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하지만 찬란할 나의 40대
“갓생”
신을 의미하는 ‘God’과 인생을 의미하는 ‘생’의 합성어. 모범적이고 부지런하게, 열심히 사는 인생을 일컫는 신조어이다. 인간의 성향을 굳이 16가지로 구분하는 MBTI로 보자면 나는 완전 계획형 인간, 요즘 말로 ‘파워 J'이다. 계획형 인간에게 갓생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삶인 것 같다. 완벽하게 계획을 세우고 빈틈없이 실행으로 옮기는, 혹여나 계획이 틀어지거나 완성도가 떨어질 것 같으면 애초에 시작도 하지 않는 그런 유형의 사람, 바로 나이다.
그렇게 열심히 청춘을 보내다 보니 마흔이 되면서 느낀 것은 내가 그렇게 완벽한 사람도, 내가 그렇게 중요한 사람도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왜 1등이 되어야 하지? 내가 왜 가장 잘해야 하지? 내가 한 일은 왜 모두 인정받아야 하지? 내가 없어도 직장은 돌아가고, 내가 하루 없어도 가정은 돌아가는 것을 느끼면서 나 자신의 목표를 높게 잡을 필요가 없음을 점점 느끼기 시작했다. 10대 때부터 30대까지의 나는 늘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계획하고, 계획을 하나씩 실천하면서 만족감을 얻었던 것 같다. 정말이지 다시 돌아보면 그 시절의 나는 ‘갓생’을 살고 있었다. 물론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지금은 후회가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휴직을 하고 나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불안감에 블로그도 운영해 보고, 글도 써보고, 그동안 미뤄뒀던 아이의 성장앨범도 만들면서 하루도 허투루 보내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러다가 12월이 되었다. 세상에! 휴직을 해서도 갓생을 살고 있다니! 이런 멍청이 같은... 나를 좀 내버려 둬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부터는 오전 내내 예전에 육아하면서 보지 못했던 드라마 정주행을 하기 시작했고, 오후에는 그냥 아무 생각과 목적지 없이 돌아다니기도 했다. 첫날에는 하루를 무의미하게 보낸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고, 숙제를 안 하고 미룬 것 같은 느낌이 계속 들었다. 다음 날에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그 찝찝한 기분의 강도가 조금 더 낮아진 것 같기는 했다. 그렇게 며칠을 보내다 보니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나 자신이 편안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간단한 스트레칭을 하고, 여유롭게 사과를 한 조각 먹고,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내려 마시는 일이 이렇게도 기다려질 일인가? 매일 밤에 잠들기 전에, 다음 날 아침에 내가 할 여유로운 일과들이 기대되기 시작했다. 사실 정말 별거 없는데 말이다. 오히려 지인과의 약속이 생기면 나의 여유로운 아침 일상이 무너지는 것이 조금은 싫을 정도였다.
내려놓아도 되는구나. 매일 그렇게 빡빡하게 살지 않아도 되는구나. 그래도 일상은 무너지지 않고 잘 흘러가는구나. 그동안은 날씨가 좋으면 남들이 가니까 나도 여행을 계획하고, 남들이 줄 서서 먹으니까 나도 유명한 식당이나 카페에 가는 삶을 살았는데... 그러지 않아도 되는구나. 오히려 그러지 않으니까 마음이 편안했다. 남들이 하니까 하는 것 말고 나만의 장소, 나만의 맛집, 나만의 취향에 집중하다 보니 내가 어느 곳에서, 어떤 상황에 편안함을 느끼는지 알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카페도 늘 가는 곳에만 가게 되고, 늘 먹던 메뉴만 먹게 되고, 그것이 나를 상징하는 것 같아서 나의 정체성을 찾는 기분이었달까?
복직하면 또 바쁜 업무와 집안일에 시달리기 시작하겠지만, 지금의 이 느낌과 기분을 잃지 않고 일상을 보내고 싶다.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나의 자리를 인정하고 작지만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소소하게 행복하고 싶다. 행복이라는 것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니까. 그저 불편한 감정이 들지 않으면 그것만으로도 행복하다는 것을 이제는 알게 되었으니까. 적당한 목표를 세우고 조금은 내려놓고 그냥 현재를 열심히 살아보고 싶다. 평범하지만 찬란할 나의 40대를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