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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몬스테라 Dec 30. 2022

나의 소중한 그것

  생리가 멈췄다. 매번 4주, 28일 만에 찾아오던 빨간 손님이 오질 않았다. 그리도 귀찮고 번거롭더니 오지 않는다고 걱정을 하고 있다. 친구에게 털어놓았다. 그랬더니 한다는 말이,

  ‘에이 한 달 그냥 넘긴 거겠지.’ 

  ‘그래 그런걸거야.’

그러겠지 했는데 두 달을 넘겼다. 친구는 우스갯소리로 임신 아니냐며 축하한다는 실없는 소리를 해댔다. 휴~ 맙소사. 드디어 올 것이 왔나 보다. 원래도 더위를 많이 타던 내가 올해 유독 더워더워 하더니 폐경, 아니 요즘은 완경이라고 한다던데 완경이 된 건가? 갱년기가 온건가?

  완경 이야기가 나오니 주위에서 한마디씩 거든다. 완경이 되면 갱년기가 오고, 갱년기가 오면 밤에 자다깨다를 밥 먹듯 하고, 열이 오르락 내리락 한다고. 괜히 슬프다가 화가 나다가 성격 파탄자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고. 또 골다공증이 오고, 탈모도 온다고. 온갖 무서운 이야기를 다 해댄다.

  걱정만 하고 있지 말고 제대로 검사해보라는 권유를 받고 병원에 가기로 맘을 먹었다. 병원에 가서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니 자궁초음파, 피 검사 등 갱년기 관련 검사를 받자고 하셨다. 순순히 시키는 대로 검사실에 들어가 피를 뽑고 대기실에 앉아 결과를 기다리는데 왠지 초조했다. 

  13살 초경을 시작했다. 그땐 참 어렸다. 천지 분간도 못할 나이였다. 처음 겪는 일이라 놀라서 언니에게 도움을 청했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차근히 배웠던 기억이 난다. 이후 소녀에서 여성이 되어가는 과정에 생리는 나와 늘 함께였다.

  그렇게 30년 넘는 동안 함께 했지만, 한 번도 반갑다거나 고마워하지 않았었다. 그저 귀찮은 숙제. 언젠가 끝나버리면 홀가분하고 좋을 것만 같은 월례 행사였다. 유독 생리통이 심했고, 생리 전 증후군도 날 너무 괴롭혔다. 포장 뜯지 않은 서프라이즈 선물도 아닌 것이, 매번 다르게 찾아왔다. 어떤 때는 몸살로, 고열로, 구토로, 어지럼증으로. 한 번도 늦어본 적이 없었다. 빚 받으러 오는 빚쟁이처럼 꼬박꼬박 오는 것이 지겨웠다. 

  그런데 두 달간 찾아오지 않는 생리에 난 초조해지고 말았다. 이렇게 나이가 들어버리는 건가 서글퍼졌고, 여성성을 잃는 것 같은 감정에 허탈했다.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짧은 순간에 많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진료실에서 “유지현님” 하고 내 이름을 불렀다. 벌떡 일어나 진료실에 들어갔다.

  “호르몬 수치 정상이구요. 가끔 이런 경우가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자궁 내막이 두꺼워져 있어서 호르몬제 처방합니다. 약 드시면 1주일 후 생리 시작하실 거에요.”

  생각보다 간단하게 결과가 나왔다. 의사 선생님께 감사하다며 허리를 굽혀 몇 번을 인사했다. 그간 걱정하고 슬퍼했던 기분이 싹 사라졌다. 멀쩡한 나의 호르몬에, 일주일 후에 올 생리에 감사했다. 귀찮다고 없어지기만 바라던 예전 마음을 반성했다.

  이제 길어야 10년, 아니 5년, 어쩜 그보다 더 조금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완경이 되고 나면 호르몬 문제로 병원을 드나들겠지. 젊을 때 넘쳐흐르던 여성호르몬이 훗날엔 귀한 보물 같겠지. 젊었을 때를 그리워하며 그때는 그랬지 이런 말이나 하고 있겠지. 얼마 남지 않은 나의 생리가 소중하게 느껴졌다. 내가 뭘 어떻게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있을 때 잘해, 그러니까 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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