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모들이 사육당하는 천국
출산 선배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이 있었다.
“산후 조리원이 천국이야. 조리원에 있을 때 많이 쉬고 잠도 많이 자두고 마사지도 열심히 받아! 추가 비용을 내고라도 꼭 받아! 그래야지 임신기간 중 찐 살이 빠지지 조리원에서 퇴소 하면 그 나머지 살 1년이 지나도 안 빠진다!”
실제로 임신기간 중 15kg 가까이 찌고 조리원에서 붓기와 살을 많이 빼고도 남은 4kg를 빼지 못한 채 나온 선배의 말이었다. 1년 동안 나머지 4kg를 빼보려 부단히 노력했지만 육아와 병행 한다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애초부터 나는 노산이라는 핑계로 산후 조리원에 3주 정도 있을 예정이었다. 임신 12주 차, 안정기에 들어서면서부터 조리원 투어를 다녔다. 나는 남편에게 요목조목 원하는 조건을 나열했다. 당시 코로나가 한창일 때라 조리원은 꼭 단독 건물이었으면 좋겠다 했고, 남편도 1주일 정도 같이 있을 예정이니 방이 좁은 것도 싫다 했다. 이왕이면 거실이랑 침실이랑 분리 되어 있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신생아 캐어 역시 2.5 혹은 많아야 3:1 이었으면 좋겠고 신생아실에는 간호 조무사 선생님들 보다는 전직 간호사 선생님들이 주를 이루는 곳이었음 좋겠다고 했다. 이 모든 것은 그냥 한마디로 비싸고 유명하고 좋은 산후 조리원을 가고 싶은 거였다. 솔직히 말해서 40 넘어서 출산하는데 좁고 상가 건물 단층 혹은 2개의 층을 나누어 쓰거나 1층에 음식점이 있는 그런 산후 조리원은 가고 싶지 않았다. 여러 사람이 들락거리는 건물은 코로나 감염의 위험도 컸지만 그것보다 여러 비즈니스들이 함께 있는 건물은 왠지 산후 조리만을 위한 아늑함이 없어 보였다.
그리하여 나는 3곳을 후보에 올려놓았다. 기호 1번은 유명 여배우가 다녀간 후 갑자기 뜨기 시작한 산후 조리원이다. 하지만 거기는 코로나로 상담 방문이 불가해 패스. 아무리 코로나 시대라지만 룸 투어는 안되어도 방문상담은 하게 해주던데 여기는 너무 콧대 높게 굴어서 가격만 상담 받고 리스트에서 아웃! 후번 2번은 럭셔리 산후 조리원의 원조였으나 지금은 1번 조리원에 슬슬 밀리는 중. 아무래도 원조다 보니 시설도 더 오래 되어 상대적으로 낙후 되어 보일 수 있다. 이 조리원이 분점을 낸 곳이 독립하여 이름을 바꾼 곳이 1번 산후 조리원이다. 하지만 뭔가 원조가 주는 노하우도 무시 못할 것 같기도 하고 상대적 낙후이지 그 정도 시설이면 호텔 못지 않은 시설이다. 무엇보다 상담을 갔을 때 원장님께서 아주 친절하게 상담해 주셨고 원장 선생님 자체가 전직 간호사 선생님으로 여러 노하우를 가지고 계신 듯 했다. 발리의 리조트를 연상케 하는 단독건물의 이 조리원은 골목 안쪽 주택가들 사이에 자리하여 조용하고 아늑했다. 기호 3번 산후 조리원 역시 여러 셀럽들이 다녀간 곳으로 산후 마사지로 유명하다 했다. 여기 역시 단독 건물이고 1번이나 2번 조리원과 달리 산부인과, 소아과 그리고 산후 조리원이 한 건물이 다 위치하여 여러모로 편리하고 좋아 보였다. 하지만 그 중요하다는 가슴 마사지가 없어서 아쉽지만 패스 했다. 또 한 위치 적으로도 너무 도로 한복판에 위치하여 아늑함도 없었고 개인 발코니가 있다는 최상의 컨디션을 가진 룸도 매연 속 발코니일거 같아 그 만큼의 가치를 못할 것 같았다.
