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시절 저녁에 산책이라도 나갈 때면 항상 중랑천의 어느 다리 위에서 제법 깨끗해진 개천을 바라보곤 했다. 천변으로는 차들이 쌩쌩 지나다니고, 헤드라이트 불빛과 어둑한 저녁하늘과 제법 잘 어울렸다고 생각했다. 멀리서 아는 사람들이 혹시 지켜봤다면 '무슨 청승인가..' 했을 것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친구들 중에 가장 먼저 면허를 딴 친구가 있었다. 변화와 신문물을 제법 빠르게 받아들이고 적응해 나가는 친구였다. 그리고 우리는 근처에 살았다.
어느 날 밤 친구는 우리 집으로 차를 끌고 왔다. 차종은 생각이 안 나지만 제법 근사한 차량으로 기억이 난다. (로열 살롱? 로열 프린스? 각그랜져는 확실히 아님) 한강에 가자는 친구의 말에 거절도 할 수 없이 바로 조수석에 탑승하고 끌려가다시피 출발했다. 어설픈 친구의 운전 실력에 대한 설렘과(다른 의미임), 한강에 가본다는 설렘이 뒤섞인 아주 복잡 미묘한 두근거림으로 기억난다.
한강이라는 곳은 어릴 적에 세모인지 네모인지 하는 유람선을 타본 것이 전부이고 한강다리를 건널 때 무심하게 바라보던 것 밖에 없어서인지 굉장히 신비한 경험으로 다가왔다.
우여곡절 끝에 주차를 하고 한강둔치에 앉아 유유히 흐르는 강을 바라보노라니, 새까 메서 별로 보이지도 않았고, 모기인지 이름 모를 벌레들 때문에 곤혹스러웠다. 생각하고, 고대했던 한강과는 뭔가 많이 틀렸다. 실망스러웠다.
축제.. 한강에서는 제법 근사한 축제가 열렸다. 그리고 나는 40이 넘은 나이에 알게 되었고, 가보게 되었다. 젊고 어린 사람들과 뒤섞여 셔틀버스를 타고 간 그 축제는 내게 있어서는 롯데월드와 같은 판타지 장소였다. 여기저기에서 맥주를 팔고, 안주를 팔고, 식사를 팔고, 가수들이 부르는 노래도 직접 듣고(그것도 장르별로..) 나는 눈이 뒤집혀 한 손에는 맥주잔을 들고 이 여유로운 판타지 축제를 즐겼다. 와이프의 손을 잡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혹시라도 가수들을 직접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선글라스로 가린 눈을 한껏 이리저리 굴려보기도 했다.(나는 지금도 연예인을 좋아한다.)
가끔씩이지만 토요일이면 와이프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한강까지 라이딩을 즐겼다. 바퀴가 작은 미니벨로와 아줌마 전용으로 알려진 바구니가 달린 자전거를 타고 부부는 한강을 향해 힘차게 페달을 돌린다. 길치인 나를 대신해 와이프가 열심히 길안내를 하며 앞장서서 달리는 모습을 보면 제법 든든하다.
주말 낮에 보는 한강은 주변의 사람들처럼 여유롭다. 천천히 흐르며 그것을 바라보는 이들의 근심과 걱정을 위로해 주는 것 같다. 한참을 바라보고 있으면 어릴 적 아무 생각 없이 친구를 따라갔던 한강이 생각났다. 대체 여기를 왜 온 것일까... 후회로 가득했지만 그래도 친구들 중에는 나를 제일 먼저 태워준 거라며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던 그 친구의 모습이 떠올라 가벼운 미소가 지어진다.
이제 각자의 삶 속에서 여러 가지 이유로 한강을 가겠지만, 나는 와이프와 함께 축제를 즐기고, 운동을 하고, 한가로이 햇빛을 받으며 여유를 즐기러 간다.
코로나19와 이런저런 이유로 오랫동안 한강에 가보지 못했다. 축제가 다시 열렸지만 몸이 힘들어 가보지 못했다. 자전거를 타고 운동삼아 가보려 했지만 조금 더 멀어진 거리에 지레 겁을 먹고 가보지 못했다. 이런저런 이유를 핑계 삼아 가보지 못했다. 어쩌면 마음이 그랬는지 모르겠다. 여유로웠던 회사생활에서 힘들게 돌아가는 공장생활로 바뀌면서 마음이 힘들어졌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날씨가 조금 선선해지면 억지로라도 마음을 이끌고, 묵혀두었던 자전거 페달을 힘차게 밟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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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은 도시의 심장 같아, 사람들의 사랑과 추억이 모여 흐르네, 한강의 물결은 시간을 초월하며 세상의 변화를 영원히 간직하리라. -AI가 찾아준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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