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의 책_2023.05.29.월
‘좋은 결과가 기다린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미리 예보는 되었지만 비가 오는 도로에는 다들 어디로 가는지 차들로 가득하고, 느릿느릿한 속도로 그들의 목적지로 향해 최선을 다해서 나아가고 있다.
하지만 어딜 가든 얌체들이 있기 마련이고, 또 그들을 따라 하는 더 얌체 같은 이도 있다. 나는 지금 가평으로 가고 있다. 내비게이션의 알림으로는 몇 분 차이 나지 않기에 고속도로대신에 무료 도로를 이용해서 가고 있다. 어차피 밀릴 것을 각오했기에 최대한 느긋한 마음으로 와이프와 담소를 나누며, 그녀가 건네주는 과자를 먹으며,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노랫소리로 위로받으며 핸들을, 가속기를, 감속기를 조작하고 있다.
나쁜 일은 항상 친구들을 데리고 다닌다고 했던가. 신호를 지키고 따라가면 될 텐데 조금 더 앞서가겠다고 나의 뒤차들이 나보다 먼저 좌회전을 하고, 그 뒤를 따라 몇몇 차들이 따라서 좌회전을 한다. 좌회전해서 들어가는 차선은 하나인데 신호데로 출발하는 차량과 뒤에서부터 먼저 가겠다고 출발하는 차량으로 세줄이 돼버리고 말았다. 사거리는 말 그대로 개판이 되었다. 분노가 치밀러 올랐다. 창문을 내리고 옆차량을 향해 고개를 돌리는 그 순간에 와이프가 다급하게 말리며 진정시켜 주었다.
신호를 따르며 우직하게 지키며 기다렸다가 출발하는 사람이 바보 같은 것인가? 차가 막히니 신호가 떨어지자마자 앞차가 가건 말건 출발해서 먼저 차선으로 머리를 집어넣는 사람이 재치 있는 것인가?
이런 생각과 동시에 나의 배에서 요동을 치고 있었다. 나는 말이다. 이렇게 항문을 틀어막고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신호를 기다리고 기다렸단 말이다. 분노 때문인지, 와이프의 진정 때문인지 다행스럽게도 급한 마려움은 잦아들었고, 오랜 시간이 지나 가평에 도착하였다. 이쁜 카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10번째 이 글을 쓰려고 하였으나, 마법의 책을 준비하지 못했다.
유황온천..
뭣 때문에 이 유황온천에 꽂혀서 여기까지 왔는지 모르겠다. 와이프와 나는 간단히 짐을 풀고 저녁식사를 하고, 온천 같지 않은 온천에 몸을 담그고, 떨어지는 빗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이 들고 말았다.
‘좋은 결과가 기다린다.’
이번 마법의 책은 뭔가 오해를 한 것 같다. 사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피곤하다는 이유로 책을 많이 읽지도 않았고, 글에 대해서 생각도 많이 하지 않았다. 그저 앞으로 다가올 3일간의 연휴에 쉴 생각만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그래서인지 몸도 보통때와는 다르게 많이 무거웠다.
‘아무것도 안 한 내게 좋은 결과가 기다린다면 얌체 같은 운전자들과 다를게 무엇일까?’
하는 반성의 생각과
‘아니야, 그래도 조금은 스스로도 알지 못하게 많은 생각을 했을지도 몰라 꼭 책을 읽어야만 되나?’
하는 위안의 생각이 맞물려 더욱 글쓰기가 망설여지는 연휴 마지막날의 오후이다.
이놈의 마법의 책이 내게 아주 비상하게 큰 엿을 먹이고 있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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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프가 청소를 한다는 이유로 나를 방으로 밀어 넣고, 글을 쓰기 전까지는 못 나온다고 감금시키지 않았다면 소파에 누워 즐겨보던 신서유기를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보며 씁쓸하고 의미 없는 웃음으로 마무리했을 것 같다.
펜션에서는 다음날 아침 일찍 출발을 했다. 시원하게 뚫린 고속도로를 달려 즐겨가던 북한산 온천에서 피로를 풀고, 막국수와 보쌈으로 끼니를 때우고 집에 와서 시계를 보았다. 오전 11시 체크아웃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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