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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ka aka 도깽이 엄마 Jun 25. 2021

현실육아와 모성애 사이 I

내 아이가 아닌 아기라고 칭하는 위탁모

산후 조리원 퇴소 후 집으로 온 첫날 밤 어머님께서 내가 피곤할 테니 아들을 데리고 주무신다고 하셨다. 

그 다음 날도 그리고 그 다음 날 까지 3일 연속 어머님은 아기와 함께 주무셨다. 그때는 그게 그렇게 고마운 일인지 알지 못했다. 그냥 밤에 자다 깨면 기저기 한번 갈아 주고 우유 주면 금방 먹고 잘 줄 알았다. 길어야 30분 정도면 충분 할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1주일 후 그것은 나의 아주 크나 큰 착각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주변에서 익히 보고 들었던 현실 육아였지만 막상 내가 닥쳐서 해 보니 상상 이상의 고통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보통 신생아들은 하루 24시간 중 20 시간 정도를 잔다. 신생아의 일과는 먹고 자고 싸고 다시 먹고 자고 싸고 때로는 먹고 싸고 자고 혹은 자고 싸고 먹고의 패턴을 반복해서 행한다. 아기가 깨어 있는 시간은 기저기 갈아주고 분유나 모유를 먹을 때 그리고 운이 좋으면 트림 할 때까지 깨어 있다 다시 토닥토닥 해주면 깊은 잠에 빠져든다. 운이 좋으면 먹으면서 잠이 드는데 그러면 트림을 못 시키게 되는 경우가 많다. 


낮에 이러한 패턴으로 잘 자기에 밤에도 당연히 이렇게 잘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넷째 날 어머님께 내가 데리고 자 보겠노라 했다. 어머님께서 분명 전날 새벽 아기가 깨서 잠을 잘 못 주무셨다고 경고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데리고 자겠노라 했다. 어머님께서 못 주무셨으니 오늘은 바통 터치를 하는 것이 맞다 생각하기도 했지만 그냥 밤에 내가 한번 데리고 자 보고 싶었다. 그리고 계속 어머님께서 데리고 주무실 수 없으니 나도 서서히 연습이 필요할 것 같았다. 


그렇게 나에게 온 첫날 아기는 생각 보다 잘 잤다. 새벽 3시경쯤 한번 깨어 기저기 갈아주고 분유 한번 주니 먹고 또 잘 자기 시작했다. 그래서 중간에 달게 자다 한번 깨는 것이 성가실 뿐 할만하다고 생각하고 그 다음날도 내가 데리고 자기로 했다.




하지만 그 때부터 나의 헬게이트는 열리기 시작했다. 그날도 전날과 다름 없이 비슷한 시간에 깨어 기저기 갈아 주고 분유를 주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아기가 더 또렷한 눈동자로 나를 바라 보는 것이었다. 분유를 다 먹이고 트림도 시켰건만 아이는 잘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 계속 토닥거려주니 눈을 스르르 감기 시작했다. “아 이제 나도 잘 수 있겠구나” 하는 마음에 아기를 내려 놓고 토닥토닥 해주는데 갑자기 울기 시작한다. 다시 아기를 안고 토닥토닥 이며 방을 왔다 갔다 한다. 그리곤 아기가 다시 눈을 감았을 때 내려 놓으려 하니 또 울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엄마들이 이야기하는 등센스가 발동한 거 같다. 


등센스란 육아 용어 중 하나로 아기에게 있다는 제6의 감각으로 안고 있던 아기를 내려 놓으면 등이 바닥에 닿으면서 울거나 잠에서 깬다는 말이다. 새벽 3시경부터 5시까지 아이를 안고 달래다 눕혔다 등센스가 발동하면 다시 안았다 다시 눕히다를 반복했다. 새벽 5시경 아이는 드디어 지쳐 잠들었고 나 역시 지쳐 스탠드도 못 끄고 잠들어 버렸다. 매일 왕복 100km를 출근하는 남편은 5시경 일어나서 출근 준비를 한다. 그래서 주중 밤은 오로지 나의 몫이다. 육아는 도와주는 것이 아니고 같이 하는 거라지만 그래도 새벽같이 나가 왕복 100km를 운전해야 하는 남편에게 까지 이 고통을 나누자고 하고 싶지는 않았다. 대신 금요일 토요일 밤에는 남편이 데리고 자기로 했다. 이 고통을 1주일 겪고 나니 밤에 아기를 책임져 주는 산후조리원이 정말 천국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그걸 알지 못했다.




그렇게 5시경 잠든 아기는 8시에서 9시 사이에 깼다. 나는 한참을 달게 자고 있는지라 그때 깨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비몽사몽에 기저기를 갈아주고 분유를 먹이면서 나도 모르게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아기 역시 먹으면서 잠들기 시작했다. 어떤 날은 내 잠이 아이의 울음소리를 이겨 버리기도 했다. 아기가 우는데도 나는 잠에 취해 그 소리를 못 들었고 그렇게 20분 가량 울던 아기는 다음날 목이 쉬었다. 그렇게 처음 한달 가까이는 아기가 낮에 자고 밤에 보챘다. 그래서 나는 단순히 아기의 밤낮이 바뀌었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낮에도 보채기 시작했다. 나는 알게 되었다 그 등센스와 보챔이 결국엔 잠투정이었다는 것을. 


