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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이루리 glory Jul 04. 2024

의대 입시 열풍 속으로...


 올해 정시로 대학에 들어간 아들은 대학 축제를 후회 없이, 화끈하게 보냈다. 그도 그럴 것이 작년 재수 기간에도 일생에 단 한 번만이라도 볼 수 있다면 소원이 없겠다던 걸그룹 '뉴진스'가 학교 축제에 왔기 때문이다. 그것도 천운으로 아들의 학과가 공연장 우측 펜스 바로 옆에 자리를 잡게 되어 손이 닿을 정도의 거리에서 생생하게 뉴진스를 보고 영상에 담았으니 얼마나 좋았을까. 공연이 끝난 다음날, 하루 종일 죽은 듯이 자고 나서 저녁 늦게야 일어난 아들은 평소에는 만지면 큰일 날 것 같은 표정을 지어내던 자신의 폰을 열어 지척에서 멤버들을 보았음을 보여주며 세상을 다 가진 듯 흡족해했다. 


 작년 대학 입시에서 국어를 제대로 망친 아들은 자신이 국어를 제법 잘했는데 (시험이  끝난 후에는 각자 잘하는 과목의 친구 앞에 모여 답을 맞히는데 본인의 말에 의하면, 국어 시간 이후에는 친구들이 주로 자기 앞에 모인다고 했다)  '망해' 지문에 멘털이 나가 시간에 쫓기다 결국 국어 답지를 적어오지 못했다. 가채점 결과를 몰라 수능 이후 전전긍긍하며 어디 놀러 가지도 못하고 수능 점수가 나올 때까지 죽은 듯이 기다려야 했는데, 불행 중 다행으로 점수 끝자락을 붙들고 간신히 국어 3등급을 받았다. 작년 수능은 국어가 특히 어렵게 나와 과목 중 표점이 제일 높았기 때문에, 국어 점수에 따라 대학 등급이 달라졌다. 이번에 또 떨어지면 삼수까지 해야 하므로 신중하게 소신 지원을 했다.


 대학 합격을 확인한 후, 아들은 올해 수능 시험을 한 번 더 보겠다고 선포했다. 억울하기도 하고 분명 더해보면 잘 볼 것 같은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같이 재수학원을 다녔던 친한 친구들이 이미 삼수나 반수를 고려하고 있어서인 것 같기도 했다. 아들은 작년 한 해동안 힘들게 고생한 만큼 이제 대학 생활이란 걸 해보고 싶으니, 1학기는 마쳐 놓고 반수를 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그 당시는 의지가 확고해 보여 당장이라도 의대에 들어갈 수 있을 거라 여겨질 정도였다. 그래도 걱정이 되어서 이왕에 대학생활을 하는 거라면 뭐든 열심히 하라고 말해 주었다. 수능 공부든, 대학 공부든 열심히 하라는 얘기였는데 아들은 노는 것도 열심히 하라고 들었는지, 실컷 놀기도 하면서 1학기 대학 생활을 보내는 듯했다. 그렇게  1학기 학교 중간고사가 끝날 무렵, 아들로부터 조심스러운 문자가 왔다.  


 엄마, 저 조금 더 고민해 볼게요... 

 그래, 더 고민해 봐. 대학 시험 잘 마무리하고 그 이후에 하던가 해야지 뭐. 


 그러던 아들이 며칠 전 대화를 하자고 요청해 왔다. 아무 말도 안 하고 기말고사까지 무조건 기다려 주기로 약속한 터라 처음부터 오매불망 아들이 의대를 가기를 한결같이 바라던 아빠도 묵묵히 참으며 새로운 취미생활을 찾아서 하고 있었다. 식탁에 앉은 아들의 눈빛을 보니 영 불안해 보였다. 


"엄마, 저 반수 도저히 못할 거 같아요. 작년에는 붙어 놓은 학교가 없어서 간절했고, S재수학원이 어떤 곳인지 몰라서 들어갔는데 하루 종일 갇혀서 말 한마디 못하고 공부만 하는 곳임을 아는 이상, 다시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아요. 머리는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제 가슴이 받아주질 않아요."


 슬그머니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아들이 자기처럼 공대생으로 산다 해도, 본인이 의대 갈 생각이 없다면 할 수 없다며 전문직에 대한 갈망을 힘겹게 비워냈던 아빠를 다시 의대 가겠다는 말로 기대하게 만들어 놓고서는 이제 와서 못하겠다니... 그 뒷감당은 또 내가 해야 한다. 


"그래, 그렇다면 할 수 없는데. 너 세상이 그렇게 녹록하지 않아. 힘들다고 안 하고 그만두면 인생 살면서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어?"

좋게 대답이 나오지 못했다. 아들이 바란 것은 분명 이런 반응이 아니었을 거다. 

"됐어요. 할게요. 하면 되잖아요!"

아들은 화를 내면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고 밖으로 나갔다. 

나도 화가 나서 붙잡지 못했다. 


