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솜 Mar 20. 2024

불편하지 않으면 그게 바로 행복한 거 아닐까?

나를 위한 휴직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갈팡질팡하거나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다는 나이, 마흔.


나는 올해 마흔 살이 되었다. 숫자로 표시하지 않고 이렇게 표현하니 결코 적지 않은 나이인 것 같다. 주변 사람들의 말과 행동, 상황에 관심을 갖고 살아가던 30대와는 달라진 나를 종종 느낀다. 물론 딱 마흔이 되고서 느낀 것은 아니다. 서른여덟 혹은 서른아홉의 시작 즈음부터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남의 말과 행동을 신경 쓰지 않고 타인보다는 나를 더 생각하게 되었다. 마흔 살이 되면 읽기 좋은 여러 철학 서적이 많은 것을 보니 마흔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인생을 바라보는 생각이 달라지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직장생활을 16년 하고 여러 가지 이유로 1년 휴직을 하기로 하였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우리나라에서 마흔이라 함은 평범한 직장인들에게 한창 열심히 벌어서 가정의 생계를 유지해야 하고, 집을 마련하는 자금을 열심히 갚고 있는 시기이기 때문에 나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휴직이라는 결정을 내릴 때 가장 많이 고민한 부분이 바로 나 자신의 감정이었다. 내가 쉬고 싶은지, 내가 지금 이대로 직장생활을 더 이어가도 괜찮은지를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물론 이어가도 됐겠지. 어떻게든 살아지니까 말이다. 그래도 잘살고 싶었다. 경제적으로 말고, 타인에게 보이는 것 말고, 나 스스로 잘~ 살고 싶었다.


30대에는 그랬다. 다른 사람들보다 좋은 집에 살고 싶었고, 남들 다 하나씩 가지고 있는 베스트셀러 명품백은 당연히 가져야 하고, 남들보다 여유롭고, 남들이 보기에 잘 꾸미고 예쁜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다. 그랬다. 정말 말 그대로 보이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남들이 보기에는 괜찮은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 스스로 편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내 삶이 불편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그러다 서른여덟인가 서른아홉 즈음 내가 해오던 생각들이 무의미함을 가끔씩 느끼게 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내 마음속과 머릿속에는 그런 보이는 삶에 대한 갈망이 남아있었던 것 같다. 그럼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어떻게 살아가는 모습을 아이에게 보여주어야 할까? 이런 고민들을 함께 하면서 30대에 내가 살았던 삶이 부끄럽기 시작했고, 이제 온전히 나를 위한 삶을 잘~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불편하지 않은 삶. 그게 바로 행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30대의 삶이 부끄럽다고 해서 그렇게 살아온 시간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그 시간이 없었다면 지금 이 시간도 없었을 테니까.


휴직을 하고 첫날부터 걷기 시작했다. 걷기가 몸 건강에도 좋고 정신 건강에도 좋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직장생활을 하면서 걷기를 한다는 건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 숙제처럼 하는 것이었다. 아침에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되니 여유롭게 아이와 남편을 배웅하고 바로 하천길로 나간다. 기본 한 시간에서 날씨가 좋으면 기분이 내키는 대로 걷고 또 걷는다. 어떤 때에는 이어폰을 하지도 않고 그냥 걷기도 하는데, 그럴 때 저절로 드는 여러 가지 생각이 나를 성장시키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그렇지! 바로 이런 삶이지. 매일 걷고 건강식을 챙겨 먹고 졸리면 잠깐 낮잠도 자고 날씨가 좋으면 대청소도 하면서 그렇게 보내는 하루의 1분 1초가 소중하고 행복하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 너무 빡빡하게 살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하루하루를 정말 치열하게 사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나의 삶이 참 의미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제 남들이 생각하는 나는 중요하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비도덕적이거나 위법한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니까.


당분간 이런 삶을 살고 싶다.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하루를 알차게 온전히 나를 위해서 보내는 삶. 몸도 마음도 건강한 내가 가정에서도 좋은 엄마, 좋은 아내가 될 것이고, 나 스스로도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 있을 테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