그리하여 2020년 11월 26일 월요일 오후 12시30분경, 작은아가와 함께 기호 2번 산후 조리원에 입성하였다. 입성하자마자 아이는 원장님이 잽싸게 받아 신생아 실로 넘기셨고 방에 들어가자 여러 가지 육아 용품 및 산모 용품들이 웰컴 키프트로 놓여 있었다. 신생아실 실장님께서 오셔서 아이 태명부터 아이에 관련된 몇 가지를 확인하시고 나의 체온과 혈압도 측정하셨다. 임신기간과 출산 직후에도 멀쩡하던 혈압이 퇴원 당일 날 새벽부터 갑자기 오르기 시작했다. 실장님이 가시고 나서 남편과 나는 제공된 식사를 먹었다. 병원에서 먹던 맛 없던 밥에 비하면 정말이지 꿀맛 같은 식사였다. 내가 좋아하는 고기 반찬에 정갈하게 끓여진 미역국 그리고 각종 반찬에 달달한 과일 후식까지 정말이지 완벽한 한끼였다.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이렇게 매끼를 먹고 거기에 간식도 3번 도합 6끼니가 제공 된다는 것을. 맛있는 것과는 별개로 이렇게 정갈하고 깔끔한 식단으로만 3끼를 먹으니 점점 물리기도 하고 또 하루 6끼를 먹는 샘이니 소화도 엄청 더뎌서 배도 별로 고프지 않았다. 그리고 생각보다 너무나도 피곤한 조리원 생활에 입맛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간식으로 나오는 달달한 홍시나 주스 등이 유일하게 나의 입맛을 살아나게 해 주었다. 조리원에 있는 기간 동안 가장 먹고 싶었던 음식은 맵고 자극적인 김치찌개였다.
식사 후 2주동안 받을 마사지들을 예약하고 왔다. 가슴마사지 4번 그리고 그 외에 스파에서 받는 산후 마사지 대략 5~6번 정도였던 걸로 기억한다. 예약하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푹 자고 일어나 마사지나 받고 아들 모유 수유 한번 하고 나머지는 유축 된 걸로 알아서 먹여 주시고 그럼 난 또 낮잠이나 자고 오후에는 조리원에서 제공하는 클래스나 좀 듣다 모자동실 시간에 남편이랑 아이랑 같이 1시간 30분 정도 놀다 보내고 난 후 남편이랑 T.V. 시청하다 꿀잠에 들면 되겠구나 하고 말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헛된 꿈이었다. 조리원이 천국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아 입소 둘째 날부터 나는 휴식의 휴 자도 경험 할 수 없었다. 이른 아침부터 2시간반에서 3시간에 한번씩 수유콜이 오면 아이에게 젖을 물리러 갔고 수유가 끝나 잠시 쉴까 하면 제공되는 식사를 해야 하고 식사 후 쉴까 하면 예약 해 놓은 마사지들을 받으러 가야 했다. 마사지를 받으면서 좀 잘까 하면 사람과의 대화가 그리워 자꾸 대화를 하게 됐다. 마사지 후 30분정도 쉬었나? 다시 밥이 와서 끼니를 먹고 나면 또 수유콜이 와서 젖 먹이러 가고 그러다 보면 모자동실 시간이라 아이랑 1시간 반 정도 눈 맞추고 놀고 그렇게 하루가 지나 마지막 수유콜이 끝나면 대부분 10시에서 11시 사이였다. 그렇게 잠자리에 들면 오전 7시에서 8시 사이 어김없이 “산모님 아가 밥 줄 시간인데 지금 수유 가능하세요?” 라는 전화가 온다. 그럼 난 잠이 덜 깬 목소리로 “네 갈게요” 라며 일어나 주섬주섬 수유 쿠션을 챙긴다. 그렇게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2주의 시간이 흘렀다.
내가 두 번째 가슴 마사지 갔을 때였던 걸로 기억한다. 마사지 실장님이 나는 모유가 잘 나오지 않는 소녀의 가슴을 가졌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남들보다 더 여러 번 가슴에 자극을 줘야 젖이 나올 거라 했다. 최소한 8번의 직접 하는 모유수유 (직수) 와 4번 정도의 유축 총 12 번 정도 자극을 주어야 젖이 원활하게 나올 거라 했다. 유축도 오른쪽 왼쪽 각 3분 마사지 후 5분씩 유축 하는 것을 한 세트로 적어도 3~4 세트를 하라고 했다. 이게 무슨 말인지 그때는 알 수가 없었지만 1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다.