잠투정은 세상 제일 무서운 것이었다. 잠투정이 시작되면 기본적으로 애를 안고 왔다 갔다 온 집안을 걸어 다닌다. 그러다 운이 좋으면 소파에 앉아서 토닥토닥 해주면 울지 않고 가만히 있다 잠이 든다. 로또 1등을 맞은 날은 침대 헤드에 몸을 기대 90도 각도로 앉아 애를 토닥거리다 재우는 거다. 이땐 나도 기대어 같이 잘 수 있기에 로또 1등을 맞은 샘이다. 반대로 최악인 날에는 안고 온 집안을 돌아다녀도 무엇이 불편한지 계속 찡찡거리며 울고 불고 난리를 피우는 것이다. 나는 공동육아를 위해 잠시 시부모님 집에 살고 있기에 온 집안은 안되고 작디 작은 방안을 계속 돌고 또 돌아다녔다. 그렇게 몇 시간을 안고 재워보려 했으나 애는 자지 않았다. 기저기를 간지 얼마 안되었지만 응가를 하였기에 또 기저기를 갈아 주었고 그래도 우는 아기를 조금 더 달래다 보니 어느덧 배고플 시간이 또 돌아와서 분유를 먹였고 그럼 졸려서 하품을 하면서도 트림을 안 해서 속이 불편한지 아님 배앓이인지 아기는 끊임 없이 울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3시반에서 4시경 아버님께서 아이를 데리러 오셨다. 며느리 쉬라고 내가 달래 보겠노라 데려가시지만 결국 30분도 안되어 아기는 다시 어머님 손에 맡겨졌다. 말씀은 며느리 쉬라고 하셨지만 아마도 아기의 울음 소리에 모두가 잠을 못 자는 밤이 되었고 나 보다는 능숙하신 어머님께서 달래시는 것이 모두가 5분이라도 더 빨리 잘 수 있다 생각하시지 않았을까? 




아버님이 아기를 데리러 오신 첫 새벽, 나는 괜찮다고 제가 보겠다고 말하지 않았다. 내가 너무 힘들었기에 어떻게든 그냥 이 아기가 내 시야에서 얼른 사라져 줬으면 했다. 이러한 밤들이 지속되던 어느 날 밤, 아기 울음소리에 너무나도 지치고 힘들었던 나는 옆방에서 숙면을 취하던 남편에게 아기를 던져 주었다. 새벽 4시경이었다. 나 너무 졸리다고, 나도 자고 싶다고, 제발 이 아기를 어떻게 해보라며 엉엉 울었다. 당황한 남편은 알았다며 자라고 했다. 그리고 다음날 남편은 출근길에 졸음운전을 했다 하여 남편의 주중 밤근무는 그 한번으로 끝나 버렸다.


100일 이전의 아기의 모습이 제일로 아가아가 하니 귀엽고 물론 밤에 잠을 못 자게 해서 힘들지만 본격적으로 뒤집고, 기어 다니고, 걸어 다니면 지금이 그리울 거라 말했다. 뱃속에 있을 때도 그때가 제일로 좋은 거라고 말해주던 사람들…… 하지만 난 뱃속에 있을 때가 더 좋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때는 그때의 고충이 또 있었고 나중과 지금을 비교했을 때나 지금이 더 나은 거지 애가 있을 때와 없을 때를 비교 하자면 지금은 하나도 나은 것이 아니다. 적어도 나의 비유법에서는 그렇다. 현재에 만족하기 위해 더 악조건의 상황을 생각하며 지금이 편안한 거라 위안 삼는 것뿐이 안 된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아마 그래서 나온 비유법인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 상황이 더 좋은 상황이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아기가 이유 없이 울고 땡강을 부리면 나도 모르게 신경실적인 톤으로 바뀌고 도대체 무엇이 불편해서 우냐고 짜증도 많이 냈다.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T.V.에 나오는 육아 박사님한테 익히 들어 알고 있지만 난 신이 아닌 인간이었다. 내가 잠을 못 자 힘들어 죽겠는데 아기에게 다정한 말투로 “우리 아들 무엇이 불편해요?” “엄마가 초보라 잘 모르겠는데 기저기 일까요? 아님 또 벌써 배고파요? 아니면 엄마가 이렇게 안아 볼까요?” 식의 말투는 절대 나올 수 없었다. 현실 육아에 나는 점점 지쳐갔고 내가 생각보다 아니면 처음 만큼 아기를 그닥 예뻐하지 않는다는 것을 어머님 아버님도 느끼신 것 같았다. 


어머님은 나에게 “엄마는 원래 그런 거야” 라며 이 상황들을 이해 시키려고 하셨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난 아기가 더 안 좋아졌다. 그리고 어머님이 아기를 데리고 주무시거나 아버님이 아기를 안고 놀아 주시는 시간이 늘어 날수록 난 그저 이 아기를 잠시 위탁해서 키우는 거였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현실 육아 이전에는 내 아이라는 표현이 더 많이 쓰였다면 이번 글에서는 아이 대신 아기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내 기준에서 아이라는 단어는 먼가 내 아이, 내 분신 이런 느낌이라면 아기라는 단어는 세상 모든 아기들을 칭하는 좀 더 거리감 있는 느낌이다. 나는 그만큼 이 아기라는 생명체와 적당한 거리를 두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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