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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용 Jul 16. 2023

물 1화

물을 좋아했나?

언제부터 물을 좋아했는지 모르겠다. 어릴 적에도 딱히 좋아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좋아할 만한 기억도 없는 것 같다.


오히려 친척집 근처의 저수지에 빠졌던 경험, 초등학교 시절 태풍으로 인해 뚜껑을 열어놓은 맨홀에 빠졌다가 자연의 힘으로 다시 위로 솟구쳐 올랐던 경험 등 안 좋았던 기억이 많이 남아있다.


조금씩 커가면서 여름방학 때마다 가던 부산 큰댁의 광안리 앞바다도, 친척들과 함께 가던 계곡들도 조금씩 멀어져 가고, 점점 성인에 가까워질수록 물이라는 물질과는 가까워지지 못했던 것 같다.


물보다는 술이 가까워지고, 생존에 필요한 물, 위생에 필요한 물을 빼면 내게는 특별할 이유도 없어 보였던 물처럼 건조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작은 단칸방과 연결된 부엌에서 쪼그리고 앉아 몸을 씻겨주던 엄마의 기억과 동네 목욕탕의 지옥과 같은 뜨거운 물에 억지로 끌어안고 들어가시던 아버지의 기억이 떠오른다.


쪼그리고 앉아 씻던 부엌에서 샤워하는 곳이 따로 있던 조금 더 큰집으로 이사를 하고 내 방이라는 것이 처음 생겼던 기억이 지금도 벅차오른다. 샤워 시설보다는 수도꼭지에 물을 받아 씻어야 하고, 뜨거운 물은 부엌의 어딘가에서 데어가지고 와야 하는 불편함이 있지만 분리된 샤워실이 있다는 것이 너무도 좋았다.


시간이 좀 더 흐르고, 2층의 빌라로 이사 왔을 때는 믿을 수 없는 시설에 놀라고 말았다. 변기가 실내에 있었다. 이젠 밤에 플래시를 비추며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되고, 엄마나 동생을 깨우지 않아도 됐다. 샤워기에서 항상 뿜어져 나오는 따뜻한 물은 서서 씻는 기쁨을 누리게 해 주었다.


조금씩 커져가고, 좋아지던 샤워실의 모습에는 힘들게 일하시던 두 분의 노고와 피땀이 담아져 있었다는 것도 지금에서야 생각이 든다. 그리고 지금에서야 두 분의 고생에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이런저런 많은 생각들을 해야 했다. 자연스럽게 써 내려갈 재주가 없는 나로서는 한 편의 글을 쓰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 생각을 해야 했고, 생각이 잘 나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처음에는 조용한 나의 방에서, 다음에는 카페에서, 다음에는 온천에서...


물론 온천에서 글을 쓰지는 못했지만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면 많은 생각들이 잦아들기도 하고, 떠오르기도 하고 흐르기도 한다. 멍해졌던 머리가 조금씩 돌아가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몸이 가벼워지면서 머릿속도 가벼워지는 것도 같다.


그래서 써보기로 했다.

내가 물을 좋아했었나? 하는 생각으로...

지금까지 경험해 봤던 여러 가지 ‘물’에 대한 기억과 그 기억에 대한 감정들을 써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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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물은 언제나 나의 마음을 달래고, 고요한 호수는 나의 사랑을 깊이 숨기네. - 김시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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