머니가 스마트폰에 의존해 간신히 밥을 먹이고 있었고 1살짜리 딸은 엄마가 힘겹게 먹이다 구토를 하는 바람에 엄마 아빠가 허리를 구부리고 무릎을 꿇어 식당 바닥을 닦고 있었다. 그 와중에 속이 불편했던 딸은 계속 울고 있었고 아이 아빠는 엄마를 도와 바닥을 닦는 동시에 위를 올려다 보며 딸을 달래고 있었다. 이 모습을 보자니 세상 이런 멘붕도 없고 나까지도 지쳐서 밥맛이 떨어져 가는 듯 했다. 그 가족을 보자니 나도 모르게 중년 딩크 커플에게 다시 한번 눈이 갔다. 하지만 그 커플을 보고 있자니 내가 다 기운이 빠지는 듯했다. 그래서 나는 다시금 멘붕의 육아 현장으로 시선이 갔고 왼쪽 오른쪽 나의 시선이 바쁘던 어느 중간 지점에서 난 눈을 감아 버렸다. 나도 모르게 굳건하던 나의 신념이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고 그 모습을 남편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노력했으나 결국 들켜 버리고 말았다.


그리하여 남편은 결혼 후 나에게 산전 검사를 권했고 결과를 통보받고 에라 모르겠다 이러한 악 조건 속에서 생기는 아이면 진짜 태어나고자 생기는 거겠지 하는 마음으로 딱 2번쯤 피임에 소홀했는데 딱 그 2번째 나의 인생을 뒤 바꾸어 놓을 생명체가 내 자궁에 자리잡았다.


멘붕이란 줄임말로는 표현 할 수 없는 세상 그 어떠한 일 보다도 제일 큰 멘탈붕괴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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