“산모님 아가 밥 먹을 시간인데 수유 하시겠습니까?”
“네 갈게요.”
“올 때 수유 쿠션만 챙겨 오세요.”
방에 있는 수유 쿠션을 챙겨 들고 수유실로 들어섰다. 작디 작은 수유실에는 발을 올려 놓을 수 있는 작은 발판과 손 소독제 그리고 물에 적셔 놓은 솜 패드들이 있었다. 그들의 사용법은 이러했다. 일단 수유실에 들어가 손 소독제로 손을 한번 소독한다. 다음으로는 윗도리를 느슨하게 열고 먼저 수유 할 쪽 가슴을 물에 적셔놓은 솜 패드로 닦는다. 아이가 물 젖이기 때문에 특히 유두 부분을 꼼꼼히 닦아 준다. 그리고 가져온 수유쿠션을 허리에 두르고 양발을 발판 위에 올려 쿠션의 높이를 높게 해주고 허리를 피고 앉는다. 이 모든 과정은 아이가 편하게 젖을 먹을 수 있도록 하는 준비 과정이다. 아이는 세상 편안한 높이와 각도에서 엄마 젖을 먹고 엄마는 세상 불편한 자세로 아이를 위해 참아 내야 한다. 참을성 부족하고 불편함이 딱 질색인 나는 엄마니까 참아 내야지가 아닌 남들이 다 그렇게 하니 나도 참아 내는 척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수유실 가기 전부터 한숨을 쉬고 들어갔었다. 그 모든 준 비 과정이 끝나면 선생님께서 아기를 데려다 주신다. 아이를 수유쿠션에 앉히고 나면 수건이나 기저귀 등을 이용하여 아이가 젖을 먹기 편한 자세로 높이를 맞춰 주신다. 그럼 나는 세상 불편하게 허리를 쭉 피고 한 손으로는 아이를 감싸며 다른 한 손으로는 내 젖을 아이가 먹기 쉽게 잡아 주면서 중간중간 “아이고 잘 먹는다.” “아이고 착하네 우리 아들!” 같은 멘트를 날려주며 생후 2주도 안된 아이와 교감해야 한다.
아이에게 수유를 할 때는 편하게 앉고 먹이는 요람 자세와 옆으로 끼고 먹이는 풋볼 자세가 있다. 우리가 흔히 미디어를 통해서 접하는 모유 수유 자세는 요람 자세이다. 세상 평온해 보이고 엄마는 자비로운 모습으로 아이를 쳐다보고 아이는 엄마의 젖을 먹으며 엄마와 눈을 맞추고……는 드라마와 영화가 그려놓은 모유 수유의 아름다운 이미지일 뿐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그림인데 여기에다가 아이에게 모유가 분유보다 좋다고 하니 그 어떤 엄마가 모유수유를 해보겠다고, 난 꼭 완모 (완전 모유수유 – 분유를 섞어 먹이지 않고 순전히 모유로만 수유를 함) 하겠다고 안 하겠는가? 하지만 조리원에서 현실을 경험 하고도 과연 그럴까? 대부분의 엄마들은 그래도 어떻게든 모유를 많이 먹이려고 한다. 특히 초유는 아이에게 좋은 영양분이 다 있다 하여 더더욱 먹이고 싶어 한다. 나도 초유만큼은 아이에게 먹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조리원에서 2주 있었기에 강제적으로 아이에게 초유를 제공 할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이 부분을 강제적으로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100% 내 의지대로 그래도 초유는 아이한테 좋은 거니 꼭 먹어야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난 초유를 먹던 아니면 그냥 분유를 먹던 아무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엄마이기 때문에 아무 상관이 없으면 안됐다. 난 엄마이기 때문에 무조건 초유를 먹여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어야 했다.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생각하는 엄마라는 혹은 모성애라는 프레임은 그러했다.
