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이후 골프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내 주위에서도 이미 골프를 하고 있거나 시작한 분들이 꽤 많다. 모임에 나가면 어김없이 한 명 이상은 주말이나 평일 골프를 다녀왔는데 너무 좋았다, 어디에 가서 하니 가격도 저렴하고 아침에는 브런치까지 제공되어 여왕처럼 푹 쉬고 왔다, 주말에는 외국에 골프를 치러 간다는 등 골프 예찬론을 펼쳐서 한참을 들어야 한다.
2021년 한국레저산업연구소가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한국의 골프인구는 564만 명으로 일본의 560만 명을 추월했고, 전체 인구 중에서 골프 참가율을 보면, 한국이 일본보다 2배 많다고 한다. 한국은 전체 국민의 10명 중 한 명이 골프를 하고 있다고 조사했는데, 그로부터 2년이 흘렀으니 지금은 10명 중 2~3명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골프에 푹 빠진 사람들은 골프 밖에 보이지 않는 듯하다. 한 지인은 작년부터 유치원에서 아이들 가르치는 일을 시작했는데, 그 이유가 골프 치는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서라면서 이렇게 좋은데 도대체 왜 안치냐, 같이 골프를 하자고 하셨다. 웃으면서 "저는 공이 무서워서 골프 못 쳐요." 하며 정중히 사양했다.
얼마 전, 한 케이블 TV프로그램에서 '본업이 아닌 다른 일' 을 하면서 살고 계신 연예인 분들이 나오셔서 다시 성공의 길로 들어서기까지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토로하고 있었다. 그 중의 한 패널이, 재기하기까지의 과정을 말한 후, "우리 딸이 이제 커서 첫 월급을 받아 선물로 골프연습장 정기권을 끊어줬다. 엄마는 골프를 하며 살 때가 제일 좋아 보였다더라." 면서 울먹였다. 엄마를 위해 첫 월급을 받아 골프 연습권을 끊어준 딸의 그 예쁜 마음에 뭉클하면서 한편 좋아하던 골프를 못하면 되면 저렇게 힘든 건가, 그토록 중독성이 강한 스포츠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남들은 취미로 즐기는 골프를 할 수 없을 때 드는 그 비참함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었다.
과거에 비해 부, 식량, 과학 지식, 소비 물자, 신체적 안전, 기대수명, 경제적 증거 등이 증가했다... 실제적인 궁핍은 급격하게 줄어들었지만 역설적이게도 궁핍함과 궁핍에 대한 공포는 사라지지 않았고 외려 늘어나기까지 했다. 중세 유럽에서 변덕스러운 땅을 경작하던 조상은 도저히 상상도 하지 못할 부와 가능성의 축복을 받은 사람들이 놀랍게도 자신이 모자란 존재이고 자신의 소유도 충분치 못하다는 느낌에 시달리게 되었다
알랭드 보통 <불안> 중
알랭드 보통은 그의 저서에서 어떤 것이 충분하다고 판단하는 심리를 살펴보면, 그 박탈감도 그렇게 이상할 것은 없다고 보았다. 그것은 준거집단(準據集團), 즉 우리와 같다고 여기는 사람들의 조건과 우리의 조건을 비교하여 결정하게 되는데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평가할 수가 없고 오직 우리가 함께 자라고, 함께 일하고, 친구로 사귀고, 공적인 영역에서 동일시하는 사람들만큼 가졌을 때 우리는 운이 좋다고 여기게 된다고 한다.
설사 웃풍이 심하고 비위생적인 오두막집에 살면서 크고 따뜻한 성에 사는 귀족의 지배에 시 다린다 해도, 우리와 동등한 사람들이 우리와 똑같이 사는 것을 본다면 우리의 조건은 정상이라고 생각하지만, 쾌적한 집에 살며 편안한 일자리로 출퇴근한다 해도 경솔하게 동창회에 나갔다가 옛 친구들이 아주 매력적인 일에서 나오는 수입으로 우리 집 보다 더 큰 집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왜 이리 불행하냐는 생각에 시달려 정신을 못 가누기 십상일 것이다....
