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날씨도 후덥지근하고 더웠다. 친구를 만나기로해서 지하철역을 가기 위해 동네 마을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순간 버스 한대가 멈췄고 갑자기 '툭' 하고 내 앞으로 누군가 큰 박스 하나를 던져 놓았다. 곧이어 휴지 30롤이 또 '툭' 하고 던져졌다. 이게 뭐람? 핸드폰을 보고 있다가 그 쪽을 보게 되었다. 버스에서 뛰어내리다시피해서 내린 사람은 어딘가 낯이 익은 분이었다. 그는 분주히 내려서 방금 전 던져 놓은 짐을 수습할 모양이었다. 앗...순간 숨이 멎을 것 같았다. 그 분은 한쪽 팔이 없었다.
낯이 익었던 이유는 그 분이 우리 동네 백화점 앞에서 휴지, 키친타올, 주전자, 주걱 등 온갖 잡화를 내어 놓고 파시던 노상이었기 때문이다. 난 바로 옆에 서 있었고 충분히 도와줄 수 있는 거리였는데 선뜻 나설 수는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의 움직임이 생각보다 너무 빨랐고 내가 잠시 고민하는 사이, 한 손으로 휴지를 들어 정류장 벤치 위에 올려 놓고 등에 올리고 계셨다. 그 분이 일어서는 사이 나는 잽싸게 나머지 짐을 들어서 벤치 위에 올려 놓았다. 그 분은 다시 제자리에 와서 물건이 없어진 것을 보고 흠칫 놀라시는 것 같더니 "저기에 놓았어요." 하고 내가 손으로 벤치 위에 있는 짐을 가리키자, " 감사합니다" 하시고는 곧 그 짐도 큰 휴지 위에 올려 놓으시고는 꾸부정한 모습으로 휘적 휘적 걸어서 어디론가 가셨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나는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팔이 없으면 짐을 저렇게 올려야 한다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누군가의 도움을 요청하지도 않고 버스를 타고 내리고 짐을 올리는 모습....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그 분을 보아왔는데도 정작 물건을 산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마음 속으로 '누가 편하게 다 실어다 주셨겠지.' 이런 생각을 했던 건 아닐까. 그리고 비오는 날에도, 추운 날에도 노점을 지키고 계신 그 분을 보면 안타깝다가도 정작 현금이 하나도 없어 사드리지 못하고 그냥 온 적도 있었다.
집에 와서 딸아이한테 이런 일이 있었는데 엄마가 마음이 아팠다고 얘기했다. 그랬더니 평소에는 좀 냉정한 편이라 여겼던 딸아이가 하는 말이,
"엄마가 짐을 들어 드려 너무 잘했어. 한 팔로 큰 짐을 들어 올리기가 너무 힘드셨겠다. 그런데 엄마, 엄마가 어렸을 때 그 분 물건을 사지 말라고 했었어. 동정심을 유발해서 비싸게 파는 걸 수도 있다고..."
내가 그랬었다니....잘 생각해보니 그랬던 것 같다. 그 당시 지하철에서 구걸하는 사람들 중 실제로는 장애도 없이 멀쩡하고 번듯한 집을 가진 부자도 있다는 소문이 돌았기 때문이다. 그런 편견을 가지고 아이한테 아무 생각 없이 말을 했던 거구나. 그래서 우리 아이는 물건을 사겠다는 말 한마디도 없이 그 앞을 몇 년 동안 못 본 듯이 지나치고 나도 계속해서 그랬던 거였다.
이렇게 열심히, 혼자서 직접 물건을 사서 나르고 파시는 분인 줄 몰랐다. 편견을 가지고 대한 것이 너무 미안하고 죄송했다. 마침 집에 행주가 없네. 다음에는 꼭 현금을 준비해서 행주라도 사들고 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