아이가 내 젖을 물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이는 잘 먹지 못했다. 일단 나의 유두가 너무 짧았다. 그래서 선생님들이 유두보호기를 내 가슴에 씌워주셨다. 유두보호기는 실리콘 재질로 모양은 우유병 젖꼭지 모양처럼 생겨 나처럼 유두가 짧거나 아이가 엄마의 유두를 낯설어 할 때 모유를 잘 먹이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다. 나는 이 유두보호기가 없으면 모유를 잘 먹일 수 없었다. 그러나 그거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젖이 많이 생성 되지 않았다는 거다. 조리원에서 제공하는 4번의 가슴 마사지와 추가로 돈을 지불하고 2회 정도 더 마사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젖은 많이 나오지 않았다. 처음에는 굳이 2회를 더 추가 할 생각이 없었으나 모성애라는 프레임 안에서 나는 왠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 할 것만 같았다.
수유가 시작되고 유두보호기를 붙인 채 아이가 젖을 먹기 시작하면 선생님들이 사정없이 나의 젖을 주무르기 시작하신다. 젖이 잘 나오라고 이리 주무르고 저리 주무르고 이 사람이 만졌다 저 사람이 만졌다 심지어 강도도 쌔졌다. 그렇게 한번 수유를 하고 나면 나의 가슴은 얼얼하고 아팠다. 첫날은 무척 당황했지만 회가 거듭할수록 그러려니 하게 되었지만 낯선 중년의 여성들이 나의 젖가슴을 쉴새 없이 만져 대니 성추행이지만 성추행이라고 말할 수 없는, 달리 말하면 성스러운 의식을 위한 합법적인 성추행 같아 좋게 말하면 기분이 야시꾸리한 것이 솔직히 말하면 그지 같았다. 이러한 모유수유를 대략 2시간 반에서 3시간에 한번씩 불려가서 해야 했고 끝나면 바로 유축도 해야 했다. 이러한 노력에도 젖이 많이 나오지 않아 마지막에는 모유생성유도기까지 달면서 수유를 했다. 이 유도기는 꼭 양주를 담는 힙플라스크 모양의 플라스틱 통인데 아주 가느다란 고무 호스로 연결되어 있다. 그 통 안에 분유를 넣고 연결된 호스를 내 유두에 밀착시킨 후 유두보호기를 얹어 아이가 먹게 하는 것이다. 그럼 실제로 아이는 분유를 먹으면서도 마치 엄마의 모유를 먹는 듯한 착각을 주어 엄마의 젖은 끊임없이 자극이 되고 아이 역시 젖 빠는 연습을 함과 동시에 배불리 먹을 수 있다. 그렇게 자극을 줌으로서 엄마의 젖양이 늘어 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 난 그 효과도 많이 보지 못했다. 오죽하면 신생아실 선생님들께서도 모유생성유도기는 한 두 번 정도 쓰는데 산모님은 벌써 일주일 가까이 쓴다고 나가면 모유수유 혼자 할 수 있겠냐며, 엄청 고생 좀 하겠다고 하셨다.
순간 나는 퇴소 후에도 모유수유를 해야 하는 여자가 되어 버렸다. 내가 모유수유를 하고 싶을 지 않을지 물어 보지도 않았으면서 무조건 내가 모유수유를 할거라고 아니 해야 한다고 규정 짓는 것 같았다. 물론 이렇게 되기까지 내게 아무 책임이 없는 건 아니다. 왜냐하면 내 스스로가 모유수유에 열정적인 엄마처럼 모유 양을 늘리기 위해 권유하는 시도를 단 한 번도 거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새벽 수유 콜은 받지 않겠다고 했다. 그것마저 하면 내 몸이 너무 축날 것 같았다. 그러니 당연히 신생아실 선생님들은 내가 모유수유를 계속 할거라고 생각하시는 게 맞다.
새벽 수유콜은 받지 않았으니 많아야 하루 4번만 수유를 했지만 직후 유축은 매번 했으니 실장님이 말했던 하루12번 중 8번은 젖에 자극을 준 샘이다. 이 정도면 어느 정도 숙제를 한 것 같아 내 스스로에게 뿌듯했으나 조리원에서 모든 산모가 다 그렇게 살고 있었기에 이게 특별히 칭찬 받을 일은 아니었다. 그래도 내 기준에서 나란 여자가 휴식이라는 중요한 것을 포기하고 더욱이나 남들 시선 따위에는 절대 굴하지 않는 내가 엄마 그리고 모성애라는 프레임을 의식했다는 것에 칭찬을 해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