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파트에는 오랫동안 주민들과 같이 살아온 길냥이들이 있다.
그중 내가 유일하게 이름 지어준 나의 '깜장이'이에 대해 소개하고 싶다.
여름이면 주로 서늘한 길바닥에 배를 깔고 여유롭게 누워있는 깜장이는
우리 동네 터줏대감이다. 6마리 다른 고양이들의 엄마이기도 하다.
하얀 다리를 우아하게 포개고 초월한 듯한 표정으로 바닥에 누워 있는 녀석은 항상 두 눈을 질끈 감고 있다. 그러다 내가 지나가면 눈을 번쩍 뜨고는 "야~옹." 한다. 처음에는 몰랐다. 고양이의 언어에 대해. 그런데 한 TV프로그램에서 고양이 행동전문가를 통해 알게 되었다. 고양이한테 '야옹' 은 유아기의 언어이므로 다 자란 고양이는 '야옹'을 하지 않는데, 고양이가 '야옹'을 할 때는 사람과의 대화를 원하는 경우이며 전달할 메시지 있다는 것이다. 얘가 배가 고파서 그런가? 먹이로 줄 게 없는데 어쩌지? 지나갈 때마다 '야~옹"하는데, 왜 그러는 건지 몰라 언젠가부터 나도 모르게 그 녀석과 같이 대화를 하게 되었다.
어느 날, 그 앞을 지나가는데 어김없이 또 "야~옹." 한다. 매번 빈 손인 게 미안해서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좀 꺼림칙하긴 하지만 먼지가 하얗게 붙은 등도 북북 긁어 주었더니, 좋았나 보다. 천천히 나를 따라온다.
오지 마. 제발. 너한테 줄 게 없단 말이야.
우리 집은 3층인데 이 녀석이 계단까지 같이 걸어 올라 온다. 문 앞까지 왔다. 우리 집에 들어왔다간 동물을, 특히 길냥이를 병균덩어리 취급하는 우리 남편한테 잔소리 폭탄을 맞겠다 싶어서 살살 달랬다.
깜장아, 내려가. 힘들게 왜 따라왔어. 나를 빤히 쳐다보는 눈이 애처롭다.
그렇게 깜장이와 나의 인연이 시작되어 지금도 지나갈 때 대화를 나눈다. 깜장이 얘기를 했더니 우리 딸은,
"엄마, 걔는 사람 봐가면서 그러는 거 같더라. 날 보면 눈도 안 떠. 아주 거만해하다니깐!"
그런데 요즘 깜장이가 좀 힘들어 보인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아이들이 여기 저기 만져도 반응을 안 하고 가만히 참고 있는 것 같다. 문득, 깜장이가 안 보이면 어쩌지 불안할 때가 있다. 힘들어 터벅터벅 걸어갈 때 누군가가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아서 뒤돌아보면 "야~옹" 해줬던 녀석, 지친 내 마음을 아는 것 같았던 길 위의 내 친구. 깜장이가 오래도록 건강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