준거집단과의 비교를 통해 갑자기 자기 불안에 빠지고 불만족과 질투심을 느끼게 된다는 알랭 드 보통의 주장처럼 우리는 마크 저커버그나 앨런 머스크의 부를 부러워하지는 않는다. 동네 친한 언니나 아는 지인들의 말을 들으며 나는 왜 저렇게 살지 못하지 한탄하게 되고, 그들처럼 명품을 사고 싶어 하거나 별로 관심이 없던 골프를 치고 싶어 한다. 경제적 여건이 안 되는 나의 현 상황을 비교하면서, 비관하고 괴로워하게 되는 것이다.
솔직히 골프를 시작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비용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골프장 그린피는 일본보다 3배 이상 비싸다고 한다. 나는 골프를 해본 적이 없어서 정확한 가격은 모르지만, 골프를 한 번 안 가면 아이 학원비가 나온다고 하는 정도라고 보며 될 것 같다. 그건 골프 이용비만 말하는 거고, 골프 장비 구입, 골프웨어도 입고 나가야 할 것이니 들어가는 비용은 걷잡을 수 없을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우리 남편은 허리가 안 좋아 같이 골프를 치러 나갈 수 없고, 나는 운동 신경이 워낙 둔해서 공으로 하는 운동을 기피한다." 면서 같이 해보자는 권유를 피하고 있기는 하다. 그 그룹 (골프를 하는 준거집단)에 속해서 비교하게 되면 괴로워질 것이 분명하므로 나의 그다지 넓지 않은 인간관계가 축소될 것을 걱정하면서도 발을 들이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사족 같은 이야기이지만, 얼마 전 경기 이천의 한 골프장에서 이용객이 일행이 친 골프공에 머리를 맞아 숨지는 사고가 있었다. A 씨는 B 씨 등 3명과 함께 골프 중이었는데, B 씨가 세컨드샷으로 친 공에 맞은 것으로 파악되었다고 한다. 관련자 진술에 의하면 "연습 스윙으로 착각해 사고가 난 것 같다"라고 했다. 같이 골프를 하던 사람들은 어떤 마음일까, 얼마나 두렵고 슬플까. 매우 안타까운 사고임에도 이 사고를 인터넷 기사로 본 남편은 "거 봐. 골프 잘 치지도 못하면서 있다가 사고 나잖아. 당신은 운동 신경 없으니 절대 골프 칠 생각 말어." 했다. 해당 기사의 인터넷 댓글 첫머리에 "아지매가 집에서 솥뚜껑이나 닦지 거기는 왜 갔냐" 는 냉소적인 반응과 다를 바가 없는 것 같았다. 다른 사람의 불운을 어찌 이렇게 대할 수가 있나.
각자의 인생과 삶의 지향점은 다르다. 지금은 가까운 지인이 아니더라도 타인의 삶을 엿볼 수 있는 루트가 많다. 나는 개인적으로 인스타와 페이스북을 하지 않는다. 카톡 대문 사진을 통해 친하든, 친하지 않든 화려한 삶을 잠깐씩 엿보는 것만으로도 마인트 컨트롤이 어려워 온갖 책을 뒤져 가면서 마음이 힘들어지는 이유를 찾아 보게 되는데, 잘 알지 못하는 누군가의 삶까지 관심을 둘 여력이 없다.
나도 골프를 해야 하나 고민을 하던 중에 이 글을 쓰게 되었다. 골프를 못하는 건가, 안 하는 건가 내 입장을 분명하게 정리하되, 적어도 남의 삶을 부러워하지는 않으며 살고 싶다고 결론을 내었다. 골프 말고도 인생에 내가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은 많고 취미거리도 많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