 언제나 네가 힘들 때 힘이 되어주는 그런 동화에 나오는 것 같은 엄마가 되고 싶었는데, 현실은 역정내고 힘들다 하는데도 밀어붙이는 그런 세속적인 엄마라서 미안하다. 저녁을 지어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는데 아들이 생각보다 일찍 집에 들어왔다. 이런 상황에서 그래도 다시 집에 들어온 아들이 고맙고 아까 화냈던 게 미안해졌다. 


"엄마 우리 다시 얘기해요. 엄마는 제가 쓸데없는 유튜브만 보느라 시간을 낭비한다 하시는데 저도 계속 학과 비전 살펴보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봤어요. 우리 학과는 대학원에 가서 더 공부해야 할 것 같아요. 부전공 더해야 하고요. 아니면 좋은 데 취직이 힘들 수 있을 것 같아요. 제가 밖에 나가 더 고민해 봤는데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학교 시험 보고 나니 제가 공부 밖에는 딱히 할 것도 없더라고요. 재종반 들어가서 방학 동안 열심히 하고, 다음 학기 등록해서 대학교 계속 다니면서 혼자 공부해서 수능시험을 보는 걸로요." 


 물론 세상을 먼저 겪어 본 부모 입장에서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다는 것은 안 하느니만 못한 상황이고, 실패할 확률이 높다는 걸 알고 있지만, 그것도 본인이 직접 겪고 느껴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의대 입시 열풍 속에 직장인들도 다니던 회사를 때려치우고 의대 입시를 보려 한다, 군인들은 군수를 고려하고 있다, 의대 학생들이 지금 수업을 못 듣고 있어서 아예 메이저 의대를 가려고 다시 시험을 다시 보려 한다는 등 주위에 공부 좀 하는 학생들은 거의 의대를 꿈꾸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의대를 목표로 ‘초고속 선행 교육’을 받는 초등학생들이 많아지면서 사교육이 과열 양상을 보인다는 지적이 나왔다. 초등 5학년이 중학 수학은 물론 고등학교 2학년 범위까지 진도를 나가는 식이다. 교육시민단체 사교육걱정 없는 세상(사걱세)은 지난 7월 1일 “최근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과 맞물려 초등 의대반이 전국적으로 확산 추세”라며 이같이 밝혔다. 사걱세에 의하면, '사교육 1번지’로 불리는 서울 강남구 대치동 G학원에서는 정상 교육과정의 최대 14배 속도로 선행 학습이 이뤄지고 있었다. 선행 속도는 ‘학습 범위’(학년)에 12개월을 곱하고 이를 ‘학습 기간’으로 나눠 계산한다. G학원 의대반에 다니는 초등 5학년은 고2까지 7개 학년(84개월)을 6개월 만에 배운다. 이 학원은 초등 2학년부터 의대반을 운영하는데 6개월 동안 최소 3개년 이상 진도를 나간다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60344


 이 열풍 속에서 우리 아들이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나는 아직도 결론을 못 내리고 있다. 그래도 본인이 하겠다면 말릴 수는 없겠다 생각하면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자꾸 못하겠다고 하니 답답한 마음에 화가 나는 것 같았다. 교육부와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은 내년 의과대학 정원 증원규모를 1489~1509명으로 발표했다(2024/05/02) 현시점에서 적당한 증원 수는 어느 누구도 예측하기 어려울 것이다. 숫자가 의미하는 증원의 규모보다는 왜 의사를 늘려야만 하는지에 대해서, 그리고 우리나라 최상위권 학생들이 왜 의대를 가고 싶어 하는지에 대해서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 우리 집에도 전문직을 갈망하는 한 분이 계시다. '슬기로운 의사생활', '낭만닥터 김사부 1,2,3', '굿닥터' 등 안 본 의학드라마가 없고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너무 반복해서 보길래 "왜, 뭐가 그렇게 재미있어?" 했더니 남편은, "나도 의사가 되고 싶었다." 면서 공대를 나온 후,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는 우리나라의 공대생들의 현실에 대해 말했다. "우리 동네 피부과 의사 선생님 봐봐. 연로하셔서 눈이 잘 안 보이셔도 간호사한테 물어보시면서 아직도 진료 보시잖아. 내 동기들은 다 언제 그만둘지 노래를 부르면서 사는데." 

 

 대한민국에서 의사만이 정해진 은퇴 연령 없이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고속득을 올릴 수 있는 직업이기 때문에 공부를 잘했던 공대생들이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며 살고 있는 것 아닐까. 최상위 학생들이 이공계가 아닌, 다 의사가 되겠다고 덤벼드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우리나라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공대생인 우리 아들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아빠의 보이지 않는 강요도 분명 한몫하고 있겠지만 사실 엄마인 나도 자식이 평생소득이 보장되는 전문직을 가지게 되기를 바란다. 지금도 계속 고민 중이고 결론을 내리지 못했지만, 나는 휘몰아치는 이 열풍 속에 발을 디밀고 조용히 아들의 등을 떠밀어볼 생각이다.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 몰라도 한 가지 확실한 건, 지금 안 하면 분명 후회하게 될 것 같아서. 안 하고 후회하는 것보다는 한 번 해보고 후회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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